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 봉황리 마애불상군을 찾아서
충북 충주시
가금면 산 중턱 바위에
9구의 불상을 조각한 마애불로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마애불상군과
통일신라초로 추정되는 마애불좌상이
약 50 m 간격을 두고 조각되어 있습니다
큰 절벽에 있는 불상은 도드라게 새겼는데
앉아 있는 자세의 무릎이 넓고 높아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무릎에 비해 상체는 짧고
얼굴은 둥글지만 네모난 모습이 초기 마애불의
기법으로 추정하고 머리 주위에는 연꽃 속에서
작은 부처들이 피어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른 바위 면에는 약간 떨어져 무리를 짓고 있는
불상들이 있는데 불 좌상 1구와 공양 상·반가상을
중심으로 5구의 보살상 등 모두 8구가 있는데
봉황리 마애불상군은 신라가 이 지역을 통치할
무렵에 조성되었다고 하지만 고구려와 백제가
공존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 마애불상군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마애불상군과 통일신라초로 추정되는
마애불좌상이 약 50m 간격을 두고 조각되어 있습니다
마애불상군은 하나의 큰 자연암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중간에
깨어진 곳을 경계로 우측에는 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한
5구의 보살상이 조성되어있고 좌측에는 여래좌상과
공양상. 사자상이 배치되어있습니다.
이 불상군에서 서편 5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애불좌상 역시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불상형식은 당시 이 지역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높이가 200㎝ 정도의 비교적 큰 독존 불상으로
얼굴은 넓적하며, 어깨는 넓은 편입니다.
결가부좌한 다리 가운데 아래쪽으로 왼발이 뾰족하게 나와 있는 것과
두광에 화불이 보이는 것은 삼국시대 후기적인 표현이므로
신라말이나 고려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r고 합니다
불상·보살상·공양상이 부조되어 있고,
약간 간격을 두고 왼편에는 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5구의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어 특이한 배치를 보입니다.
반가사유상은 얼굴이 파손되어 있고, 세부표현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높은 대좌 위에 어깨를 펴고 앉아 있는
자세가 꼿꼿하고 당당합니다
상체만 내밀고 있는 상도 있어서 배치가 매우 특이합니다
보살상들의 얼굴은 좁고 긴 편이나 몸에는 둥근 맛이 나타나며,
천의는 간단히 정돈되어 몸 옆으로 길게 늘어지고 있어
다소 진전된 조각 양식을 보인다고 합니다
이 불상군에서 중심이 되는 불상은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한 불좌상과
반가사유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삼국시대에 유행한 미륵신앙의
미륵상생 및 하생신앙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불상이 조각된 암반 위에는 커다란 암반이 지붕처럼 돌출되어 있어
불상·보살상군의 풍화작용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지만 마모가 심하며 뚜렷하지 않습니다.
이 마애불의 본존으로 생각되는 불좌상은 육계가 큰 편이고
얼굴은 좁고 길며 귀가 유난히 큰편입니다
어깨는 넓어서 당당한 편이고, 대의는 통견인데 둥근 옷주름은
가슴 위에 두터운 층단 형으로 늘어져 있습니다.
다리는 결가부좌를 하고 있지만 아랫부분이 파손되어 있어 대좌의
형태는 알 수 없으며 본존 옆에 한쪽 다리를 꿇고 앉아 있는
공양상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인물상을 연상시킨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중원은 신라의 영토였으므로 신라 작품으로 보고 있으나
마애불 전체에서 보이는 고구려적인 강한 조형성과 공양상이
신라 단석산신선사마애불상군의 공양상과 다르므로
고구려와의 연관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곳에 새겨진 불상들 중 가장 깊숙한 곳에 독존으로 새겨진
여래좌상은 바위 전체의 높이는 3m 가량 되지만 실제 조각된
불상의 높이는 2m남짓하다고 합니다
불상의 대좌는 없으며 무릎은 상체에 비해 너무 크게 과장되어
있으며 수인은 오른손은 시무외인이며 왼손은 여원인으로
삼국시대에 유행한 수인이라고 합니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까우며 눈과 코는 길고 가늘며. 입은 큰 편이며
미소를 띠고 있고 윗몸은 짧고 사각형에 가까우며 여러 군데가
파손되었으나 몸 전체가 삼각형의 구도를 하고 있습니다
머리 주위에 연꽃대좌에 앉아 있는 높이 34㎝의 화불 5구가 배치되어
있는데 모두 무릎을 조금 들고 연화좌에 앉은 모습입니다.
여래좌상은 머리에 육계와 나발을 갖추었으며 양 볼에 살이 많아서
상호가 사각형으로 보이며 입은 ‘一’자형으로 입가에는 미소를
찾을 수 없고 양 귀는 짧아 어깨에 닿지 않고 있습니다.
두광 안에 모셔진 다섯 구의 화불 중 맨 아래의 화불이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데 눈이 부어 있어 불거져 보인다고 합니다
조성 시기가 고대로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불상의 조성는 대략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로 잡고 있으니
마애여래좌상도 그 무렵쯤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돌계단과 철난간을 따라 오르면 먼저 보이는 것이 8구의 불상군으로
마애불상군은 하나의 큰 자연암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중간에
깨어진 곳을 경계로 우측에는 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한
5구의 보살상이 조성되어있고 좌측에는 여래좌상과
공양상. 사자상이 배치되어있습니다.
마애불상군의 위쪽으로 약 50미터 떨어진 산중턱, 높이 3.5m, 폭 8m의
암벽에 약 2미터 크기의 마애불좌상이 단독으로 조성되어있는데
결가부좌한 자세로 시무외인과 여원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는데
무릎부분이 넓고 높게 표현되어 안정감이 있어 보이는 반면
상체는 짧게 조형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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