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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덕주산성을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1. 6. 6.

 

덕주산성을 찾아서

 

덕주산성은

충청북도기념물

제35호로 월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석축 산성으로

상덕주사의 외곽을 둘러 싼 상성.

상하덕주사를 감싼 중성과, 그 외곽으로

하성이 있으며 송계 계곡인 월천의 남쪽을

막아  쌓은  남문과,  북쪽의 북문을  이루는

관문 형식의 외곽성 등 네 겹으로   이루어진

통일신라때 축조된  포곡식 산성으로  석축과

토축의 혼합 형식이며  현재 유구는 거의 무너

졌으나 조선시대에 쌓은 남문,  동문,  북문이

남아 있으며  일반적인 성곽과는 달리 계곡을

성으로 쌓고 밖에는 험준한 산능선과 암벽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성벽은 2m 정도의

높이로 신라 경순왕의 큰딸 덕주공주가

피난하였던 곳이라고 하여 덕주산성

이라고 합니다 = 덕주사

 

 

 

이 덕주산성은 신라 경순왕의 큰딸 덕주공주가 피난하였던

곳이라고 하여 이름을 덕주산성이라고 합니다

 

 

  

덕주산성은 1256년(고종 43)에 몽고 병이 충주를 공략하고

이곳으로 진격하자 관리들과 노약자들이

이 산성으로 피신하였는데,

 

 

  

갑자기 구름·바람·우뢰·비·우박이 쏟아지므로

적병들은 신이 돕는 땅이라 하여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조선 말 명성황후가 흥선대원군과의 권력 암투에서 패배할 것을

예상하고 은신처를 마련하려고 이곳에 성문을

축조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습니다

   

 

    

현재의 이 산성은 2천년 대에 새로이 조성하여 복원한 것으로

좌, 우로 쌓아 올려진 성벽의 중앙에 만들어진 성문을

통과하여 오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조선 중종 때 내성을 축성하고, 임진왜란 때에도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말기에는 명성황후와의 관련이 있는 등 역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대표적인 사적입니다.

 

 

 

충청북도 제천시 월악산의 남쪽에 있는 이 산성은 돌로 쌓은

통일신라시대의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되어있습니다

 

 

 

문경과 충주를 잇는 도로를 차단하는 전략적인 요충지이기 때문에

고려 고종 43년에 몽고군이 충주를 공략하자 갑자기 구름, 바람,

우박이 쏟아져 신이 돕는 땅이라 하여 달아났다고 합니다.

  

 

 

덕주사 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는 덕주루 의 현판입니다

  덕주사에서 흘러내리는 맑다 못해 푸른 물은 덕주공주의

마음씨 처럼 맑고 아름답습니다

 

 

 

이 산성은 월악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상덕주사를 중심으로 하여

그 외곽을 여러 겹으로 둘러 쌓은 석축산성입니다.

 

  

상덕주사의 외곽을 둘러 싼 상성(내성으로 제1곽), 상. 하

덕주사를 감싼 중성(제2곽, 일명 동문주변)과, 그

외곽으로 하성(제3곽)이 있으며,

 

 

  

송계 계곡인 월천의 남쪽을 막아 쌓은 남문과, 북쪽의

북문을 이루는 관문형식의 외곽성(제4곽)등 네 겹으로

이우러진 매우 큰 규모의 석성입니다

 

 

 

조선 중종 때 내성을 축성하고, 임진왜란 때에도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말기에는 명성황후와의 관련이 있는 등

역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곳입니다.

 

 

 

  고려 고종이라면 재위기간 내내 최씨 무신권력에 의하여

왕권을 유린 당했고 또 몽고의 침입으로 수도를

강화도로 천거해야 했던 왕입니다

 

 

  

월악산 남쪽 자락 일대는 남과 북을 잇는 도로의 길목으로

예로부터 전략적, 군사적 요충지였다고 합니다

   

 

  

신라 경순왕의 제 1공주인 덕주공주가 이곳 월악산에 머물면서

지세를 이용하여 성을 쌓고 훗날을 기약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이 성을 덕주공주가 쌓은 성이라해서 덕주산성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 입니다.

   

 

   

덕주골로 들어가서 처음 만나는 성벽이 외성이고 하덕주사에서

마애불을 향해 올라가다가 도중에 보이는 성벽이 내성입니다

 

 

  

죽령은 경상북도 풍기와 충청북도 단양을 연결해 주는 재로서

하늘재와 같이 신라 사람들이 넘어 다녔다는 재입니다

 

 

 

덕주산성은 삼국시대 때 월악산의 돌로 쌓은 성으로, 고려 때

몽고의 침입과 조선조 임진왜란, 병자호란으로 인해

수차례 파괴되어 현재는 홍문관만 남아 있습니다

  

 

  

고개를 넘으면 바로 낙동강 줄기고 남한강 줄기이므로 

당시 사람들은 뱃길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덕주산성의 북문이 있는곳에서 남한강 줄기인 월악 나루터까지는

불과 3Km 정도의 거리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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