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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보천사지 삼층석탑과 승탑을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3. 1. 8.

 

보천사지 삼층석탑과 승탑을 찾아서

  

의령 보천사지는

수암사라고도 전해지며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사찰로

창건 이후의 내력은 알려지지 않고

현재 절터에는 보물인 보천사지 삼층

석탑과 보물인 보천사지 승탑만 있는데

의령 보천사지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얹었는데 고려초기의 탑이지만

화강암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의

삼층석탑으로 높이는 4.57m이고 보천사지승탑은

삼층석탑에서 동북쪽으로 150m 떨어진 산기슭에

세워져 있으며 높이는 3.36m이며 형식은 팔각원

당형으로 어느 스님의 승탑인지는 알 수 없어서

사지명을 붙여 보천사지 승탑이라고 하며 승탑의

하대석은 구름무늬를 새긴 상단 면이 곡선을 이

루고 있으며 승탑 상륜부는 모두 없어진 상태

이지만 조각이 매우 간략하고 품위가 있어

보이며 전체적으로 각 면을 안으로 굽어

깍은 점이 특징적이며 승탑이 건립된

시기는 고려 전기라고 합니다

 

 

 

의령 보천사지는 수암사라고도 전해지며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사찰로

창건 이후의 내력은 알려지지 않고 절터에는 보물인 보천사지

삼층석탑과 보물인 보천사지 승탑만 있습니다

 

 

보천사지승탑은 삼층석탑에서 동북쪽으로 150m 떨어진 산기슭에

세워져 있으며 높이는 3.36m이며 형식은 팔각원당형으로

 

 

어느 스님의 승탑인지는 알 수 없어서 사지명을 붙여 보천사지 

승탑이라고 하며 보물 제 472호 입니다

 

 

이 절에 빈대가 많아 스님들이 살기가 힘들어 지자 승려들이

다른 절로 떠나게 되었고 절은 바로 폐사되었다고 하는데,

조선 중기 이전에 이미 없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절터에는 보물 제373호로 지정된 의령 보천사지 삼층석탑과

보물 제472호로 지정된 의령 보천사지 승탑만 남아있습니다

 

 

 

절이름에 샘천(泉)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아 고성 옥천사(玉泉寺)가

옥천(玉泉)이라는 샘이 있어 옥천사라고 이름을 지었듯이

보천사(寶泉寺)도 샘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짐작됩니다

 

 

의령 보천사지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얹었는데

고려초기의 탑이지만 화강암으로 된 삼층석탑입니다

 

 

이 보천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의 삼층

석탑으로 높이는 4.57m으로 보물 제 373호입니다

 

 

보천사지에 있는 삼층석탑으로 2단의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얹었는데,

고려초기의 탑임에도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을 이어받고

있는 탑으로 높이는 4.57m, 재료는 화강암입니다.

 

 

옥개석은 밑에 5단의 받침이 있고 옥개석 위의 지붕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흘러내려 네 귀에서 약간 반전되었으며 옥개석의

전각에는 풍탁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탑의 지대석은 네 모서리마다 큰 괴임돌을 두었는데 하층 기단에는

양 모서리에 우주를, 가운데는 탱주를 하나씩 새겼습니다.  

 

 

그 위에는 두 장의 길고 판판한 돌을 좌우로 얹고 그 사이에 작은 2개의

널돌을 끼워놓은 것은 돌이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기단의 주위에 장대석으로 넓은 탑구를 설치한 것은 고려

초기의 석탑에서 많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상층 기단은 각 면의 양쪽 모서리에만 우주 모양을 새겼을 뿐,

가운데 탱주는 생략하였습니다.

 

 

갑석은 2매의 얇은 판석을 덮었는데 밑에는 부연이 있고 윗면은 수평이며

한가운데에 호형과 각형의 2단 굄이 탑신을 받치고 있습니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하여,

층층이 온화하게 크기를 줄이면서 올려놓았는데 몸돌에는

모서리에만 뚜렷하게 우주를 새겼습니다,

 

 

옥신과 옥개를 각각 다른 돌로 만들었는데 각 층이 알맞은

비율로 줄어들어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상륜부는 조그마한 노반만 남아 있으며 최근까지도 그 위에 불꽃조각을

한 수연이 얹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 탑은 기단부의 구성에 탑구를 설치하는 독특한 수법을 구성하였고

석재의 결구가 간소화된 면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원만한 비례를

나타내고 있으며 조형적으로도 균형과 안정감이 있습니다.

 

 

이 탑은 1967년 도굴로 인하여 무너지면서 부분적으로 상당한 손상을

입었으나 해체 보수하여 완전 복원되었으며 당시 3층옥개석에서

지름 6.5㎝, 깊이 13.5㎝의 찰주공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세음보살상이 333불을 좌우로 도열되어 있는

특이한 형식의 새로 지은 사찰이 있습니다

   

 

  이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인 보천사지 삼층석탑의 우측에는 동전교환소가 있어서

333개의 동전을 교환하여 관세음보살상 앞에 동전을 시주한다고 합니다

 

 

보천사는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삼층석탑에서 동북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산기슭에 승탑이

세워져 있으며 높이는 약 3.36m입니다

 

 

조각이 매우 간략하고 품위가 있어 보이며 전체적으로 각 면을 안으로 굽어

깍은 점이 특징적이며 승탑이 건립된 시기는 고려 전기라고 합니다

 

 

승탑은 위 아래 모두 팔각원당형의 기본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어느 스님의 승탑인지 알 수 없어 사지명을 붙여

보천서자승탑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정사각형의 바닥 돌 위로 1단의 굄을 만들어 하대석을 받치고 있으며

그 위로 기단의 하대석ㆍ중대석ㆍ상대석을 올렸습니다.

 

 

하대석은 2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이에 돌띠를 돌려 구분하였으며,

8각으로 된 아랫단의 각 면에는 안상을 1구씩 조각하였는데 윗단에는

8각에는 전면 가득 용과 구름무늬를 깊게 돋을새김 하였습니다.

 

 

하대석 위에는 각형과 호형의 3단 테두리 장식이 중대석을 받치고 있으며

중대석도 8각으로 하단 가까이에 테를 돌렸고 각면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긴 후 여덟 면에는 타원형의 안상을 새겨놓았습니다

 

 

상대석에는 2단의 받침을 둔 위에 2겹으로 위를 향한 16장의 연꽃잎을 두텁게

조각하였고 그 윗면에는 각형과 호형으로 된 3단의 탑신고임을 두었습니다.

 

 

옥개석은 매우 두꺼운 모습으로 옥개 밑면에는 2단의 받침이 있고

옥개 밑면은 수평을 이루고 있으며

 

 

옥개석의 정상에서 각 모서리로 뻗치는 선은 용마루처럼 높게 굵게

돋을새김을 하였고 끝마다 큼직한 귀꽃장식을 얹어 놓았습니다.

 

 

8면의 탑신은 각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고, 8면 중에서

남쪽과 북쪽에는 양각으로 문비와 자물쇠 모양을 새겨놓았을 뿐

다른 면에는 이무런 장식이 없습니다.

 

 

승탑의 하대석은 구름무늬를 새긴 상단 면이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승탑 상륜부는 모두 없어진 상태입니다 

 

 

의령 보천사지는 수암사라고도 전해지며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사찰로

창건 이후의 내력은 알려지지 않고 절터에는 보물인 보천사지

삼층석탑과 보물인 보천사지 승탑을 답사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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