분류 전체보기1350 흰배지빠귀를 찾아서 흰배지빠귀는 머리와 멱부분은 회색이고 등은 갈색이며 배는 흰색이라서 흰배찌빠귀라고 하는데 암수 모두 양쪽 꼬리깃 끝에 흰색의 반점이 있으며 숲속 나무가지에 둥지를 틀고, 5월 하순 4 - 5개의 알을 낳아서 육추를 하는데 요즈음 날씨가 온난화 되어가면서 남부지방에서는 월동을 하기도 합니다 2020. 6. 7. 백로의 고귀한 자태를 찿아서 2020. 6. 7. 수리부엉이를 찿아서 수리부엉이는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올빼미과 조류 중에서 가장 크며 멸종위기 2급 천연기념물 제324-2호로 귀처럼 생긴 귀깃이 있으며 보호색을 띄고 있어서 육안으로 찿기가 힘들다. 둥지를 따로 짓지 않고 바위틈이나 절개지를 이용하는데 매년 번식했던 장소를 다시 이용하는데 휘어진 부리와 날카로운 발톱, 목뼈가 270도까지 돌려가며 주위를 살필 수 있고 청력이 발달하여 고양이의 4배로 먹이를 통체로 삼겼다가 뼈와 털은 토해 내는데 이것을 펠릿 이라고 합니다 수리부엉이는 일부일처제로 신뢰관계를유지합니다 수리부엉이의 눈은 주황빛 노란색으로 영롱합니다 깃털의 색깔이 보호색을 띄고 있어서식별하기가 어렵습니다 한 배에 낳는 알 수는 2 -3개로 가운데 놈이 어미이고 한 마리는 아래 바위 틈앞에 있습니다 수리부엉이의 .. 2020. 6. 7. 오색딱따구리의 이소하는 모습 이른 새벽, 한 동안 이리저리 바쁘다는 핑계로 넘어지면 코닿을듯 지척에 있는 공원의 오색딱따구리를 한 번도 찿지 못하고 미루어 오다가 오늘은 해가 뜰 무렵 카메라를 설치하고 기다려 보았으나 새도 오지 않고 찿아오는 사람도 없어 모두 이소를 한 뒤라는 생각으로 둥지만 바라보고 있는데 장비를 챙기는 소리에 선 잠을 깬듯 부슥한 모습으로 바라던 오색딱따구리 한 마리가 얼굴을 내어 밀기 바쁘게 어디서 날아왔는지 어미새가 날아 와서는 무언가 밀담을 주고 받더니 마지막 이소를 시작합니다. 새끼가 알았다는 듯 준비를 하네요 어미가 나를 따라 오라고 하네요 새끼가 처음으로 세상구경릏 하든 날입니다 이 모습을 담기 위해서 부산 형님은 아직도 경주 나들목을 통과 중이라고 하네요 !!! 2020. 6. 7. 가평 검은 딱따구리의 육추 가평 까막딱따구리의 육추 경기도 가평 현등사 가는 길목에 있는 이제는 멸종위기에 있다는 천년기념물 까막딱따구리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2019. 06. 15. 2019. 9. 14. 빅토리아 연꽃 대관식에 가다 빅토리아 연꽃 대관식 난생처음 접해보는 빅토리아 연꽃 대관식에 초대받아 갔는데 어젯밤 밝은 불빛에 너무 시달려서 꽃잎이 마르고 빛이 바랜 것 같드군요 밤늦게 까지 기다려 보았으나 대관식 장면은 보여줄 생각을 않아서 그냥 왔습니다 2019. 9. 13. 구룡포에서 도요새를 담다 구룡포에서 도요새를 담다 2019. 09. 09 구룡포항구를 중심으로 2019. 9. 13. 황성공원의 소나무와 맥문동 황성공원의 소나무와 맥문동 2019. 8. 16. 인천 미추홀 공원의 새홀리기를 찿아서 인천 미추홀 공원의 새홀리기를 찿아서 큰소리를 지르면서 새들을 홀려서 혼을 뺀 다음 새를 잡는다고 해서 새홀리기 라는 이름을 간직하게 된 귀한 새를 담아 볼려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인천에 있는 미추홀공원에 다녀왔습니다 2019. 8. 15. 성주 경산리 성밖 맥문동을 찿아서 성주 경산리 성밖 맥문동을 찿아서 성주 경산리 성밖 왕버들 숲에 숨겨진 보물 맥문동의 고운 자태와 이끼를 보았습니다 2019. 8. 15. [스크랩] 잘못 알려진 신문왕릉과 효소왕릉 잘못 알려진 신문왕릉과 효소왕릉 현 신문왕릉은 효조왕릉(효소왕릉) 신문왕릉(효소왕릉) 사천왕사지에서 불국사쪽으로 약 300m쯤 가면 도로변 왼쪽에 큼지막한 왕릉이 1기가 있다. 신라 제 31대 임금 신문왕릉으로 사적 제18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무덤의 지름은 29.3m, 높이는 7.6m이다. 무덤의 외부모습은 둥근 봉토분으로서 밑둘레에는 벽돌모양의 잘 다듬은 돌을 사용하여 담장을 쌓아 올리듯 5단으로 쌓고 그 위에 갑석을 올려 무덤을 보호하였고 가로, 세로 90cm, 두께 50cm되는 다듬은 돌을 대각선으로 곱게 잘라내어 만든 삼각형 받침돌 44개를 호석에 등간격으로 받쳐 무덤외부를 튼튼하게 하였다. 신라 왕릉 형태의 변천 이러한 왕릉의 호석(護石)은 무열왕릉 형식에서 한단계 발전하여 무열왕릉 형식에서.. 2017. 4. 22. [스크랩] 성덕왕릉에 십이지신상이 세워진 까닭 성덕왕릉에 십이지신상이 세워진 까닭 성덕왕릉의 12지상 1. 전륜성왕 자처한 진흥왕 직계들 신라는 삼국 중 불교를 가장 늦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법흥왕 15년(528)에 이차돈(異次頓)의 순교(殉敎) 같은 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일단 불교를 공식 수용하게 되자, 마치 백지에 물들듯이 불교가 모든 신라 사람에게 삽시간에 전파돼 나갔다. 이는 신라가 이때까지 어떤 외래문화도 받아들인 적이 없는 고립된 지역으로 문화적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다가 최초로 불교로부터 외래문화의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한(漢) 사군(四郡) 설치(서기전 108년) 이후 이미 유교문화의 충격을 받았던 고구려나 백제 지역이 불교가 들어와도 한동안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것과 달리 신라에서 열띤 호응이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신라.. 2017. 4. 22. 이전 1 ··· 23 24 25 26 27 28 29 ··· 1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