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야기1 [스크랩] 성덕왕릉의 12지상은 왜 위치를 벗어나 있을까? 성덕왕릉의 12지상은 왜 위치를 벗어나 있을까? 신라의 제33대 성덕왕(聖德王;재위 702-737)은 신문왕(31대)의 둘째 아들이며 효소왕의 동복(同腹) 동생이다. 본명은 융기(隆基)였으나, 당나라 현종의 이름과 같아서 흥광(興光)으로 고쳤다. 효소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추대를 받아 즉위했다 왕위에 오른 성덕왕은 안으로는 정치를 안정시키고, 밖으로는 당나라와 외교를 활발히 하여 국력을 튼튼히 함으로써, 삼국을 통일한 이후 가장 평화롭고 살기 좋은 시절을 이루었을뿐 아니라, 문화면에서도 눈부신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 정치적 안정과 함께 성덕왕대는 사회적으로도 통일신라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성덕왕은 35년이나 왕위에 있다가 돌아가시니 뭇 백성들이 슬퍼하고 후히 장사지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 2017. 4. 2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