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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무주 적상산 안국사를 찾아서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4. 9. 24.

 

무주 적상산 안국사를 찾아서

 

 

적상산안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적상

산성안에 있는 사찰로 현재 안국사

자리는 옛날 호국사가 있던 곳이었으나

호국사는 1949년 불타고 터만 남아 있었으며

안국사는 무주 양수발전소가 건립되면서 수몰

지구 안에 포함되었기에 1991년 현재의 위치인

호국사자리로 이전 복원되었으며 극락전. 천불전.

지장전. 삼성각. 호국당. 일주문. 요사채가 있고

극락전에 있는 보물 영산회상 괘불은 천재 지변을

몰아내는 이 고장의 신앙 물로 전하여지고 있으며,

극락전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이며 적성산성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호국사비가 있고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성을 쌓게 하고 절을

고쳐지였으며 조선 광해군 때 적상산사고를

설치하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를 보관

하였으나 일제 강점기를 맞이하여 사고가

폐지되고 실록과 사고가 수난을 겪게

되었으며 적상산 사고에 보관 중인

실록은 구황실 문고로 편입되어

창경궁 장서각으로 옮겼으며

무주 양수발전소는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적상산 안국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양수발전소 건설로 수몰되게 되어 1992년에 옮겨 세운 사찰입니다

 

현재 안국사자리는 옛날 호국사가 있던 곳 이었으나 호국사는

1949년 불타고 터만 남아 있었으나

 

안국사는 무주 양수발전소가 건립되면서 수몰지구 안에 포함되었기에

1991년 현재의 위치인호국사자리로 이전 복원 되었습니다 

 

안국사 일주문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목조 맞배 건물로 단층기단에

다듬지 않은 2개의 기둥을 일렬로 세운 뒤 창방과 평방을 얹고

그 위에 다포로 화려하게 장엄하였습니다.

 

  

일주문에는 양방향으로 편액이 걸려 있는데 들어가는 입구에는 1992년

강암 송성용이 쓴 적상산 안국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국중제일정토도장은 무학대사가 이곳을 국중제일의 길지라고 한 설화에서

유래한 편액으로 안국과 정토를 바라는 안국사의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안국사에서 나오는 방향에는 1995년 여산 권갑석이 쓴 국중제일정토도장

(國中第一淨土道場) 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적상산이란 가을이면 붉어버린 단풍이 흡사 여인네의 치마 자락을 닮아

붉을 적(赤), 치마 상(裳)자를 써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989년 무주 양수발전소 댐 건설으로 당초 안국사 부지가 물에 잠기게 되어

적상산 산성안에 있는 폐사지 호국사가 자리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청하루는 2층 누각으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주변 산세가 첩첩이 쌓여 있고

1층은 통로이고 2층은 누마루로 되어 있습니다.

 

안국사는 고려 충열왕 3년(1277), 월인화상이 창건한 것이라고 도하고,

무학대사가 국가의 앞날을 위해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고 전합니다.

 

안국사 극락전은 안국사의 주불전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목조 맞배지붕

건물로 1991년 원행 스님이 옛 안국사 터에서 옮겨지은 것입니다.

 

  극락전 건물 외벽은 삼면에 심우도와 석가탄생도 등 다양한 설화적

도상을 표현하였으며 단청은 화려하게 장엄 하였습니다

  

극락전 우측창방 쪽에는 안국사의 설화를 입증하듯 딱 하루만큼

단청할 분량의 목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는데, 

 

안국사의 주지스님이 단청을 그릴 스님을

이곳 저곳 수소문하여 찾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얀 도포를 입은 노인이 나타나

“100일 동안 안을 보지 말라”고 하며

단청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주지스님이

 

단청 99일째 되던 날

그만 안을 몰래 들여다보고 말았다.

 

순간,그림을 그리던 노인은 온데간데 없고

붓을 입에 문 학(鶴)이 놀라

극락전 밖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극락전 단청은

아직도 완성하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극락전 내부에는 1772년(영조 48) 제작된

후불탱화가 있었으나 도난당하고

현재의 탱화는 최근에 만든 것입니다.

   

  극락전에는 아미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있는데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본존인 아미타여래좌상은 앉은키 67㎝, 무릎 폭 43.5㎝의 중형 불상으로.

고개를 숙여 구부정한 자세를 보이며 미소 띤 상호를 하고 있습니다. 

 

좌협시인 관음보살은 본존불과 흡사한 모습으로 짧은 상투 속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머리칼을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우협시인 세지보살은 관음보살과 대칭적인 구도로 앉은 키 61㎝,

무릎폭 36.5㎝로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극락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있는 석물들입니다

 

글씨가 씌여져 있습니다만 육안 식별이 어려웠습니다

 

  극락전 계단 좌우에 있는 괘불대는 자연석 모습으로

높이 190㎝의 장방형으로,

 

중간에 간목을 세울 수 있는 구멍이 있습니다.

 

 

괘불대 네면 중 3면은 자연석을 그대로하고, 지주앞면은 말끔하게 다듬어

‘擁正八年四月十五日立’이라는 음각의 명문을 새겨 놓았습니다.

   

  

이 괘불대 역시 본래의 안국사 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1728년 괘불이 조성된 후 1730년에 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안국사괘불은 1728년(영조 4)에 의겸·의윤 등

비구니 5명이 그린 것으로

 

가로 1,075cm, 세로 750cm이며 가뭄 때 이 괘불로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영산회괘불탱은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괘불도로 석가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다보여래ㆍ문수ㆍ보현보살이 있고,

 

왼쪽에 아미타불ㆍ관음ㆍ대세지보살이 서 있는 군도양식입니다.

 

이 괘불은 길이 10.75m, 폭 7.2m의 대형으로 임금과

왕비ㆍ세자의 만수무강을 위해 발원하였으며,

 

1750년경 경남 고성의 운흥사를 중심으로 전국 각처에서

활약한 의겸비구가 참여한 것이라고 합니다  

 

1792년(정조 16)과 1809년(순조 9)에 후배지를 중수한 기록만 전하고 있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현재 극락전 불단 뒤편에 보관되어 있으며, 

 

 

 

 

 

 

 

부처님의 생애와 십우도를 그렸다고 합니다

 

극락전 뒤편 언덕에 있는 삼성각은 1992년 원행 스님이 지은 건물로

소남 이규진이 쓴 삼성각(三聖閣)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안국사 천불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1991년 옛 사고 터에 있던

선원각을 옮겨 지은 것으로 전란의 화마를 입지 않은 유일한건물입니다.

 

  건물 내부는 중앙 불단을 중심으로 좌우 보조단이 있으며 석가여래좌상과

문수ㆍ보현보살을 비롯하여 석고천불좌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천불전 건물은 중간에 가로로 방을 쳐서 중층의 구조를 가진 독특한 모습으로,

하부는 사고를 수장한 창고를 겸하며 상부는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면에는 4분합의 빗살문과 강암 선생이 쓴 천불전 편액이 걸려 있으며,

좌우 측면에는 내부에 채광을 공급하는 특이한 교창이 있습니다.  

 

후불탱은 붉은 바탕에 금니로 출초한 홍탱으로 금어 남인식이

1969년에 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안국사 성보박물관은 정면 3칸 측면 7칸의 목조 팔작건물로, 1998년

세계 각국의 불상들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성보박물관에는 수집한 불상과 다기류 300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유물은 주지 원행 스님이 15년간 세계의 불교국가를

다니며 수집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장전은 1992년에 원행 스님이 극락전 아래 세운 건물로 건물 외부는 주련이

걸려 있으며 일중거사가 쓴 지장전 편액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범종각은 목조 팔작건물로 청하루 우측에 있는데

1994년 원행 스님이 건립한 것으로,

 

안국사의 옛 범종과 대화합의 범종을 봉안하기 위한 것입니다

   

현재 범종각에는 일중거사가 쓴 편액과 1996년 조성한 범종과 운판이 있으며,

1788년(정조 12)에 조성된 안국사의 동종이 함께 봉안되어 있습니다.

 

안국사의 종무를 담당하는 종무소 겸 공양 간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목조 맞배건물로

1992년에 세워졌습니다  

 

건물 외부에는 주련 4기와 거암 김봉관이 쓴 편액이 걸려 있으며 건물

전면 4칸은 툇마루를 가진 요사채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호국사는 1949년 여순사건 때 전소되어 그 터만이 남아 있던 것을, 1990년

적상호의 수몰로 안국사가 호국사지로 이전하면서 옛 가람을 기억하기

위해 호국사라는 편액을 이 건물에 걸어둔 것입니다.

 

 

안국사 옆에는 정면 8칸 측면 3칸의 목조 팔작건물로 1994년 벽암

스님이 쓴 호국사 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호국사는 조선 인조 때 전라감사로 있던 윤명은이 창건한 절로,

적상산성 내에 사고를 지키는 산성수호사찰이었습니다.

   

 

적상산성 호국사비는 적상산에 지은 호국사의 창건과정을 기록한 비로,

안국사 가람 축대 아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호국사비는 높이 103㎝로 쌍룡을 양각하였으며

1645년에 세워졌으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비각 안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적상산은 사면이 절벽으로 둘러쌓인 천혜의 요새로 되어 있어서

고려 말에 최영장군이 군사를 훈련시키던 곳 이라고도 합니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맑고 깨끗하리라는 기대감 속에

들어가 보았더니 먹기에는 좀 거북한 우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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