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팔도문화재답사

경남 의령 봉황산 일붕사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3. 1. 11.

 

경남 의령 봉황산 일붕사를 찾아서,

   

봉황산일붕사는

경남 의령군 궁유면

평촌리 봉황산에 있으며

대한불교 일붕선교종 총본산

으로 서경보스님은 일붕선교종을

창종하시고 초대종정으로 세계 불교

법왕청을 설립하여 초대 법왕으로 추대

되신 일붕 서경보스님이 1986년 봉황산에

굴을 파고 동굴 법당을 만들라고 하였는데

일반 대웅전과는 달리 동굴 법당2개가 있으며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영국 기네스북에 등재

되어 있으며 서경보스님의 유품기념관이 있고

동굴 법당 외에 바위틈에 자리한 나반존자와

병풍바위 밑의 약사여래불, 삼천불의 지장보

살이 모셔져 있는 지장전이 있고 80 여과의

일붕존자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으며 일붕

실버랜드를 운영하여 노인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찰로 서기727년

에 신라의 혜초스님이 창건한 성덕

암이 현재 일붕사의 전신이라고

하는 좀 특이한 사찰입니다

봉황산 일붕사는 경남 의령군 궁유면 평촌리 봉황산에 있으며

대한불교 일붕선교종 총본산이라고 합니다

 

서경보스님은 일붕선교종을 창종하시고 초대종정으로 세계 불교

법왕청을 설립하여 초대 법왕으로 추대되신분입니다

 

일붕 서경보스님이 1986년 봉황산에 굴을 파고 동굴 법당을 만들라고

하였는데 일반 대웅전과는 달리 동굴 법당2개가 있습니다

 

이 동굴법당은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영국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일붕사에는 서경보스님의 유품기념관이 있고 동굴 법당 외에

바위틈에 자리한 나반존자와 병풍바위 밑의 약사여래불,  

 

삼천불의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는 지장전이 있고 80 여과의

일붕존자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으며

 

봉황산 일붕사는 서기727년에 신라의 혜초스님이 창건한 성덕암이

현재 일붕사의 전신이라고 하는 좀 특이한 사찰입니다

 

범종루 밑에는 사천왕을 모시는 천왕문이 있습니다

 

서방 광목천왕과 북방 다문천왕입니다

 

남방 증장천왕과 동방 지국천왕입니다

 

 

동방의 지국천왕

 

 

남방 증장천왕

 

 

서방 광목천왕

 

 

북방 다문천왕

 

천왕문 천정에 그려져 있는 용문양입니다  

일붕사 종무실입니다

 

일붕사는 천혜의 자연요건을 갖춘 봉황산에 소재한 이곳은

대한 불교 일붕선교종 총본산 입니다.

 

일붕사에는 오래전부터 일붕 실버랜드를 운영하여 노인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찰입니다 

 

서기 727년에 신라의 혜초스님이 창건한 성덕사가

현재 일붕사의 전신이라고 합니다. 

 

불교에 관심이 있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일붕 서경보스님은

1914년 제주도 서귀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일붕 서경보스님은 19세인 1932년 제주 산방굴사로 출가하셔서

혜월 스님을 은사로 수계 득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일붕 서경보스님은 득도를 한 후 69년 미국 템플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동국대 불교대학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일붕 서경보스님은 세계 각국 유명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무려 126개나 취득하여 세계 최다 박사학위

취득자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일붕 서경보스님은 1988년 조계종에서 분리되어 일붕 선교종을

창종하시고 초대 종정에 추대되셨습니다

 

일붕 서경보스님은 92년에는 세계 불교 법왕청을 설립하여 초대 법왕에

추대되시어 대한 불교를 세계에 널리 전파 하였습니다

 

일붕 서경보스님은 1996년 6월 25일 세수 83세,

법랍 64세로 조용히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곳은 약 1330년 전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 때 최고의

격전지였으며 당시 왕군이 봉황대 영역 안에 이 지역의 수많은

영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태종 무열왕의 삼왕자가 계셨던 궁소 봉황대의 사찰에서 비로자나불을

안치시켜 호국 일념으로 성덕왕의 덕을 기렸고

 

성덕대왕이 봉황대의 산세가 빼어남과 선당의 얼이 배인 곳을

천추만대에 기념하자는 뜻에서 자신의 왕호를 내려

 

성덕사라는 귀족적 사찰을 지었으니 과히 그 명성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덕사도 이조 성종25년 국령으로 불사 33개소를 회합

함으로서 그 영향을 받아 승려를 학대하고 사찰을 파괴함으로서

 

봉황대 성덕사는 어쩔 수 없이 사찰을 궁류면 운계리 팔사곡

자사산으로 옮겨 정수암으로 그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 후 (148년전)에 장사곡 출신의 어떤 인물이 들어와 스님을

축출하고 암자를 파괴할 때 쇠망치로 수없이 내려쳐도

 

미륵불상 한불이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 것을 보고 주승이 범상치 않은

일이라며 그 불상을 업고 합천군 연호사로 도망하였다고 합니다.  

 

 지금의 연호사 불상 중 일부분이 성덕사 불상이라고 전해오며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암자로 있다가

 

1934년 8월 26일 당시의 면장이 산주와 더불어 봉황대의 덕경을

도우기 위하여 벚꽃나무를 심고

 

관세음보살상과 여래불상을 모셨으나 소실되어 다시

이야용 스님이 법당을 짓고 성덕사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1984년 10월 24일 누전으로 인하여 또다시

성덕사법당이 완전 소실되었으나

 

1986년 7월 26일 사단법인 일붕 선종회 (지금의 재단법인 일붕선교종)

창종주 일붕 서경보 종정 큰스님이 혜운 주지스님을 부임케 하여

 

이 산 이름이 봉황산이라 산의 기가 너무 세어 사찰이 부지 못하니

기를 줄이기 위해 굴을 파야 한다고 하시므로

 

주지스님이 불사를 이룩하여, 사찰 명을 일붕사로

명명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동양 최대의 동굴법당 456.2m²(138평)과 297.5m²(90평) 규모의

동굴 무량수전이 완공되어 불자들의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 도량으로

하루 평균 2백여명의 불자들이 오고 있습니다.

 

기상이 천태만상으로 기기 절묘한 봉황대가 있는 궁류면은 의령군의

북쪽에 위치하는 면으로서 합천군과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봉황산에는 이미 신라시대에 불법의 터전이 이룩되어 일찍이 신선들이

하늘에서 봉황을 타고 내려와 약수를 마셨다는 봉황대를 비롯하여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는 봉황암이 일명 봉두암으로 되었고 봉황단,

봉황암, 봉황루, 석문, 사무천 등의 명소가 즐비하게 있습니다.

 

 일붕사는 사찰대지가 16,529m²(5천평), 임야는 99,174m²(3만여평)이고,

신도수는 2천여세대, 굴 대웅전은 456.2m²(138평)이며,

 

석굴무량수전 297.5m²(90평), 제1요사, 제2요사, 조사전, 약사전,

북극전, 나한전, 산신각, 종각 등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동굴법당은 봉황산의 기가 너무 세다고 하요 기를

다스리기 위하여 동굴을 팠다고 하는데

 

동굴을 파는 공사만 7년이 걸렸다고 하며 동굴의 길이27.5m

높이8.5m 면적456 평방미터라고 합니다

 

전국 1200 여개 사찰을 거느리고 있는 일붕사의 주지

혜운 스님은 일붕사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종무소와 요사체를 지나 일붕사를 일으킨 서경보 큰스님의

사리탑을 지나면 거대한 바위와 마주하게 됩니다.

 

 

일붕사는 2개의 전각이 있고 오른쪽이 석굴 대웅전,

왼쪽이 석굴 무량수전이 있습니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동굴 끝으로

삼존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동굴법당은 7년간의 굴착작업 끝에 지난 96년 준공됐으며, 높이 8.5m,

폭 12.7m, 길이 27.5m에 면적이 456㎡에 달하는 규모로

 

이 동굴법당은 96년에 국내최대 동굴 법당으로 세계

기네스북에 공식 등재된 곳입니다.

 

 

 

 

 

 

 

 

 

 

 

 

 

 

 

 

 

 

 

 

 

 

 

 

 

 

 

 

 

 

 

 

 

 

 

 

 

 

 

대웅전을 나와 왼쪽 무량수전으로 들어가면 대웅전보다 규모는

작지만 지장보살 3000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동굴법당을 지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난 86년

일붕선교종과 일붕사를 창건한 서경보 큰스님이

 

  주지인 혜운 스님에게 봉황산의 화기를 다스리려면 동굴을

파야 한다고 해 대역사가 시작됐다고 하는데,

 

  지장보살 3000불도 같은 이유로

모셔지게 됐다고 합니다

 

무량수전 동굴 입구를 수호하는 금강역사상입니다

 

동굴법당으로 가기 전 바위틈으로 떨어지는 폭포수도

같은 이유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 때 최고의 격전지였던 이곳에 성덕왕이

직접 전투를 지휘했고,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곳에

사찰을 지었고 왕의 이름을 따 성덕사로 지었다고 합니다.

 

봉황산일붕사를 수호하기 위하여 출현한 바위인듯 인왕상처럼

입구에 우뚝 서 있는 바위 모습입니다

 

이 곳에 성덕왕이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이곳의 지명도

궁류면이 되었다고 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