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통도사 국장생석표를 찾아서
통도사국장생은
4만 7천보(步)나 되는
통도사를 중심으로 사방
열두곳에 세워놓은 장생표의
하나로 절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시
이며 국장생 이란 명칭은 나라의 명에
의해 건립된 장생이라는 의미로 통도사의
기록에 따르면 산천의 기를 보충하기 위해
열두곳에 세웠다고 하며 국장생석표를 장승의
초기 모습으로 보기도 하는데 장승이라는 뜻의
장생 앞에 국자가 붙은 것은 국명에 의해 건립된
것임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국장생 석표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것으로는 통도사 국장생석표 외에도
울주군 삼남면 상천리에 있는 국장생석표와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 입구에 있는 국장생석표,
경남 밀양시 무안리 국장생석표가 있는데 모두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장생은 수호신,
이정표, 경계표 등의 구실을 하고 있어
민속신앙과도 깊은 관계가 있으며
장생은 경계표와 보호의 구실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통도사로부터 직선거리로 약 2.6km 떨어진 양산 하북면 백록리의
도로변에 '통도사 국장생 석표'라 부르는 돌기둥이 있습니다.
통도사국장생은 4만 7천보(步)나 되는 통도사를 중심으로
사방 열두 곳에 세워놓은 장생표의 하나로
절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시이며 국장생 이란 명칭은
나라의 명에 의해 건립된 생이라는 의미로
통도사의 기록에 따르면 산천의 기를 보충하기 위해 열두 곳에 세웠다고
하며 국장생 석표를 장승의 초기 모습으로 보기도 하는데
장승이라는 뜻의 장생 앞에 국자가 붙은 것은 국명에 의해 건립된
것임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국장생 석표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는 통도사 국장생석표 외에도 울주군 삼남면
상천리에 있는 국장생석표와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 입구에
있는 국장생석표, 경남 밀양시 무안리 국장생석표가 있는데
모두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장생은 수호신, 이정표, 경계표
등의 구실을 하고 있어 민속신앙과도 깊은 관계가 있으며
장생은 경계표와 보호의 구실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려 선종 2년(1085)에 제작된 것으로, 나라의 통첩을 받아 세웠다는 글이
이두문이 섞인 금석문으로 새겨져 있어 국가와 사찰과의 관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이 국장생 석표는 절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것인데, 통도사의 기록에
따르면 사방 산천의 기를 보충하기 위해 열두 곳에 세웠다고 합니다.
통도사 국장생 석표의 높이는 167cm, 넓이는 60cm의 돌기둥에는
6~9cm 크기로 쓴 글자가 네 줄로 새겨져 있는데,
글자 가운데는 이두문 표기가 섞여 있습니다.
이 석표에 쓰여진 내용은 통도사 솔내천 국장생 일좌(一座)는 절에서
문의한 바 상서호부(尙書戶部)에서 을축년(乙丑年) 5월의 통첩에 있는
이전의 판결과 같이 고쳐 세우게 함으로 이를 세운다.
태안(太安) 원년 을축 십이월
따라서 이 석표는 고려 선종 2년(1085년)에 세워진 것이며, 다시
세운다는 내용으로 보아 원래는 이보다 앞선 시대에
세워진 것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국장생 석표를 장승의 초기 모습으로 보기도 하는데 장승이라는 뜻의 '장생' 앞에
'국' 자가 붙은 것은 국명에 의해 건립된 것임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장생표는 절의 구역, 곧 경계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러 개의 장생표를
연결하여 그 안에 포함된 지역이 모두 절의 소유라는 뜻은 아닙니다.
당시 절에 소속된 토지나 산림 등은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장생표 중심으로
주변의 일정 공간이 절에 소속되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통도사(通度寺) 국장생(國長生)은 4만 7천보(步)나 되는 통도사를 중심으로
사방 12곳에 세워놓은 장생표(長生標)의 하나로, 절의 동남쪽
약 4㎞지점에 거친 자연석면 그대로 서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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