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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묘를 찾아서

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릉을 찾아서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0. 8. 25.

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릉을 찾아서

 

가락국 수로왕비의 능으로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왕비는 성이 허씨이고  이름은 황옥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 아유타의 공주로 16세에

 배를 타고 와서 수로왕의 왕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허황후는 9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7명의 왕자들에게는

 수로왕의 성인 김해김씨성을 주고 2명의 왕자에게는

왕비의 성인 허씨성을 주어 지금도 그 후손이

김해허씨로 대를 이어 오고 있다고 합니다

능비에는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태후

허씨릉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수로왕비릉은 김해시내에서 북쪽 분산의 구지봉

기슭에 있으며 가락국 수로왕의 왕비릉입니다

 

 

 

 이 수로왕비릉은 조선시대 1446년에 수로왕릉과 함께

 정화사업을 하였는데 능비와 상석은 1647년에

 설치된 것이라고 합니다  

 

 

 

 원형봉토분의 규모는 지름이 약 18m 높이가 약 5m 정도인데

 호석은 없고 능 주위에는 네모나게 돌담을 쌓았으며

앞쪽으로는 낮은 단의 축대가 있습니다

 

 

 

 

 능비에는 가락국수로왕비보주태후허씨릉

(駕洛國首露王妃普州太后許氏陵)이는

묘비석이 새워져 있습니다

 

 

 

 경내에는 숭보재. 외삼문. 홍살문 등이

 세워져 있으며 능을 향하여 오른쪽에는

 파사석탑이 있습니다 

 

 

 

 

 1646년에 허목이 쓴 '보주태후릉 비음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보주태후릉이란

보주태후(普州太后)라고 불린 허황옥의

 무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 비음기(碑陰記)란 무덤에 있는 비석의 뒷면에 쓰인

 글귀를 가리키는데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인의

 조상들은 가야의 초대 왕후인 허황옥이

 인도 여인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허황옥이 인도와 가야를 연결하는

 매개체였음을 보여주는 물증이 오늘날

아시아 곳곳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가야에 당도한 서기 48년에 허황옥이 스스로를

 나이 16세의 아유타 공주라고 하였다는데

그는 아요디야란 도시를 지배하는 군주의

딸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능을 향하여 오른쪽에는 파사석탑이 있는데

 이 석탑은 김해시 중심에 있었던 호계사에서

이 곳으로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삼국유사에는 서기 48년에 수로왕비가 인도에서

올 때 풍랑을 가라 앉히기 위해 이 탑을 배에

 싣고 온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탑은 파사석으로 파사석은 우리나라에서는 없는 돌로

 닭 벼슬의 피를 떨구면 굳어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김해의 사학자 어느분이 확인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탑은 탑의 부재 5층만 남아 있는데 조각이

기이하고 돌에 붉은 빛이 도는 희미한 무늬

같은 것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 탑은 파도를 진정시켜 준다는 신령스러운 탑으로

일명 진풍탑(鎭風塔)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탑입니다

 

 

 

 이 탑은 원래 호계사에 있었으나 1873년에

 이 절이 폐사 되자 김해부사 정현석이

 수로왕비역으로 옮겼다고 하며

 

 

 

이 탑을 영구 보존하기 위하여 1993년 5월에

다시 이 자리로 옮기고 보호각을

세웠다고 합니다  

 

 

 

 

삼가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김해부의 구지봉은 북쪽 3리의

 거리에 있고 후한의 광무황제의 건무18년 임인3월에


 

 

 

 가락 9간인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 등이 물가에서

목욕하고 술을 마시다가


 

  

구지봉을 바라보니 이상한 기운이 있으므로 가 보았드니 

자주빛 밧줄에 금합이 매어져 내려오므로 이상하게

생각하고 열어보니 황금빛 알 여섯 개가

있었는데 태양처럼 둥글었다고 합니다

 

 

 

 이 황금알 여섯개를 아도간의 집에 모셔 두었다가 

이튿날 9인이 모두 모여서 또 열어 보았드니

여섯 알은 껍질을 깨고 여섯 동자가 되었는데

 

 

 

 나이는 15세 가량이고 용모는 매우 거룩하므로

여러 사람은 모두 절하고 경하하였습니다  

 

 

 

 동자는 나날이 장성하여 10여 일이 지나자 신장이 9척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여러 사람들은 마침내 한 분을 받들어

왕으로 삼으니 곧 수로왕이셨다고 합니다

 

 

 

수로왕은 금합에서 탄생하므로 인하여 성을 김(金)씨라

하고 국호를 가야 라 하였다고 하며 나머지 다섯 분은

각각 돌아가서 다섯 가야 임금님이 되셨다고 합니다 

 

 

 

다섯 가야는 고령(高靈)이 대가야(大伽倻)가 되고,

고성(固城)이 소가야(小伽倻)가 되고,

성주(星州)가 벽진가야(碧珍伽倻)가 되고,

함안(咸安)이 아라가야(阿那伽倻)가 되고,

함창(咸昌)이 고녕가야(古寧伽倻)가 되었다고 합니다

 

 

 

  

왕비는 아유타국 왕녀라 하고 남천축국 왕녀라고도 하는데

 성은 허(許)씨이고 이름은 황옥(黃玉 : 皇玉) 이라고

 하며 호는 보주태후(普州太后)로 왕능 제향 때에

합사한다고 합니다

 

 

 

  구지봉이란  김수로 왕이 탕강한 성지로 거북이 열마리가

엎드러 있는 형국이라 하여 구지봉 이라한다고 하며

 이 봉우리에는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있는데 (구지봉석)이라는 

글씨가 크게 새겨져 있으며 

 

  

 

 

  일제가 김해의 외각 도로를 낸답시고 구지봉과 허왕후릉

 사이를 잘라 마치 거북이 목을 잘린 꼴이 되어

 성지로서의 기운을 잃게 됐으나

 

 

 이를 원상복원 시키는 것이 향토사가들의 한결 같은 염원으로

 국고 예산으로 이를 복원키로 하고  지난 1990년 4월 10일

 기공식을 하고 1993년 공사가 완공되어 지금은 지맥이

연결되어 가락의 영광이 재현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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