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 미륵사지를 찾아서
중원미륵사지는
동쪽으로 하늘재.서쪽으로
지름재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삼국과 조선시대에 남북의 중요한
길목에 있어 사찰. 군사. 경제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으며, 1970년대 발굴 조사
에서 미륵당.미륵당초.원주 등이 발견되어
절 이름은 미륵 대원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미륵 대원터는 본존불.석등.5층석탑이 일직선
으로 놓인 배치로서 삼층석탑.사각등. 당간지주
미완성석불.건물지 등 많은 유적이 남아 있는데
모든 건축물이 북쪽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는 유일
무이한 이 곳 미륵사지는 석굴사원의 크기에서
우리나라 제일이라고 하며, 덕주 공주가 음각
하였다는 송계계곡에 새긴 마애불과 직선으로
마주하는 미륵사지 석불입상은 마의태자가
누이 동생인 덕주 공주를 그리는 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전설이
있는 곳이라기에 덕주사에 갔다가
다시 찾은 미륵사지 입니다
하늘재와 계립재, 새재에 둘러싸인 험준한 산골짜기 북쪽 기슭에
북향하여 있으며 창건 연대나 내력은 물론 사원의 정확한 명칭도
알 수 없으나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길이 9.8m, 너비 10.75m, 높이 6m의 인공으로 쌓은 석굴식 법당의
중앙에 대좌를 두어 석불 입상을 봉안하고,
측면과 후면 석벽 중앙은 감실처럼 만들어 작은 불상들을
부조하여 감실 안에다 장식을 하였습니다
1977년부터 연차적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사원의 옛 모습이
밝혀지고 있는데‘미륵당초(彌勒堂草)’라 새겨진 기와,
연꽃무늬 막새기와, 금동제 귀면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상부에는 목조건물을 지어 천장을 만들었던 것으로 짐작되며,
이는 토함산 석굴암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의 유일한 석조·
목조 구조의 반축조 석굴사원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절터에는 오층석탑, 석불입상, 삼층석탑, 석등, 사각석등, 귀부,
당간지주, 불상대좌 등의 석조 유물이 있습니다
유물의 조형수법으로 보아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며
북쪽 지형이 낮아서 계단식으로 대지를 조성하여
사원을 북향으로 형성하였습니다
사찰의 입구에서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을 향하여 누어 있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입니다
석조귀부는 길이 650cm, 높이180cm의 거대한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로 등에는 비신을 꽂아 세웠던 자리가 있습니다
자연 바위에 약간의 인공이 가미되었으며 생김모양이 거북이와
비슷하여 거북바위라 부르고 있으며 정상부분에 좁은 폭으로
홈을 파서 홈을 따라 물이 잘 빠지게 하였습니다
귀부의 등껍질 모양은 없으며 어깨 부분에 작은 거북 두 마리가 기어
올라가는 형태를 양각 하였고 앞쪽의 발은 형식화 되었습니다
귀부의 등에는 비좌가 있어 비신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2차례의 발굴조사에서도 찾지를 못하였다고 합니다
자연석의 바위 돌을 거북모양으로 다듬어 비석을 바치는 귀부로
사용한 것으로 비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용도를 알 수는
없지만 비석을 꽂은 홈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일반적인 귀부의 형태와 다르고 매우 독특한
생김새를 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발견된 귀부 중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라고 합니다
석불입상과 오층석탑의 사이에 있는 석등으로 화사석은
8각 중 4면에만 화창이 있는 석등으로 조형미가
수작으로 높이는 2.3m입니다
지대석과 연화대석은 한 돌로 조성되었는데, 하대석에는 8잎의
연잎이 새겨졌으며 석등의 기둥이 되는 간주석은
장식이 없는 8각 돌기둥입니다.
간주석 위의 상대석에는 각형 1단을 두었고 8잎의 앙련을 새겼으며
옥개석의 추녀선은 약간 위로 향하고 있으며 꼭대기에는
8각의 상륜 받침 위에 연봉형 보주가 있습니다.
미륵사지 사각석등은 팔각석등과는 다른 모습으로 고려시대 절터에서
신라시대의 팔각석등과 고려시대의 사각석등이 같이 세워져 있는 것은
신라문화와 고려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중원 미륵사지 오층석탑은 보물 95호로 지정되었으며 기단석이
신라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지붕의 급경사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옥개석은 일반형 석탑에서 옥신과 옥개석의 비례를 무시하고 좁아졌으며
받침은 각층 5단이나 추녀가 너무 짧아서 6층처럼 보입니다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이 남아 있는데 노반은 5층 옥개석의
크기에 비하여6층 옥개로 볼 만큼 크며,
복발은 조각이 없는 반구형이고 정상에 철제 찰간이
남은 것은 드문 예라고 합니다
높이 6m의 석탑으로 그 자리에 있던 바위로 받침돌과
1층 기단을 만든 후 몸돌을 올렸으며 지붕돌이
몸돌에 비해 좁은 것 같습니다
중원 미륵리 석불입상은 중원미륵사지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불상의 높이만 9.8m에 이르는 석불입상으로 다섯 조각의 돌로
기단, 다리, 몸, 얼굴, 갓 등을 이어 붙여 놓았습니다
덕주공주가 음각하였다는 송계계곡에 새긴 마애불과 일직선으로
마주보고 있는 미륵사지 석불입상은 마의태자가 누이
덕주공주를 그리는 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전설이 있습니다
육계가 있고 얼굴은 둥근 모양이나 평면적이고 둥근 눈썹,
직선적으로 감은 눈, 작은 입을 두텁게 나타낸 것 등은
몸체에 비하여 훨씬 정성들인 듯한 모습입니다
중원 미륵리 석불입상을 둘러싼 석굴은 웅장한 규모로, 4각형의
주실은 9.8×10.75m 넓이이며, 높이 6m의 석축을 쌓아 올렸고
그 가운데 불감을 만들어 불상을 봉안하였습니다
이 석축 위에 목조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없으며 전실은 목조로 된
반축조 석굴로 석굴암을 모방하였으며 규모가 웅장한 석굴입니다
연화문 당간지주와 둥근 받침이 새겨진 당간좌대 등을
한 곳에 모아 둔 석재들입니다
둥근 받침이 새겨진 당간좌대의 크기로 보아 당간의
그 규모를 추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간지주에 조각된 연화문 당간지주인데
조각솜씨가 섬세하고 화려합니다
발굴하면서 흩어져 있던 석재들을 한 곳에 모아둔 부재들입니다
석조귀부에 올려졌던 비석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재 아래 역원으로 길손의 숙소와 말의 마방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미륵대원터는 回자 형태의 구조물로 가운데 있는 口자 모양은
마방의 역할로 도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중앙에 두고
바깥족의 口자 모양은 숙소 및 주막을 두어 길손들의
쉼터 구실을 하였다고 합니다
중원 미륵사지는 우리나라에 있는 석굴사원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건출물은 모두 북쪽을 향 하고 있습니다
바위 위에 올려진 공기돌이라고 하는 둥근 돌은 고구려 평강왕 때
온달장군이 신라군과 싸우기 위하여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을 때
이 공기돌로 힘자랑을 하였다고 하여 온달장군 공기돌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둥근 모양의 큰 바위 입니다
신라 경순왕의 자녀인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패국의 한을 품고
고개를 넘었다는 전설과 주변 곳곳에 오랜 역사의 발자취가
남아 있을뿐만 아니라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충북의
자연보존 명소 100선 중 10걸로 지정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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