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팔도문화재답사

함양 일두 정여창 고택을 찾아서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4. 7. 18.

일두 정여창 고택을 찾아서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일두 정여창선생의 고택을

찾아가 보았는데 옛 부터 함양은

선비와 문인의 고장으로 이름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일두 정여창으로 비록

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고 다시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까지 당하는 고난을 겪은 인물이지만

성리학사에서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5현으로 칭송되는 인물로 이 집은 선생이

타계한지 1세기 후에 후손들이 중건을 하였고

12동 건물이 배치된 남도지방의 대표적 양반

고택으로 솟을 대문에 충.효 정려현액 5점이

걸려 있으며 정여창 고택은 양반가의 혼이

풍겨지는 곳으로 정여창 고택은 지정할

당시의 가옥 소유주의 이름을 따라

함양 정병호가옥 이라 하였으나

일두 정여창의 생가지에 중건

한 것으로 그의 호를 따서

일두 정여창 고택으로

변경 하였습니다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일두 정여창선생의 고택을 찾아가 보았는데

옛 부터 함양은 선비와 문인의 고장으로 이름난 고장입니다 

 

함양의 대표적인 인물이 일두 정여창으로 비록 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고

다시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까지 당하는 고난을 겪은 인물입니다

 

성리학사에서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5현으로 칭송되는 인물로

이 집은 선생이 타계한지 1세기 후에 후손들이 중건을 하였습니다

 

  일두 정여창 고택은 12동 건물이 배치된 남도지방의 대표적 양반 고택으로

솟을 대문에 충. 효 정려 현액 5점이 걸려 있습니다

 

  일두 고택은 양반가의 혼이 풍겨지는 곳으로 정여창 고택은 지정할 당시의

가옥 소유주의 이름을 따라 함양 정병호가옥 이라 하였으나

    

일두 정여창선생의 생가지에 중건한 건물로 2007년 1월 일두 정여창

선생의 호를 따서 일두 정여창 고택으로 변경 하였습니다

 

일두 정여창은 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고 다시 1504년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를 당하는 고난을 겪었지만 성리학사에서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5현으로 칭송되는 인물입니다.

 

함양 개평 한옥마을에 일두 정여창의 생가인 정여창 고택은 1570년 정여창

생가 자리에 지어진 이후 후손들에 의해 여러번 중건 되었습니다

  

민속자료 제 18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문화재 지정 당시의 건물주인

함양 정병옥 가옥, 정여창 고택, 일두 고택은 모두 같은 곳입니다.

 

일두 고택 안내판입니다

 

 

 

 

고택은 드라마인 토지에서 최 참판 댁의 촬영 장소로 유명하며 솟을대문에는

다섯 명의 효자와 충신을 배출했음을 알리는 5개의 정려가 있습니다  

 

일두고택은 전형적인 경상도의 양반집 형태로 솟을대문, 행랑채, 사랑채,

안채, 곳간, 별당, 사당 등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고택의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사랑채에 흥선대원군이

썼다고 하는 충효절의와 김정희의 글씨라고 하는 백세청풍이라는

커다란 글씨가 걸려 있으나 고증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좌 안동 우 함양은 유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영남 사림을 대표하는 말로

선비의 뿌리 깊은 양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고장입니다

 

함양군 지곡면에 자리한 개평마을은 조선시대 성리학을 대표하는 동방오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향입니다

 

일두는 한 마리의 좀이란 뜻으로 좀은 옷이나 책을 깕아 먹는 해충으로

정여창선생의 고택은 좀 두(蠹)자를 쓰고 있습니다

 

중요민속자료186호로 지정되어 KBS대하드라마 토지촬영 장소로 이용되면서

최참판댁으로 세상에 더 알려진 정여창선생의 고택입니다.

 

일두 정여창선생의 고택이 있는 개평(介坪)마을은 그 생김새가 댓잎

네 개가 붙은 개(介)자 형상이라고 합니다.

 

  마을 전체가 고택촌으로 하동정씨 노씨등이 많은 고택의 집성촌으로

 

 

일두 정여창선생은 어릴적 총명하여 중국인이 작명을 해주었다고 하는데

여창이란 이름으로 너희집안이 널리 번창하리라는 의미입니다

 

일두 정여창선생은 조선조 5현 중의 한분으로 김굉필, 이황, 이언적,

정여창, 조광조를 조선의 5현 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일두 정여창선생은 점필재(김종직)선생의 수제자로 스승이 가르칠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학문이 뛰어났으며 정치가 혼란하던 연산군시절에

연산군의 어릴 적 스승이기도 합니다

 

일두선생은 세종 때에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나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혼자서 독서에 힘쓰다가 김굉필과 함께 영남사림의 거두인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하였습니다.

 

  벼슬길에 나아가서도 세자에게 강론을 하는 시강원 설서를 지냈고

안음현감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칭송을 들었습니다.

 

연산군대에 그 스승인 김종직과 더불어 무오사화(1498년)에 연루되어

함경북도 종성으로 유배되어 별세하였습니다.

 

중종 때 우의정으로 증직되었고 시호는 문헌공으로 후학들이 그를 기려 지은

남계서원이 수동면에 있고 서원에서 가까운 승안산에 산소가 있습니다.

  

개평이라는 이름은 개울 두 줄기가 마을을 끼고(介) 돌아 흐른다 해서

불리워진 이름으로 들을 개들이라고 합니다.

 

일두 정여창 고택 사랑채 오른편에 있는

손님 모시는 안사랑채가 있습니다

 

 

 

 

 

 

 

 

 

 

 

 

 

 

 

 

 

 

 

 

 

 

 

 

 

 

 

 

 

 

 

 

 

 

 

 

 

 

 

 

 

 

 

 

 

 

 

 

 

 

 

 

 

 

 

 

 

 

 

 

 

 

 

 

사랑채에서 일각문을 지나 안채로 들어가면 안채의 대청마루 뒤로 사당

건물이 있고 안채 뒷편으로 별당과 안 사랑채가 따로 있습니다.

 

 

 

 

 

 

 

 

 

 

 

 

 

 

 

 

 

 

 

 

 

 

 

 

 

 

 

 

 

 

 

 

 

 

 

 

 

 

 

 

 

 

 

 

 

 

 

 

 

 

 

 

 

 

 

 

 

 

 

 

 

 

일두고택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이 일두고택이고,

오른쪽이 솔송주 박물관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