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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완주 종남산 송광사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2. 6. 30.

 

 

완주 종남산 송광사를 찾아서

 

 

 

완주 종남산에 있는

송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867년에 체징이 창건을 하였다고 하며

당시의 이름은 백련사라 하였으나 폐허가

된 것을 조선 광해군 때 보조국사 제자들이

덕림 스님을 중창주로 모시고  복원· 중창하게

되었다고 하며 이때부터 절이름을 송광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병자호란 때에 전주사고를

지키기 위하여  승군 700명이 머무르는 등 민족의

역사적 영욕을 함께했던 호국도량으로 주요문화재는

대웅전, 소조사천왕상, 소조삼불좌상과 복장유물,

종루, 사적비, 동종, 나한전금강문, 벽암당부도

일주문 등이 있으며  종남산 송광사라고 하지만

산에서  좀 떨어진 평지의  작은 마을에 있는

사찰로 순천에 있는 승보사찰  송광사와는

송광사(松廣寺)란  한자까지 같습니다 

전북 완주군 소양읍 대흥리 송광사

        

완주 종남산에 있는 송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867년에 체징이 창건을 하였다고 하며 당시의 이름은 백련사라 하였습니다

 

송광사는 그 후 폐허가 된 것을 조선 광해군 때 보조국사 제자들이 덕림스님을

중창주로 모시고 복원·중창하게 되었다고 하며 이때부터 절 이름을

송광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송광사는 병자호란 때에 전주사고를 지키기 위하여 승군 700명이 머무르는 등

민족의 역사적 영욕을 함께했던 호국도량 이라고 합니다

 

완주 송광사의 주요문화재는 대웅전, 소조사천왕상, 소조삼불좌상과 복장유물,

종루, 사적비, 동종, 나한전, 금강문, 벽암당부도, 일주문 등이 있습니다

 

 

송광사 현판에는 종남산 송광사라고 하지만 산에서 좀 떨어진 평지의

작은 마을에 있는 사찰로 순천에 있는 승보사찰 송광사와는

송광사(松廣寺)란 한자까지 같습니다

 

 

 일주문은 송광사의 첫대문으로 원래 대웅전으로부터 약 3km 떨어진 나드리

라고 하는 곳에 세워져 있던 것인데 송광사의 경역이 축소되어감에 따라

1814년순조 14년에 정후선사가 조계교 부근으로 이건하였으며

그 후 현 위치로 이건한 것이라고 합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금강문, 천왕문, 종루가 차례로 나오고 종루 옆에 있는

대웅전을 지나면 뒤쪽에 나한전을 비롯한 절 건물들이 있습니다

 

일주문에서 금강문, 천왕문 대웅전 까지는 일자로 배치되어 있고 사찰의

공간 배치가 한국의 전통적인 정원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일주문은 원기둥 두 개에 보조기둥 2개로 세웠으며 다포집 맞배지붕

형식의 건물로 조선 중기의 작품 이라고 합니다   

 

  송광사는 대찰이었던 아주 옛날엔 송광사가 일주문과 흙담으로 작아 보이지만 상당히 넓은 사역을

 가진 가람으로서 일주문간을 통해 금강문, 천왕문 지나 멀리 대웅전까지가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한눈에 보이는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일주문의 기둥 위에는 창방과 평방 위에 공포를 두었으며 겹처마로 기둥

앞 뒷면의 3출목과 앙설이 매우 화려한 건물입니다

무얼 그리도 유심히 쳐다보고 계시는가요?

 

위의 사진에서 답사자가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는 곳이 아마도 일주문의  처마 끝에

 숨어 있는 용머리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는가 봅니다   

 

현재의 현판은 1953년 주지 서암이 세운것이며 현판의 사찰 이름이 종남산

송광사 라고 부르는 이유는 도의가 절터를 구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

오다가 이 곳에서 영천수를 발견하고 큰 절을 세울 것을 결심한 후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았다는 것에서 유래 합니다 

 

 

 

금강문은 전북 유형문화재 제173호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이며 금강역사와 문수, 보현보살은 근래에 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송광사 금강문은 정면 3,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자연석을 이용

하여 기단과 가둥의 주춧돌을 구축하였습니다

 

금강문은 천장이 연등 천장이고 둥근 모양의 창방과 사각형의 평방을

결구하였으며자연목을 그대로 사용한 대들보는 2량입니다

 

금강문 각 공포의 벽화는 보상화 무늬로 장식을 하였습니다

 

   금강문 안에는 금강역사상 2구와 좌우로 동자상을 배치하였습니다

 

크게 뜬 두 눈의 눈망울이 무섭기만 합니다

 

 

  금강역사상 좌우에는 동자상을 배치하였습니다

 

왼쪽 동자상은 문수보살로 사자를 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금강문 안쪽의 오른 쪽에 있는 동자상은 보현보살로 코끼리를 타고 있는 형상입니다

 

금강문 안으로 들어서서 오른 쪽을 보면 마모가 심한 당간지주가

이 절의 역사를 말 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좋은 인연입니다 라는 목장승과

 

밝은 미소를 띈 두 개의 목장승이 반갑게 맞이하고 있습니다

 

송광사는 4천왕을 모신 곳을 천왕문으로 하지 않고 천왕전으로

건축하여 이곳은 여닫는 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천왕은 갑옷을 입고 위엄이 충만한 무인상을 하고, ···북의

사천국을 다스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

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입구에 사천왕문을 세워 모시고 있습니다.

 

 

서방 광목천왕상 왼쪽 머리끝 뒷면에는 조선 인조 27(1649)에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는 글이 있으며, 왼손에 얹어놓은 보탑 밑면에는 정조 10(1786)

새로이 보탑을 만들어 안치하였음을 알려 주는 기록이 있습니다.

 

사천왕은 갑옷을 입고 위엄이 충만한 무인상을 하고, ···북의 사천

국을 다스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입구에 사천왕문을 세워 모시고 있습니다.

 

송광사의 동방 지국천왕상은 오른쪽 팔꿈치를 높이 쳐들어 칼을 잡고, 왼손은

엄지와 검지를 길게 펴서 칼끝을 잡으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왼쪽다리

옆의 악귀는 상의를 벗고 오른쪽 어깨로부터 굵은 끈을 왼쪽 옆구리에

걸쳤으며 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북방 다문천왕상은 양손으로 비파를 들고 있으며 지상에서 약간 들어올린

왼쪽다리를 악귀가 오른손으로 받쳐들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는데

악귀는 상투 장식에 눈이 심하게 튀어 나오고 주먹코에 광대뼈가

튀어나와 입체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남방 증장천왕상은 왼손에는 보주를 잡고 오른손으로 용을 움켜쥐고 있는데,

용은 입을 벌리고 천왕상의 얼굴을 향해 치솟고 있으며 꼬리는 팔뚝을

한번 휘감으며 올라가고 있으며 악귀는 꽃장식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는데, 발등의 근육과 발톱까지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서방 광목천왕상은 오른손을 들어 깃발을 잡고 있는데 깃발은 뒤로 휘어

졌으며. 왼팔은 거의 어깨까지 올려 손바닥 위에 보탑을 올려 놓았고.

다리 아래의 악귀는 측면을 향하고 있는 다른 악귀에 비해

정면을 향하고 있는 점이 다른 편입니다 

 

천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나 금강문과 달리 익공계 공포의

맞배지붕으로 출입문에 두 짝의 문짝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했으며 좌우 벽에는 고창을 내어 빛이 들게 했습니다.

 

 

천왕문 안에 있는 소조 사천왕상은 보물 제1255호이며 흙을 빚어 만든 상

으로 조각이 섬세하고 풍부한 질감을 주어 표정이 위엄 속에서도

부드러운 감을 느끼게 하는 소조 사천왕상입니다

 

 

사천왕상은 1994년 채색을 다시 올릴 적에 북방 다문천왕상이 쓴 보관 왼쪽 끝에

1649(인조27)에 조성한 것으로 묵서 명문이 써 있어서 천왕문은 1622년의

중창기에 만들어졌고 사천왕상은 1649년에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천왕상 왼손의 보탑 밑면에 1786(정조10)에 새로 보탑을 만들어

안치 하였다는 묵서 명문도 있습니다.

 

 

대웅전을 향하여 오른 쪽에는 칼을 잡고 있는 동방지국천왕과 비파를 들고

있는 북방다문천왕, 왼 쪽에는 왼손에는 보주를 오른 손에는 용을 웅켜

쥐고 있는 남방증장천왕과 왼손에는 보탑을. 오른 손에는 깃발을

들고 있는 서방 광목천왕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완주 송광사 종루는 보물 1244호이며 ()자형 평면 위에 다포계의

팔작지붕을 교차시켜 십자형으로 짜 올린 2층 건물입니다.

 

    

건립연대는 대웅전을 1층으로 고쳐 지은 시기인 1814년경으로 추정하며

1층은 개방되어 있고 2층은 계단으로 오르게 되어 있고 2층 중앙에

범종을 걸고 사변에는 법고를 비롯한 사물이 걸려있습니다.

 

 

종루는 건물에 비해 공포 포작이 커 보이며 내부가구는 대들보 없이

창방이 대들보구실을 하도록 되어 있기에 천장은 짜 올려진 공포로

채워져 있어 특이하다고 합니다

   

송광사 종루는 보통의 종각이 사각형임에 비해 자 보궁형 닫집을

보는 것 같아 참 특색이 있고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송광사 동종은 범종의 높이는 107cm 하단 지름 73cm의 규모의 용뉴 음통을

갖추고 범어, 보살상 등이 조각된 시대적 보편성을 지닌 범종입니다.

 

송광사 동종은 종각 마루에 올려져 보관 중인 걸로 보아 사찰측에서는 근래에

만든 커다란 종을 타종하고 이 종은 보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종루는 보물 제1244호이며 종을 달아놓은 열 십()자형 2층 누각으로 송광사

도량을 장엄하는 가치가 크다고 하며 열심자로 된 종루 중앙 칸에

범종을 모시고 동··3칸에 목어, 운판, 법고가 있습니다

 

 

종루의 지붕은 중앙에서 모아지는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고 마루 밑의

기둥들은 모두 원형기둥을 세워놓았습니다.

 

 

 

종을 달아 놓은 종루는 십자각을 가리키는 말로 십자각은 열 십()

모양을 하는 2층형 누각이다. 종이 걸려 있는 중앙칸을 중심으로

···북에 각각 1칸씩 덧붙여 이루는 모양입니다  

 

종루 마루 밑의 기둥들은 원형기둥과 사각기둥이 섞여 있으며, 위에

기둥들은 모두 원형기둥을 세워 놓았습니다

   

   종루는 지붕이 중앙에서 모아지는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가운데 칸에는

종을 두고 목어··운판은 돌출된 칸에 각각 보관되어 있습니다

 

 전설의 주인공 목어의 운명입니다

   

  송광사 동종은 전북 유형문화재 제138호이며 동체의 명문에 1716

조선 숙종42년 광주 증심사에서 조성되었고 1769(영조45)

중수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대웅전은 보물 제1243호로 송광사의 본당이며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1622(광해군14)의 중창 때엔 2층이었으나

1814년에 건물이 기울어 단층으로 고쳐지었다고 합니다.

 

대웅전에는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모시고, 보는 오른쪽에

약사불을, 왼쪽에는 아미타불을 모셨습니다  

 

대웅전에는 국내 최대 크기의 석가여래·약사여래·아미타여래 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의 화신이라고 불리는 진묵스님께서 점안하신 것으로 유명하며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 마다 땀 흘리는 이적을 보이는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대웅전에 있는 불상은 수인만 다른 뿐 전반적으로 같은 모습으로 통견의

법의에 옷 주름이 무릎을 덮고 있습니다,

 

 

 

반야용선은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세계로 건너갈 때 타고 가는 용

형상을 한 상상의 배를 말하고 대웅전의 용은 대웅전 자체가

'반야용선'임을 말해 준다고 합니다.

 

 

통도사 '반야용선도'의 승객을 보면 스님과 선비, 노인과 아낙 등 타고 있는

영혼의 신분과 나이,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있습니다.

 

 

완주 송광사 소조 삼불좌상 및 복장유물은 보물 제1274호이며 대웅전에

모셔진 삼세불로서 흙으로 빚은 불상 중 가장 큰 불상이라고 합니다 

 

대웅전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의 체고가 5.5m 협시불은 각각 5.2m로서

압도적인 체형임에도 전체의 균형이 잘 잡혀 있습니다

 

 

이 삼세불은 국가에 큰 일이 있을 때면 땀을 흘리는 신이(神異)

보인다고 전해지는 특이한 불상입니다.

 

 

석가모니불의 복장 품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따르면 이들 삼존불은

1641(인조19) 629일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조속한

환국을 발원하면서 조성하였다고 되어있어 부처의 원력에 의지해서

국난을 극복해보려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송광사 목조 삼전패는 전북 유형문화재 제170호이며 대웅전의 삼존불

사이에 있는 3점의 전패로서, 임금과 왕비. 세자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중앙의 패에는 '주상전하수만세(主上殿下壽萬世)'라 썼으며, 좌우의 패에는

왕비전하수제년(王妃殿下壽齊年)’세자저하수천추(世子低下壽千秋)’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임금의 전패 뒷면에 '순치세(順治歲)'의 기록이 있어 1644(인조22)부터

1661(현종2) 사이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고, 왕비 전패의

기록을 통해 1792(정조16)에 수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웅전 내부엔 고주 4개를 세워 그 앞에 불단을 설치하고 석가여래약사여래

아미타여래의 소조 삼세불좌상(보물 제1274)을 봉안하였으며

불상의 사이사이에 삼전패가 올려져 있습니다

 

 

삼전패의 모양은 뒷면에 목판을 대고 테두리를 꽃모양으로 조각한

위에 구름을 희롱하는 용을 투각하여 붙인 형태입니다.

 

 

임금의 것은 높이가 228cm에 목패 상부에 용 1 마리, 하부에 좌우로 각각

2마리씩의 용을 두고 좌대는 앙련과 복련을 조각했으나 왕비, 세자의 것은

높이 208cm, 상부에 용 1 마리, 하부의 좌우에 각 1마리씩만의 용을

두었고 좌대도 복련만을 새겨 크기와 조식의 격에 차이를 두었습니다.

 

 

대웅전에는 천장과 벽면을 둘러 빼곡이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금강문,

천왕문에 걸린 그림은 대웅전의 벽화를 모사한 것으로 대웅전의 측,

후면에도 모사한 액자를 설명과 함께 빙 둘러 걸었습니다

 

 

대웅전 천장의 경사진 부분 중, 전면에 7점 각 측면에 2점씩 총 11점의 채색

주악비천도가 그려져 있는데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다양한 모습에서

가락과 율동이 느껴질 정도로의 역동감을 평면 속에 표현해

내었는데 조성연대와 그린 이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송광사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올 것을 기원하고 국난으로 돌아가신 일체 영가들의 왕생극락을

발원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석가의 화현이라고 하신 진묵스님께서 1623(계해년) 대웅전 삼존불 조성시

증명법사로 초청되었으나 부여무량사에서도 동시 초청된 관계로 송광사에는

주장자를, 무량사에는 단주를 보내 법력을 나투었는데 주장자가 밤낮으로

꼿꼿이 서서 법상을 물리는 신의함을 나투신 곳이기도 합니다.

 

  '松廣寺'라고 하면 누구나 승보사찰인 '순천 송광사'를 말하겠거니 하지만

'전주' 인근의 이곳 '완주'에도 '보조국사 지눌'스님과의 인연으로

사명 한자가 같은 고찰 '종남산 송광사'가 있습니다 

 

종남산 송광사'지만 실상은 산에서 좀 떨어진 평지의 조그만 마을에 연해

가람이 들어앉아 있으며, 웬만큼 알려져 있는 사찰이지만 식당, 상점

등이 없어서 적적해 보이기까지 하는 사찰 밖 모습입니다.

 

    가람에서 아주 멀리 벚나무 길 입구쯤에일주문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보는 단정하고 조촐한 일주문은 흙담과 함께

하는 절 집 대문과 같습니다 

 

  완주 송광사 대웅전은 보물 제1243호 이고 소조삼불좌상 및 복장유물은

보물 제1274호로 대웅전 삼존불 사이 앞 쪽에는 나무로 만든

목조삼전패가 있습니다.

 

대웅전은 조선 인조 14(1636)에 벽암국사가 짓고, 철종 8(1857)

제봉선사가 한 번의 공사를 더하여 현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우측에 아미타부처님,

좌측에 약사 부처님을 각각 소조(흙으로 빚어)로 모셨는데

전각 안에 모셔진 부처님으로서는 규모가 매우 큽니다.

 

대웅전 현판은 선조의 8번째 아들이며 광해군의 동생인 의창군이 쓴 것이고.

인조 14(1636)에 세운 송광사 개창비의 글도 의창군이 썼다고 합니다.

 

1993년 본존불에서는 세 분 부처님의 조성기가 발견되었는데 <조성기>에 의하면

숭정 14(인조 5, 1641) 629일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조속한 환국을 기원하면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웅전 삼존불 사이 앞 쪽에 있는 나무로 만든 목조삼전패에는 높이 2.28m

앞면에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글씨가 있고 뒷면에는 조선16대 왕인

인조 때 조성되었다는 제작연대가 밝혀져 있습니다.

 

다른 2점은 높이가 2.08m로 같으며, 뒷면에 정조 16(1792)에 수리하였음을

검은 글씨로 적혀 있으며, 왕비와 세자임을 기록한 패입니다.

 

  

 

 

 

대웅전이란 현판은 조선시대 서예가이며 선조임금의 아들인

 의창군 이광의 필체로 조각되었다고 합니다. 

 

 

 대웅전 앞에는 괘불을 걸 수 있도록 긴 기둥 모양의 괘불 대가 세워져 있는데

절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 괘불을 걸어둔 모습을

문화재청에서 사진을 옮겨왔습니다

 

송광사 뒤뜰에 놓여 있는 사적비는 전북시도유형문화재 제5호이며

절의 개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거북받침돌 위에 비신을

올리고 용을 새긴 머릿돌을 얹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비의 앞면에는 비 이름과 비문이 새겨 있는데, 고려 보조국사가 전주 종남산을

지나다가 절터를 잡아놓고 제자들에게 절을 지을 것을 당부하였다는 내용과

보조국사에서 벽암대사에 이르는 스승과 제자의 계보가 주된 내용입니다.

 

 

사적비는 조선 인조 14(1636)에 세운 비로 신익성이 비문을 짓고,

선조의 여덟 번째 아들인 외창군이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삼성각은 대웅전을 뒤로 하여 사적비가 세워져 있는 바로 옆에 있으며

삼성신앙은 불교가 한국 사회에 토착화 하면서 고유위 토속신앙이

불교로 합쳐져 생긴 신앙 형태 라고 합니다.

 

 

전각은 보통 사찰 뒤 족에 자리하며 각 신앙의 존상과

 탱화를 모시는 곳입니다

 

 

삼성은 산의 정령인 산신, 홀로 깨달은 성인인 독성,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신. 등을 통칭한 것이라고 합니다.

 

법당 뒷편에 조그만 전각이 있는데 세칸일 때는 산신과 독성, 칠성을 함께

모신 삼성각이 되고 한칸의 건물을 지어 산신, 독성, 칠성을 따로 모실 때는

 산신각,독성각, 칠성각이라는 독립된 편액을 붙이게 된다고 합니다

 

나한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주심포식 팔작지붕 건물로 1656

효종7년 벽암 대사가 송광사를 중창할 때 건립되었으며 근대의

두 차례 중수하였으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한전은 전북시도유형문화재 제172호이며 아라한을 모시는 건물로 송광사는

나한기도를 봉행하는데 나한기도를 정성으로 수행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룩한다고 전해질 정도로 영험하다고 합니다 

 

석가여래와 16나한의 복장물 중에서 1656년에 조성된 발원문이

발견되어 건립시기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한전 내부에는 목조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측에 미륵보살,

우측에 제화갈라보살이 자리하고 있으며 좌우에 16나한과 500나한

범천, 제석상인왕상 등 526구의 존상을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나한전 목조 석가여래 삼존상 및 권속상은 일괄하여

전북 유형문화재 제16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나한전과 같이 1656년에 조성된 석가모니불은 목조의 앙련, 복련이

조각된 좌대에 모셔져있으며 대웅전 불상과 비슷한 조성형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협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도 비슷합니다

 

석가모니불의 좌우에 16나한상과 500 나한상 그리고 범천제석상, 동자상,

인왕상, 사자상, 천녀상 등 모두 526구의 존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500나한상 중 일부는 석고로 새로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나한전 내부에는 주불로 석가여래부처를 나무로 조성하여 모시고, 좌우로

16나한과 오백나한, 인왕상, 동자상, 사자상 등을 모셨습니다.

 

송광사 나한전은 효종 7(1656) 벽암 각성대사가 송광사를 다시 지을 때

같이 지은 것으로 내부에는 목조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16나한과 오백나한, 인왕상, 동자상, 사자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송광사 지장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써

1999년 신축된 건물 이라고 합니다

 

 

지장전에는 지장보살과 협시하는 도명존자무독귀왕의 삼존상을

모시고 좌우로 나누어 시왕상 등의 권속상을 봉안하였습니다.

 

 

송광사의 불상은 흙으로 빚은 소조상이 많은데 지장보살상 역시

소조의 특색대로 부드럽고 섬세한 편입니다.

 

 

지장전의 복장 물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의하면 1640(인조18)

기타 권속들을 함께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지장전은 전북시도 유형문화재 제168호이며 흙으로 빚어 조성된

지장보살은 나무로 만든 연꽃무늬 대좌 위에 모셔져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의 중생이 모두 구제되고 한사람도 지옥으로 가지 말기를

바라며 지옥중생이 모두 성불한 다음에 성불하겠다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지장 보살상 속에서 발견된 기록에 따르면, 1640년에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등이 함께 만들어졌으며 옆에 10왕님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극작전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교주이시며 중생들의 극락왕생을

인도하시는 아미타부처님을 주불로 하고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과 데세지보살을 모시는 법당입니다.

 

 

불경에 의하면 아미타부처님의 서원에 따라 일념으로 아미타불 이란

명호만 부르면 누구나 극락왕생 시켜준다고 하여 아미타부처님은

석가모니부처님 다음으로 많이 모셔져 있습니다.

 

극락전의 중심에는 아미타부처님이 있고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삼존불로 하고 있는데 극락회생도나 극락구품탱화를

 그려서 극락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관음전은 대자대비의 원력을 세운 관세음보살 을 모신 전각으로 원래

대웅전 옆에 위치 했으나 최근에 현재 의 자리로 이전하였습니다 

 

관음전은 현제 각종 법회 및 학생들의 수련대회와

소규모의 세미나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관음전은 원래는 2층 건물로서 1층은 식당으로 사용되고 2층은 관음전으로

각종 법회 및 학생들의 수련대회, 소규모의 세미나에 사용되었으나

2003년에 2층만을 옮겨 지금의 자리에 세웠다고 합니다

 

송광사 벽암당 부도는 전북시도 유형문화재 제144호이며 부도는 스님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것으로 부도전은 송광사 대웅전

뒤쪽의 부도 밭에 자리 잡고 있는 10여개의 부도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송광사 벽암당 부도는 이 절의 주지이면서 승병장으로 유명했던

벽암당 각성대사의 사리가 안치된 것이라 전하는 부도입니다.

 

대웅전 뒤편에 있는 요사체인듯 한데 장승이 세워져 있으며

송광사 주지스님의 거처라고 합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릴 수 있는 곳인가 봅니다

 

  

주차장에서 송광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는 고인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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