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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스크랩] 산청 지리산 기슭의 대원사(大源寺)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4. 6. 2.

<!-by_daum->산청 지리산 기슭의 대원사(大源寺)

 

 

방장산 대원사(方丈山 大源寺)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에 걸쳐있는 지리산의 경상도쪽에는 산청군이 자리잡고 있다. 산청군은 명의 허준과 유의태의 고향으로 한의학이 발달하였으며 문익점의 목화시배지로 유명한 곳이다.

 

산청군의 서쪽에 위치한 지리산의 기슭에는 비구니승의 도량처로 유명한 대원사(大源寺)가 있고 좀 더 아래쪽에는 내원사(內院寺)라는 절이 있다 

 

 

대원사(大源寺)

 

 

대원사 일주문

  '방장산 대원사'라고 현판이 걸려있는데 방장산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다

 

 

대원사(大源寺)는 지리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대원사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대원사계곡은 물이 맑고 주변의 경관이 수려하며, 무제치기폭포는 맑은 날에도 무지개가 서리고, 서리봉은 원시림이 울창하여 여름의 피서지로 유명하며,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워 많은 신도와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또한 대원사 부근에는 옛 선비들이 학문을 닦았다는 거연정(居然亭)군자정(君子亭)등의 정자터가 있으며 그리고 수수약수(首水藥水)도 유명하다. 

 

대원사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약 18㎞이고, 등산로를 따라 8까지는 마을이 있어 큰길이 닦여있기 때문에 등산객이 많이 찾는 등산로 중의 하나이다. 대원사에서 치밭목 대피소와 중봉을 거쳐 천왕봉으로 연결되는 경로이다 

최근 이 지역은 고산습지로 유명한 왕등재습지와 외고개 습지 등 주요한 습지가 발견되어 그 생태적 가치가 더욱 높은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대원사의 출입문이기도 한 봉상루

 

 

 

봉상루의 황룡과 봉황그림

 

대원사 전경

 

 

쪽부터 천광전, 원통보전, 대웅전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대원사는 지리산의 산청군쪽 동남쪽 골짜기에 있는데 548(진흥왕 9)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평원사(平原寺)였으나 임진왜란 때 전부 불타버렸다.그 뒤 1685(숙종 11) 회암 운권(雲捲) 선사가 덕산의 불장암(佛藏庵)으로부터 제자들을 데려와 평원사 옛터에 웅장한 사찰을 중창하여 대원암(大源庵)이라 하고 천광루(天光樓)를 지어 여기에 선불간경도량(禪佛刊經道場)을 개설하여 영남 제일의 강당이 되었다.

 

1724(경종 4) 담암 태흠 선사가 사리탑을 보수하였고, 1870년 고종 때 구봉 혜은(慧昕) 선사가 경내 서쪽에 조사영당을 보수하고, 동쪽에 방장실을 짓는 등 전각과 누각을 중건하였다. 이 때 대원사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대원사는 191412일 밤 화재로 인하여 절 전체가 불탔으나. 만하 영태 주지와 포담, 영암 만성, 영허 세일, 원익 기원 등 50여 명의 스님들이 중창을 서원하여 19153월에 중창불사를 시작하였다. 그 뒤 4년이 지난 1917년 불사를 완료하니, 모두 12동 건물에 184칸 규모의 대가람을 이루었다. 이전보다 배로 늘어난 규모였다. 

그러나 1948년에 일어난 여순반란 때 진압군에 의해 또한번 사찰전체가 불타버렸고, 이어 벌어진 6.25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그 뒤 1955년에 법일(法一) 비구니 스님이 주지로 와서 탑전을 짓고 중창을 서원하였는데, 불교정화운동의 여파로 일시 중단되었다가 1959년 고등법원에서 승소하여 난관을 극복했다. 이렇게 어려운 여건 아래 한 채 두 채씩 전각을 지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전각의 배치도

(봉상루 앞에 승용차 주차장이 있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대원사는 경상남도 양산의 석남사, 충청남도 견성암 등과 더불어 대표적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담장 위로 구층탑이 보이고 탑의 뒤쪽이 비구니의 수도원인 사리전의 지붕이다

 

 

사찰의 본전 뒤에는 경내 암자인 사리전(舍利殿)이 있는데, 주로 타지에서 수도하러온 비구니들이 수도를 하는 수도원이다. 수도원 옆에는 1300년 전 자장율사가 건립한 9층의 반광탑(反光塔)이 있으나 수도원 경내에 위치하고 있어 일반 신도에게는 접견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지정 보물인 구층탑을 보려고 찾아온 이들에게 많은 실망을 주고 있다

 

 

대웅전

 

 

 

대웅전

 

 

대웅전의 삼존불

 

 

대웅전 내의 탱화

 

대웅전 어칸의 문살(매화,난,국화,대)

 

정면 3, 측면 3칸의 규모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올린 다포식(多包式) 건물이다 

어칸의 창호는 솟을빗살창으로 짜아 사분합의 여닫이문을 달았고 양쪽의 협칸은 빗살창의 사분합 여닫이문을 달아 놓았다. 내부의 바닥은 마루를 깔고 천정은 우물반자로 마감하였다 

불단에는 석가삼존상과 후불탱을 모시고 있으며, 이 외에 독성탱, 칠성탱 등이 함께 모셔져 있다.

 

 

 

원통보전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의 규모로 대웅전 오른쪽에 있다 

대웅전과 비슷한 1950년대 후반에 지어져 대웅전과 더불어 현재 대원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으로 꼽힌다안에는 금동 관음보살좌상과 천수천안관음탱 그리고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다.

 

특이하게 건물의 측면이 정면으로 되어 있어 처음부터 이렇게 지었는지 아니면 건립 후 구조를 번경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남쪽을 향한 측면에 편액이 붙어있고 어칸과 창호가 있다.

 

 

 

명부전 

 

 

 

 

대웅전 왼쪽에 자리하며, 1981년에 지었다. 팔작지붕에 앞면 3, 옆면 2칸의 아담한 규모를 하고 있다.

안에는 지장보살좌상과 지장탱, 그리고 시왕상(十王像)과 그 권속들이 봉안되어 있다

 

 

 

천광전(스님들의 승방으로 사용되는 건물이라 한다)

 

천광전의 정면 벽면에 씌여진 글씨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제1112

 

 

 

 

 

 

 

대원사 다층탑위 4장의 사진은 << />PAN>지리산 대원사 카페 http://cafe.daum.net/JirisanDaewonsa>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대웅전 뒤에서 본 다층탑

 

사리전 출입문쪽에서 본 다층탑

 

 

보물 1112호로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현재 높이는 6.6미터이다. 

646(선덕여왕 15) 자장 율사가 중국에서 이운해 온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웠다. 천 년이 넘는 세월 속에 탑신이 기울고 하여 조선시대에 중건되었고, 최근에는 1972년에 보수되었다 

 

조선시대에 1724(경종 4) 태흠 선사가, 그리고 1784(정조 8) 옥인 선사가 각각 수리하면서 탑속 사리함에서 사리 72과가 나왔다. 큰 것은 녹두만 하고 작은 것은 기장만 한데 오색이 영롱하다고 한다.

근래에 탑을 다시 보수 정비하면서 3, 5, 7층에 나누어 봉안하였다.

 

'조선불교통사' '불조유골동래설'에는 '지리산에 3대탑이 있으니, 대원사 탑이 동탑이요, 법계사 탑이 중탑이며, 구례 화엄사 삼층석탑이 서탑인데 1년에 두 차례씩 세 탑에서 각각 나온 서광(瑞光)이 허공에서 만나 오색무지개 빛을 비춘다. 이는 곧 불사리가 한 몸이라는 동근일체(同根一體), 지리산 전체가 불신(佛身)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8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상륜부 머리장식은 복발과 찰주 등 일부만 남아있다.

원래 구층탑이었을 것이나 한개의 층이 소실되고 팔층만 남아있어 '다층탑'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여진다  

 

 

 

 

 상층기단의 인물상과 면석의 불상

 

 

 

탑 앞의 봉로대위 3장의 사진은 <골< />PAN>목안의 작은 사진관 http://sajin365.com/902>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상층기단 우주를 대신하여 세워놓은 인물상

 

상층기단 면석의 불상

 

 

상대기단은 이 탑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으로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우주를 새기는 대신 따로 인물상(人物像)을 만들어 네모서리에 세웠으며 기단면석에는 4면에 각각 앉아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 1구씩을 새겨 놓았다.

 

탑신의 각 지붕돌은 처마가 두터우며 네 귀퉁이에서 약간 들려있다. 8층 지붕돌에는 금방이라도 고즈넉한 경내를 깨울 듯 모서리마다 풍탁이 달려 있다.

 

 

탑의 상륜부와 8증 옥개석의 풍탁

 

지붕돌(옥개석)과 몸돌(탑신석)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처음 세웠던 탑이 임진왜란 때 파괴되자 조선 정조 8(1784)에 다시 세워 놓은 것으로, 드물게 남아있는 조선 전기의 석탑이다. 전체적인 체감비율이 뛰어나고 조각은 소박하다. 

 

이 탑은 철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붉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강렬한 인상을 주며, 원래는 9층탑이었을 것이나 현재는 8층까지만 남아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탑에서 서광이 비치고 향기가 경내에 가득했다고 하며,

마음이 맑은 사람은 근처 연못에 비친 탑의 그림자로 탑안의 사리를 볼 수 있었다고도 한다

 

 

 

 

 

 

 

 

 

 

 

 

 산신을 모시고 있는 산왕각

 

 

 

대웅전에서 본 봉상루(鳳翔樓)

 

범종각

 

석등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석조물

 

 

 

 

 

공양한 물을 버리는 청수대(아귀밥통이라 부르기도 한다)

 

 방광비

 

 방광탑방광(放光)이란 스님의 사리에서 '빛이 발산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입구의 승탑

 

 

 

출처 : 토함산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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