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창동마애불을 찾아서
중원
창동마애불은
남한강을 굽어보는
거대한 자연 암벽 위에
얕은 선으로 새겨진 높이
약 4m의 마애불로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 위에 서 있으며 크고
길게 찢어진 눈꼬리, 큼직한 코와 귀
등에서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습니다
양 어깨에 걸친 옷에는 3가닥의 선으로
새긴 것과 더불어 구불구불한 선으로
새긴 특이한 형태의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마애불의 높이가 630cm라고
하는데 실제 크기를 봐도 장엄 합니다
이 마애불이 보고 있는 곳은 남한강
변에서 동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신립 장군이 왜군들을 맞서 싸우다 죽은
탄금대를 바라보고 있어서 충주 사람들은
이 불상이 신립장군의 자화상이라고도 합니다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에 있는 중원창동마애불은 남한강을
굽어보는 거대한 자연 암벽 위에 얕은 선으로
새겨진 높이 약 4m의 마애불입니다
중원 창동마애불은 크고 길게 찢어진 눈초리, 큼직한 코와
길게 늘어진 귀 등에서 근엄한 인상이 풍기고 있습니다
중원 창동마애불은 양 어깨에 걸친 법의는 양팔에 걸쳐
옆으로 퍼지면서 양쪽 무릎을 덮었고 있습니다
중원 창동마애불은 3가닥으로 새겨진 가슴의 둥근 옷
주름은 중심부만 남기면서 구불구불 흐르고 있습니다
중원창동마애불의 대좌에는 연화 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수인은 마멸이 심해서 그 모양을 알 수 없으며
중원 창동마애불은 양각으로 시작되어 아래로 내려오면서 선각으로
변하며 하체 부분의 조각은 생략된 부분이 많습니다.
고려시대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원창동마애불은 토속적인
분위기와 세련되지 못한 세부 표현과,
하체 조각이 생략된 기법, 구불구불한 선 모양 등
이 지역에서 많이 보이는 독특한 지방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충주는 본래 백제의 근초고왕 5년부터 백제 땅에 속했다가
그 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장악한 이후,
장수왕 63년(A.D.475)에는 국원성이라 이름 지었고, 신라
문무왕 13년에는 국원성 자체를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그 뒤 신라 경덕왕 16년에는 그 이름을 중원경으로 바꿨다가,
고려 태조 23년이 돼서야 충주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중원이란 본래 충주를 둘러싼 옛 지역 모두를 일컫는 것이고,
창동은 마애불이 있는 그 동네 이름입니다.
마애불 앞에는 남한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를 놓고 있습니다만
이 다리가 어디로 연결되는 도로를 건설하고 있는지 몰라도
탄금대의 자연경관을 훼손할까 두렵습니다
멀리로 보이는 작은 산이 탄금대가 있는 대문산으로, 강물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완성되는 날에는 탄금대는 가려질 듯하고,
탄금대를 바라보고 있던 이 불상마저도 그 존재 가치를
잃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합니다
중원마애불 하단의 암벽에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각각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글을 쓴듯합니다
중원 창동마애불을 찾아서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면 산마루에
정자인가 ? 휴게실이었든가? 아무튼 이 건물로
보아서 산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중원 창동마애불을 찾아갈려면 약사여래입상이 있는 마을에서
출렁다리를 타고 건너면 쉽게 갈 수 있었으나
무엇때문인가 몰라도 지금은 힘든 고갯길을 숨을 헐뜩거려 가면서
오르내려야만 마애불을 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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