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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충주 창동리 약사여래입상과 5층석탑을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1. 5. 14.

창동리 약사여래입상과 5층석탑을 찾아서

 

창동리

5층석탑은

원래 민가 후원에

있었던 것을 1977년도에

현 위치로 옮겨 왔다고 하며

이 석탑을 이전하기 위해 해체할

당시 탑 속의 사리장치를 확인했는데

3층 옥개석 위의 사리공에는 아주 고운

모래로 사리를 대신한 흔적이 있었다고 하며

창동리 약사여래입상은 산장옆 광산에서 작업

중 발견된 것을 현 위치로 1977년에 옮겼다고

하는데 이 불상은 1매의 판석에 불신과 광배를

조각한 완전한 형태로 충주중원지방에서 돌

하나 위에 광배와 불신까지 제대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고려시대 불상은 창동리

약사여래상 뿐 이라고 합니다

 

 

 

 

창동리 약사여래입상은 충북 유형 문화재 제 8호로 지정되었으며  

이 불상은 산장 옆 광산에서 작업 중 발견된 것을

 

 

 

1977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하는데 이 불상은 1매의 판석에

불신과 광배까지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충주중원지방에서 돌 하나 위에 이처럼 광배와 불신까지

제대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고려시대 불상은

창동리 약사여래상 뿐이라고 합니다.

 

 

 

높이는 1.65m로 보주형 광배를 가지고 있으며 머리는 나발이 없고

육계만 크게 만들었고 상호에는 눈썹이 반원형을 긋고

입술은 도톰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양쪽 귀는 길어서 어깨에 닿았고 법의는 통견인데 의습의 표현은

형식화했으며 오른쪽 손은 엄지와 장지를 굽혀 닿았고

왼손은 약합을 받들고 있습니다.

 

 

 

불상의 대좌는 장방형으로 된 판석에 연화문을 새기고 불상을

끼우도록 되어 있으나 원래의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합니다.

 

 

 

창동리 5층석탑은

 

  

5층석탑은 충북 유형 문화재 제 6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이 탑은 고려시대 12세기경 조성된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창동리 인근의 절터에 있던 것을 1978년 남쪽으로 100m 지점인

이 자리로 옮겨서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탑의 원 위치로 추정했던 민가 뒷편의 야산 일대를 사찰지로

확인했는데 그곳에 자연석으로 다듬은 추초석이 3개가

있고 자기와 와편이 산재해 있었다고 합니다

 

 

   

창동리 5층석탑은 지대석이 2단의 하층기단으로 되어있고

상층기단에서 갑석까지가 1석으로 조성되었고

따로 탑신 괴임석 1매를 놓았습니다.

 

 

 

 갑석 위에는 낮은 저형, 높은 각행으로 된 탑신이 얹혀 있는데

탑신에는 양면에 우주가 표현되었고 기단부에는 양 우주와

1개의 탱주가 조각되었으며

 

 

  

옥개석 받침은 전체가 5층의 계단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낙수면은 완만하고 전각이 약간은 반전되어 있습니다.

 

 

  

상륜부는 결실되었고 1개의 보륜만이 남아 있는데

전체 높이가 2.5m의 석탑으로서

 

 

 

집안에 있던 관계로 그 보존 상태가 아주 양호하며

탑의 전체적 조형수법으로 보아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중원의 명주라고 하는 중원 청명주를 제조하는 양조장이

불상과 5층석탑 바로 뒷편에 있습니다

 

 

 

충주 창동리 약사여래입상과 중원창동5층석탑은 모두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는 문화유산이라고 생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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