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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단양 신라적성비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1. 10. 3.

 

단양 신라적성비를 찾아서

 

 

적성은

신라 진흥왕 때

단양 성재산에 축조된

산성으로 신라와 고구려의

세력관계의 변동을 알아보는 중요한

자료라고 하는데 성내에서 신라의 북진과

조처 등의 중요한 기록이 담겨진 비석이 1978

성재산의 적성안에서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이 비석을 단양적성비라고 합니다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이 곳 적성을 점령한 후에   민심을 안정

시키기 위해 세워놓은 것으로 1978년에 30정도가 땅속에

묻힌 채로 발견되었는데,  비면이 깨끗하고  글자가 뚜렷하며

비는 위가 넓고 두꺼우며 아래가 좁고 얇은 폄으로 윗부분은

잘려나가고  없지만,   양 측면이  거의 원형으로 남아있고

자연석을  이용하였으며  전체의 글자수는 440자 정도로

추정되는데 지금 남아있는 글자는 288자로 거의 판독

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며 글씨는 각 행마다 가로

줄과 세로줄을 잘 맞추고 있으며 예서에서 해서로

옮겨가는 과정의 율동적인 필법을 보여주고

있어 서예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으며  국보 제198호  입니다      

 

 

 

이 비석은 성재산 적성산성 내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비로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이 곳 적성을 점령한 후에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워놓은 비석입니다

 

 

 

이 적성비는 1978년에 30정도가 땅속에 묻힌 채로

발견되었는데 비면이 깨끗하고 글자가 뚜렷합니다

 

 

 

적성비는 윗쪽이 넓고 두꺼우며, 아래가 좁고 얇은 편으로

윗부분은 잘려나가고 없지만 양 측면이 거의 원형으로

남아있고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들었습니다

 

 

 

적성비의 전체 글자 수는 440자 정도로 추정되는데

지금 남아있는 글자는 288자로 거의 판독

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합니다

 

 

 

글씨는 각 행마다 가로줄과 세로줄을 잘 맞추고 있으며 예서에서 해서로 옮겨가는

과정의 율동적인 필법을 보여주고 있어 서예 연구에도 좋은 자료입니다

 

 

 

단양적성비는 국보 제198호로 지정보호되고 있으며 1978단성면

성재산의 적성에서 단국대 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단성면 성재산에 있는 적성은 이 적성비의 발견으로

산성의 이름이 적성임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남쪽에서 죽령을 넘어 남한강을 건너기 직전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이며,

부근에는 고구려 장군 온달의 전설이 전해오는 온달산성이 있습니다

 

 

 

적성비는 현존 높이 93cm, 위 너비 107cm, 아래 너비 53cm 크기로 자연석

화강암의 표면을 다듬어 글자를 새겼고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관계로

마멸이 적어 자획이 또렷한 편입니다

 

 

 

적성비는 윗부분은 파손되었으며, 21행에 430자 가량을

새겼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비석이 발견된 직후

행해진 주변 일대의 발굴조사를 통해

 

 

 

건물터가 밝혀졌고 기와·토기 편을 비롯하여 몇 개의 비편이

더 발견됨으로써 현재는 모두 305자를 읽을 수 있고,

정밀한 연구에 의하여 비편 가운데 일부는 본문에

연결시켜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문의 글씨체는 예서에서 해서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며,

문장은 한문투와 함께 신라 고유의 문장법이 혼용되어

해독에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비문은 크게 연월일을 기록한 부분과 본문과 비를 세우는 데

관계한 사람들을 기록한 3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연월일을 기록한 부분은 파손되어 있습니다.

 

 

 

비가 건립된 시점은 이 지방을 중심으로 비상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거나 그 상황이 마무리된 직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비문에 고두림성에 와 있던 2명의 군주와 군사지휘관인

당주 등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문의 내용은 진흥왕이 10명의 고관에게 명하여 신라의

북방경략을 돕고 충성을 바친 현지사람인 야이차를

포상하고 주민을 위무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왕교를 받은 왕경인 10명은 당시 신라의 북방경략에서

중심인물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사부·내례부·비차부·

무력 등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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