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 석빙고를 찾아서
관룡사를 찾았다가
만년교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영산 석빙고를 보았습니다 석빙고는
조선시대에 얼음을 저장하던 시설로 창녕읍
동쪽의 작약산자락에 있습니다 읍지에 의하면
영산현감 윤이일이 축조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서울, 경주, 안동, 창녕, 청도 등에
석빙고가 있었다고 하며 저장된 얼음은 여름에
황실에서 사용하거나 특별한 신하에게 내리던
귀중한 하사품이었다고 합니다 영산 석빙고
추운 겨울에 강에서 채취한 깨끗한 얼음을 저장했다가
여름에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땅을 파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석빙고는 신라시대부터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현존하는 것은 모두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이며 그 구조가 비슷합니다.
석빙고를 밖에서 보면 무덤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땅을 깊게
판 다음 안쪽 벽은 석재로 쌓고, 바닥은 경사지게
만들어 물이잘 빠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 천장은 석재로 무지개 모양으로 쌓아올려
궁륭형으로 되어 있고 환기구멍이 있습니다.
현재 경주 석빙고(보물 제66호)와 안동석빙고(보물 제305호)·
창녕석빙고(보물 제310호)· 청도석빙고(보물 제323호)·
현풍석빙고(보물 제673호)· 영산석빙고(사적 제169호)
등이 남아 있습니다.
석빙고의 용도는 한겨울에 얼음을 보관했다가 여름에
꺼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얼음 저장고이며
조선 숙종 때의 기록에 의하면 경상북도에 있는
경주 석빙고의 경우 한겨울에 얼려 둔 얼음을
추석 때까지 사용했다고 합니다
석빙고가 만들어진 시기는 신라 지증왕
6년(505) 때부터 있었다고 전하는데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석빙고는 남아 있지 않으며,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은 거의 조선 중기의
것들이라고 합니다.
1. 석빙고의 구조
석빙고는 지역에 따라 겉모습만 조금씨 다를 뿐, 내부 구조는 거의 비슷합니다.
석빙고 안 바닥은 조금 경사지게 해서 물이 흘러나갈 수 있게 하였고,
천장 중간에 구멍을 뚫어 공기가 통하도록 하였다. 입구는 남쪽으로 내었습니다.
1) 바닥은 큰 돌을 경사지게 깔아 물이 잘 빠지게 하였습니다.
2) 입구는 바람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내었습니다.
3) 천장은 통풍과 온도 유지를 위해서 둥글게 만들었습니다.
4) 지붕은 환풍구를 만들고 잔디를 덮어 온도를 조절하였습니다.
2. 석빙고의 과학적 우수성
1)석빙고의 가장 우수한 점은 차가움을 잘 유지한다는 점입니다.
보통 땅 속의 돌은 겨울철에는 섭씨 10˚∼15˚를 유지하는데,
석빙고의 돌벽은 0˚∼5˚까지 내려갑니다.
3. 차가움을 유지하기 위한 구조
1) 입구
바람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입구를 내어 바람이 골고루 퍼지게 하고
대류 현상(열이 운반되는 현상)을 적절히 이용하여 환기를 유지하는 것이
냉동 보관의 핵심 요소입니다.
2) 벽
이중벽 구조로 되어 있어 바깥쪽은 단열 효과(물체와 물체 사이에 열이
서로 통하지 않도록 막는 효과)가 높은 진흙으로, 내부는 열 전달이 잘 되는
화강암으로 만들어, 통풍구 쪽의 더운 공기가 가열된 화강암에 의해
더 빨리 빠져 나가도록 하였습니다.
3) 지붕
지붕에 잔디를 심어 태양 복사열을 차단하고 내부 중앙에 배수로를 파서
얼음 녹은 물이 곧바로 빠져 나가게 한 것도 석빙고 내부의 온도를
차갑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4. 보냉제 사용
석빙고의 얼음은 단열 효과가 있는 왕겨나 짚으로 쌓아 보관하였습니다.
얼음이 녹으면 주변의 열을 흡수하게 되는데, 왕겨나 짚으로 싸 놓으면
안쪽 온도를 낮춰 얼음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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