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연곡리 석비를 찾아서
백비라고 하는
이 비석의 정식 명칭은
진천 연곡리 석비 라고 하며
고려시대의 석비로 보물 제404호이며
비면에는 아무런 글짜가 새겨져 있지 않
아서 무자비. 몰자비. 백비 라고도 합니다
중국에서는 무자비 몰자비라고 하며 백비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말이지만 사전에도
없는 말입니다 이 비석은 비석의 주인공이 누구
인지도 알 수 없으며 비의 상태가 처음부터 비
문을 새기지 않았던 것인지 비문을 지워버린 것
인지 알 수가 없는 특이한 비석입니다 비석의
머리에는 비석의 이름을 쓰는 자리는 만들어져
있으나 자리만 만들어 놓고 아무런 글씨가 없
습니다. 비석의 받침은 말 머리 모양을 하고
있으며 이수는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비신에는 아무런 글씨가
없어서 백비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진천 연곡리 석비는 보물 제404호로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에 있습니다. 거북받침 위에 비신을 세우고 비머리를 얹은 일반형 석비로 비문이 없어 백비라고 불려지는 유명한 비석입니다
이 비에는 글씨가 쓰여 지지 않았으며, 또한 비의
주인공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처음부터 비문을 새기지 않은 것인지 지워버린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비머리에도 네모진 비의 이름을 쓰는 자리만
마련되어 있을 뿐 글씨는 없습니다.
받침부분은 비 몸돌과 머리 부분을 지탱하기 위한
중요한 부분으로 거북머리의 모양을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말馬의 머리에 더 가깝습니다
비의 윗부분에는 아홉 마리의 용을 새겼는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고 조각기법도 우수하다고 합니다.
진천 연곡리 석비는 조형양식과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의 석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비석의 받침부분은 비의 몸돌과 머리부분을 지탱하기 위한
중요한 부분으로 거북의 머리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비석은 거북의 머리라기
보다는 말 머리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비의 윗부분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으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조각기법도
매우 우수한 편이라고 합니다
비석의 조형양식과 조각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의
석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석비는 귀부 위에 비신을 새우고 그 위에 이수를
얹는 형식의 일반적인 형식입니다
이수는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태로
비신에는 아무런 글씨가 없어서 백비라고 합니다
비석은 원래 중국에서 장례를 치를 때 무덤 안에
관을 쉽게 내리기 위해서 세우는 무덤 앞의
돌기둥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한나라 때에는 이 돌 기둥에 죽은 이의 행적을 기록했다고 하며
후한시대 부터는 비석의 머리가 지붕처럼 뾰족하거나 둥글게
만들어 지고 비석의 가운데는 구멍을 뚫어 관을
내리던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비석의 태두리 에는 용이나 꽃 사신 등을 새겼는데 현무를
새겼던 아래쪽과 용을 새겼던 위쪽을 각각 댓돌과 머릿돌에
해당하는 귀부와 이수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거불돌과 용머리를 갖춘 비석이 남북조 시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며 당나라 때에는 귀족들이
거북비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큰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고승비와 사찰의
내력을 기록한 사적비가 많이 있습니다
신라하대에 들어서면서 부터 선문조사들의 비를 세우면서
석비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석비 형태는 거북을 받침돌로 해서 비신을 받치게
하고 거북의 등위에는 구름무늬를 장식하여 비석의 주인공이
하늘에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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