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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스크랩] 남한산성, 세계유산 등재 확정.. 한국서 11번째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4.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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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세계유산 등재 확정.. 한국서 11번째

"비상 왕궁(병자호란 때 인조가 거주한 왕궁)으로 쓴 세계 유일의 山城"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되고 있는 제38차 세계유산정부간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 6.15.-25.)는 현지 시각 6.22.(일)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남한산성(Namhansanseong)'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재키로 결정하였다.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의 군대를 피해 47일간 항전을 벌이다 성을 내려와 항복한 치욕의 장소로도 각인돼 있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세계유산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영광의 문화유산이 되었다.

 

남한산성은

   ▲ 동아시아에서 도시계획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증거로서의 군사 유산이면서

   ▲ 지형을 이용한 축성술과 방어 전술의 시대별 층위가 결집된 초대형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라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포곡식 산성'은 계곡을 감싸고 쌓은 산성을 말한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남한산성이 "특정 기간과 문화권 내 건축이나 기술 발전, 도시계획 등에서 인류 가치의 중요한 교류 증거"가 되고, "인류 역사의 중요 단계를 보여주는 건물·건축·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탁월한 사례" 등으로 세계유산 조건을 충족시켰다고 했다.


 

 

 

 

 

◇동아시아 군사방어술 집대성한 살아있는 유산

세계유산위원회는 특히 남한산성이 17세기 초 비상시 임시수도로서 당시 일본과 중국의 산성 건축 기술을 반영하고 서양식 무기 도입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군사 방어 기술을 종합적으로 집대성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했다.

남한산성은 임진왜란(1592~1598)과 정묘호란(1627)·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국가 유사시에 방어력을 갖춘 임시수도의 필요성을 절감함에 따라 등장한 산성도시로서 새로운 화포와 무기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성곽을 증·개축했다.

남한산성은 그 자체로 독특한 유산이면서 당시 동아시아 사회와 교류한 흔적이기 때문에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더 크다는 것이다.

남한산성은 또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 단계와 무기 체제의 변화상을 잘 나타내며, 지금까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았다.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위원장인 이혜은 동국대 교수는 "남한산성은 일상적인 왕궁과는 별개 산성이면서도 병자호란 때는 왕이 일상적으로 거주한 왕궁이라는 '비상 왕궁'(Emergency Palace)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면서 "이런 산성은 세계적으로 남한산성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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