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합천리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을 찾아서
청도군
합천리에 있는
석조 아미타여래입상은
불신과 광배를 한 돌에 조각
하였으며 과수원내의 전각 안에
있어서 길가에서는 보이지 않고 논둑
길을 따라 과수원 안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는데 머리에는 나발과 육계가 있고 이마
에는 백호의 흔적이 보이고 눈과 코는 훼손이
심한 편이나 얼굴은 온유한 편으로 정면을 바로
보고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며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았고 오른손을 가슴 위에 올려
엄지와 검지를 맞대었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옷
자락을 잡고 있으며 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선
으로 구분하였는데 가장자리에는 화염문이 새
겨져 있으며 이불상은 높이162cm의 입상으로
정면관을 한 반 양각의 석조 아미타여래
입상이며 주변은 이서국 관아가 있었던
자리로 신라시대에 천로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석불이 처음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 청도군유형문화재287호 =
청도군 합천리에 있는 석조 아미타여래입상은 불신과 광배를 한 돌에
조각하였으며 과수원내의 전각 안에 있어서 길가에서는 보이지 않고
논둑길을 따라 과수원 안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습니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합천리에 있는 이 불상은 청도군 유형문화재
제287호로 불신과 광배를 하나의 돌에 새긴 석조불 입상입니다
불상의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며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았고 오른손을
가슴 위에 올려 엄지와 검지를 맞대었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옷자락을 잡고 있습니다
합천리에 있는 석조 아미타여래입상을 찾아가는 것은 보물찾기와 같아서
마을 옆 과수원 내에 있는 전각 안에 있어서 길가에서는 보이질 않고,
논둑길을 따라 과수원 안으로 들어가야만 볼 수 있습니다
불상의 머리에는 나발과 육계가 있고 이마에는 백호의 흔적이 보이고 눈과
코는 훼손이 심한 편이나 얼굴은 온유하며 정면을 바로보고 있습니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합천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전체
높이 200㎝, 불상 높이 162㎝.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87호. 현재
불상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원래 대도사라는 절터였다고 합니다.
이불상은 높이162cm의 입상으로 정면관을 하고 있으며 반 양각의 석조아미타
여래입상이며 주변은 이서국 관아가 있었던 자리로 신라시대에 천로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석불이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의 얼굴은 친근감을 주는 온유한 인상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정면관을 한 반양각의 석조아미타여래입상입니다.
이 불상은 당나라의 양식이 통일신라로 수용되어 정착되는 시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의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솟아 있습니다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의 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선으로 구분하였는데 내부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가장자리에는 화염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석조 아미타여래입상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몸에 밀착되어
풍만한 신체를 더욱 드러나 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좁은 이마에는 백호의 흔적이 있고 눈과 코는 깨어지고 닳아 훼손이 심하나
얼굴은 온유한 인상으로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석조 아미타여래입상의 손모양은 오른손은 가슴 위에 얹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옷자락을 가볍게 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벌어진 가슴에는 넓은 돋을새김의 엄액의가 왼쪽 어깨 위에서 오른쪽
허리까지 대각선으로 내려와 띠 매듭으로 마감되었습니다.
옷 주름은 간결하게 처리하여 표현했으나 불신은 어깨가 넓고 허리가
약간 잘록한 편이나 상체는 짧고 하체는 길게 표현하였습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는 타원형으로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굵은 선으로 구분하여 새겼습니다.
이 불상은 거신광(부처나 보살의 온몸에서 나오는 빛)과
함께 한 돌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보존 상태를 보면 광배의 윗부분과 상호 오른손 및 왼쪽
다리 부분이 일부 파손되어 결실되어 있습니다.
법의는 두꺼운 통견의로 가슴까지 수직으로 내려왔고 오른팔에 걸친
옷자락이 발밑까지 부드럽게 내려왔습니다.
불신과 광배를 하나의 돌에 새겼으며, 청도의 진산인 남산을
정남으로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왼쪽 무릎 부위를 보면 깨어져 있는데, 그것은 해방 전에 호미로
때리면서 기도하던 여인들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과장된 어깨와 잘록한 허리의 윤곽을 드러내면서 내려온 옷자락은 다리에서
좌우 대칭으로 동심 타원형의 옷 주름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미타불상이 단독으로 모셔진 경우도 흔치 않고, 오른쪽 손의 수인이
중품상생이라 해서 아마타여래 석불이라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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