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보종찰 송광사를 찾아서
조계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인
승보종찰의 근본도량으로 한국불교와
역사를 함께 해 온 유서깊은 고찰입니다
제가 불로그를 운영하기 전에 송광사를 두번
다녀 온적이 있습니다만 문화유산을 공부하기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보물들이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와서 세분해서 나누어 볼까 생각도 했습
니다만 우선 송광사의 전반적인 모습을 먼저 올려
봅니다 이날 따라 스님 두분이 직접 설명과 안내를
해 주셔서 감동 먹은 답사였습니다 법명도 모르는
스님이지만 고맙다는 말씀 이자리를 빌어서 올려
봅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깊히 감사드립니다
승 보 종 찰 송 광 사
조계산 북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송광사는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한국의 삼보사찰로 유명합니다
삼보사찰이란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한 불보사찰이고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인 법의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는 법보사찰이며
이곳 송광사는 보조국사 이래 16명의 국사를
배출했기 때문에 승보사찰로 송광사, 통도사,
해인사를 삼보사찰이라고 합니다
송광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안내 해 주신 송광사 스님이십니다
누군가 스님에게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을 하자
스님께서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는 티없이
해맑고 고귀하신 그 모습입니다
함께 송광사와 법정스님의 가신 길을 찾아나섰던
일행입니다만 사진을 보내드릴 길이 없어서
우선 올려 봅니다 사진이 필요하시다면
메일 주시면 즉시 원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셨던 법정스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공덕 뿐이란
사실을 법정 스님은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송광사의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홍교 위에
두개의 누각이 걸려 있는데 청량각과
우화각이라는 누각입니다
특히 홍교 아래 비친 우화각을 지나는 선승의 모습은
선계에서 불계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듯
하다는 글이 있습니다만 그 풍광이
참으로 빼어난 곳입니다
비사리 구시는 1724년 전라도 남원 송동면
세전골에 있던 싸리나무가 태풍으로
쓰러진 것을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조선 영조 이후 국제를 모실 때 손님을 위해
밥을 저장하던 통이라고 하는데 약 7가마
분량의 쌀로 지은 밥을 보관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송광사의 3가지 보물이라고 하면 능견난사와
쌍향수 그리고 비사리구시 를 말합니다
우화각을 지나 사천문과 종고루를
지나서 한 두계단을 오르면
송광사의 대웅보전과 도량이 너른 마당 위에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 냅니다
대웅보전과 좌측으로 승보전과 그 뒷쪽으로
진여문을 지나 송광사의 자랑인
수선구역과 국사전이 있습니다만 국사전에는
일반인들이 출입을 할 수 없는 곳입니다
조계산은 송광산이라고 했으나 보조국사 이후
조계종의 중흥도량이 되면서 조계산
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신라 때 부터 내려오던 구산선문의 총칭으로 고려
숙종 2년 대각국사 의천이 일으킨 천태종과
구별해서 부른다고 합니다
그 뒤 보조국사의 법맥을 진각국사가
이어받아 중창을 한 때 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 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내에는 이들 16명의 국사의 진영을 따로
봉안한 국사전이 있습니다
영산전은 영취산에 거주하며 법화경을
설하고 있는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며
보물 1368호로 지정되어있는 후불탱인
영산회상의 설법하는 장면을
모사한 영산대회 탱과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애를 8단계로 나누어 그린
팔상탱이 있으며 지금의 건물은 조선 인조
17년 (1639)에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하사당은 1963년 에 보물 제263호로 지정되었는데 승방 건축으로
대웅전 후면에 있으며 건물을 향해 왼쪽 두칸은 온돌방이고
전면은 툇마루 오른쪽 한칸은 부엌입니다
온돌방은 종이천장 부엌은 연등천장입니다 대들보는
툇마루와 방 사이에 세운 높은 기둥에서 후면의
기둥에 걸쳐 걸렸으며 그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량을 받쳤습니다
측면은 높은 기둥을 두개 세워서 종량을 받치고
종량 위에는 화반형의 대공을 얹어서
마루도리를 받쳤습니다
부엌 지붕위로는 네모난 구멍을 내고 그 위에 작은
맞배 지붕을 만든 환기공 장치는 다른 건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시설이라고 합니다
삼청교 위에 지어놓은 우화각은 사람들의
통행을 돕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송솽사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다리를 삼청교
라고 하며 그 위에 지어진 건물을
우화각이라고 합니다
삼청교는 일명 능허교라고도 하며 19개의 네모난 돌로
무지개 모양을 만든 다음 양 옆에 다듬은 돌을
쌓아 올려 무게를 지탱하도록 하였습니다
무지개 모양의 중심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돌이 나와 있는데 조선 숙종
33년(17070에 다리를 만들었다고 하며
그 뒤 약 60년이 지난 영조 50년 (1774)에
보수를 하였다고 합니다
삼청교와 우화각은 밑에는 홍교로 되어 다리 역할을 하고
그 위로는 건물이면서 송광사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하는 특이한 구조입니다
들어가는 입구는 팔작지붕이고 나가는 쪽은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사람인 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처리를 하였습니다
척주당과 세월각은 송광사 일주문
안쪽에 있으며 송광사에서
가장 작은 건물로
천도재를 지내기 위한 영가들의 관욕소로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좌측 기단부에
아궁이가 있는데 실제로 불을 때는 것인지
영가를 위해서 형식적으로 불을 넣는 의식을
하기 위한 것인지는 명화하지 않다고 하며
세월각은 일주문 쪽을 향하여 배치하고 있는데
이 곳은 여자영가를 위한
관욕시설이라고 합니다
일조불멸처............... (새 한마리 울지 않는 곳)
이인상대한...... (두사람이 한가롭게 마주 앉았네)
진관여법복.............(속세의 유자와 산중의 스님)
막작양반간....(승속을 구분하여 둘로 보지 마시게)
송광사 관음전은 성수전이라고 하였으며
조선 말 고종 황제의
성수망육(51세)을 맞이하여 황실기도처로
건축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건물은 1950년에 해체하면서 관세음보살상을
이안하여 지금도 관세음보살상 좌우에
그려진 해와 달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송광사 관음전은 이러한 내력 때문인가
관음전의 벽화가
일반 사찰의 벽화와는 달리 산수도와
화조도로 이루어진 것이
특이합니다
영산전에 모셔져 있는 후불탱은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을 하는
모습을 그린 후불탱과
석가의 생애를 여덟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탱이 유명한데
탱화는 액자나 족자 형태로 만들어서 법당에 걸 수
있게 만든 불교 그림을 탱화라고 합니다
송광사는 16국사의 배출로 우리나라의 삼보사찰 중
승보사찰로 유명한 도량이 되었으며 현재 송광사
국사전에는 16국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송광사 설법전 오른쪽 관음전 뒷뜰
언덕에는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감로탑이 있습니다
보조국사는 고려시대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제1세로 정혜결사를 일으켰던
바로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이 감로탑은 보조국사가 고려 희종 6년에 열반하자
왕으로 부터 불일 보조국사 라는 시호와
감로탑이라는 탑호를 받아서 3년뒤인
강종 2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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