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성혈사를 찾아서
경북 영주
순흥면 덕현리에
있는 성혈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
사의 말사로 소백산 월명봉 동남쪽
기슭에 있으며 신라의 고찰이지만 자세한
연혁은 전해지지 않으나 의상대사가 성혈사
건너 초암사에서 수도 하던 중 장소가 좁아 이
곳으로 옮겨와서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절 아래
있는 바위굴에서 성승이 나와 성혈암 이라 했다
고만 전할 뿐 다른 사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나
나한전에 모셔진 석조비로자나불과 나한전 어간에
통판투조연지수금 꽃살무늬에는 연못에 물고기와
동자상, 용과 학. 기러기와 물총새 등을 조각한
특이한 꽃살문으로 극락세계 연못을 비유한
작품은 여기 밖에 없다고 하며 성혈사에는
쌍석등, 신중탱화. 비로사 진공대사
보법탑비. 석조 당간지주 등의 많은
문화재들이 있는 곳입니다
성혈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로 소백산 월명봉 기슭에 있으며 신라의 고찰이지만 자세한 연혁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의상대사(625∼702)가 성혈사 건너 죽계계곡의 초암사에서 수도하던 중 장소가 좁아 이 곳으로 옮겨와서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성혈암은 절 아래 300여m 지점에 있는 바위굴에서 성승이 나와 성혈암 이라고 했다고만 전할 뿐 다른 사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성혈암의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나한전에 모셔진 석조 비로자나불이 통일신라시대의 것임에 비추어보면 9세기 후반 이전에도 이 곳애 절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한전에 모셔진 석조 비로자나불과 나한전 어간에 통판투조연지수금꽃살무늬에는 연못에 물고기와 동자상, 용과 학. 기러기와 물총새 등을 조각한 특이한 꽃살문으로 극락세계 연못을 비유한 작품은 여기 밖에 없다고 합니다
성혈사에는 쌍석등, 신중탱화. 비로사 진공대사 보법 탑비. 석조.
당간지주 등의 많은 문화유산들이 있습니다
비로사로 들어가는 일주문인데 소백산 비로사라는 현판이 있습니다만
일주문을 새로 세우고 있으며 일주문으로 올라가면
당간지주가 있는 곳입니다
성혈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하는데 임진왜란(1592) 이후 새롭게
지은 것으로 1984년 수리를 할 때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조선 명종
8년(1553)에 처음 지었고 인조 12년(1634)에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성혈사 나한전은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곳으로 임진왜란(1592) 이후
새롭게 지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1984년 수리를 할 때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조선 명종 8년(1553)에 처음 지었고 인조 12년(1634)에
다시 지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혈사 나한전은 임진왜란 이후 중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단층 맞배 기와집으로 내 외이출목의 공포를
기둥과 기둥 사이의 평방 위에 짜 얹은 다포식 건축입니다
기둥은 배흘림기둥으로 우주의 안 쏠림과 귀솟음 수법이 사용되었으며
정면 3칸에 설치된 창호는 꽃살창호로서 특히 어칸은 연못에
게, 물고기, 동자상, 여의주, 기러기 등을 조각한 특별한 창호
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입니다
일반적으로 법당 앞의 석등은 팔각석주의 석등이 대부분인데
이 석등은 석주에 두 마리의 용이 용틀임을 하는 모습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이형적인 쌍석등 입니다.
석주 위에는 앙련의 팔각 상대석과 4개의 화창이 뚫려있는 팔각의 화사석이
있고 옥개석에는 연꽃봉우리 모양의 보주가 올려져 있습니다다
간주를 휘감고 있는 용의 비늘은 선명하나 발이 없고 민화에 나오는
호랑이처럼 생긴 얼굴은 익살스럽습니다
이 석등의 석주 대석은 거북이로서 머리가 하늘을 향해 바짝 쳐들고 있는데
오른쪽 석등의 거북이는 머리가 많이 훼손되어 있습니다
석등이란 실용적인 의미에서는 어두울 대 주위를 밝히기 위한 용도로 조성
되었지만 신앙적으로는 수행을 통하여 성불 한다는 뜻과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중생계를 두루 비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두 문의 문살무늬를 보면 대칭으로 비슷한 모양의 무늬인데 밖에서 보아
오른쪽 문살에 더 많은 사물이 새겨져 있으며 양쪽 문에 모두 있는 학을
보면 한쪽은 고개를 들고 다른 한쪽은 머리를 숙이고 있습니다
한쪽의 물새는 고기를 물고 있고 다른 한쪽은 그냥 있어 의도적으로
대칭의 변화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못에 모여든 여러 동물들을 나무판에 투각으로 정교하게 새겨 놓아
마치 연꽃 가득히 핀 연못을 바라다보는 느낌입니다
위쪽에는 한 마리의 기러기가 공중에서 내려오고 있으며 옆에는 어린
물고기를 입에 문 물총새가 있습니다.
연밥이 다 드러나도록 활찍핀 연꽃, 알맞게 핀 연꽃, 아직 꽃봉오리인 연꽃이
문살 가득 피어있고 널찍한 연잎들이 전체의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용 한 마리가 연잎 사이로 기어가고 있는데 앞으로 내 딛고 있는 앞발과
들고 있는 뒷발이 역동적이고 날카로운 발톱이 있습니다
꽃살문은 북쪽지방에서 자란 100-300년된 소나무를 베어 3년 동안 바람에
말린 다음 4년째 되는 해에 창고에 보관했다가 꽃무늬와 문살을 조각하고
문틀에 끼워 맞춘 뒤 단청을 입혀 완성한다고 합니다
큰 연잎 위에는 개구리 한마리가 참배를 하는 듯 머리숙여 앉아 있고
그 밑으로는 물고기와 게 한마리가 한가롭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머리를 두갈래로 묶어 머리 위에 올려놓은 동자는 연잎을 배로 삼고
연꽃 봉오리 줄기를 노 삼아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성혈사의 꽃살문은 소나무를 판재로 켠 뒤 몇 조각을 이어붙인 뒤에 그대로
조각을 한 통판 투조꽃살문으로 통판 투조꽃살문이란 문살을 따로 만들지
않고 널판에 꽃이나 무늬를 통째로 새겨 문틀에 끼운 문입니다
각각 넉장의 판자를 이어붙여 하나의 문살을 만들고 그 아래
빗살문으로 견고하게 끼워 맞추었다고 합니다
단청을 하는 이유는 꽃살문의 나뭇결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비바람으로부터
부식을 방지하고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나한전 안에 봉안되어 있는 이 불상은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지권인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불로 옷 주름의 표현이 경직되고 형식화된 몸체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후반기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양손은 파손되어 보수하였고 양 무릎의 끝부분이 약간 떨어져 나간
상태이지만 전체적인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으로
원래 석조로 된 불상인데 흰 칠을 해 놓았습니다
사찰의 꽃살문은 대부분 부처를 예배하는 법당의 출입문에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부처를 경배하는 최고의 공양물이 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비는 달밭골이라고 하는 비로사 경내에 있는 신라말 고려초의
승려인 진공대사 탑비입니다
대사의 속성은 김씨로 선조는 신라의 왕계인 확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설씨로 대사의 시호는 진공이며 법호는 보법입니다
대사는 가야산에서 입산하여 선융에게서 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고 하며
신라 경문왕 때 구족계를 받고 삼장을 연구하였다고 합니다
화강암으로 된 탑비는 높이가 238cm 비신의 높이는 173cm 너비는 102cm
두께는 22cm로 고려 태조 22년 (939)8월에 건립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비는 훼손이 심하여 이수와 비신을 창고 속에 보관해 두고 있으며
귀부에는 비신을 세웠던 비좌의 모습이 선명합니다
이 불상은 비로사에 모셔진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진공대사 비문에 의하면
비로사는 신라말 고려초의 명승이었던 진공대사가 중창한 사찰입니다
아미타불 좌상은 높이가 115cm이며 비로자나불좌상의 높이는 117.5cm로
원래는 불상뒤 원광인 광배와 불상 받침인 대좌를 모두 갖추었던
것이나 현재는 팔각연화대좌 위에 모셔져 있습니다
아미타불좌상의 머리는 나발에 상투모양이 크며 얼굴은 갸름하나
원만한 얼굴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불상의 조각 양식은 같으며 제작시기는
9세기 경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아미타불괴 비로자나불이 함께 있다는 점에서당시 신라 화엄불교의
특성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합니다
이 당간지주는 비로사 입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높이가 420cm 이며 정상외부에서 안으로 2단의
굴곡 조식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기단의 양기둥에는 간을 받치는 간대석이 있으며 간을 꽂기위한 구멍이 있고 당간을 세우기 위해 두개의 기둥을 세우고 가운데에 깃대를 세우기 위해 상 하에 두개의 구멍을 뚫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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