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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굴산사지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1. 10. 19.

굴산사지를 찾아서

 

굴산사지는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있으며 신라 문성왕 13년(851)에 범일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 9산 선문 중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중심사찰이었다고

 합니다 현재 이 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와 굴산사지 부도,

 석불좌상이 남아 있으며 범일국사에  대한 재미있는 설화가

삼국유사에 의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굴산사는 고려시대때 지방호족들이 지원하여 번창하여 사굴산문의

중심사찰이 되었으며 굴산사지에 남아 있는 보물

제85호로 지정된  굴산사지 부도 입니다 

 

 

 학산리의 서낭당입니다 학 마을이라고도 하며 

마을 입구에 서낭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매년 정초에는 많은 사람들이 건안과 만복을 기원하는 글을 써서

새끼줄에 꽂아두고 빌던 곳입니다 

 

 

 석굴산문을 연 범일국사에 대한 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는 곳입니다

당나라 명주에서 낙성법회에 범일스님이 참석하였는데 법회가 끝날 무렵

왼쪽 귀가 없는 스님이 정중하게 예를 갖추어 부탁을 하였답니다   

 

 

 짝귀스님은 신라의 접경지인 익령현(양양)에 있는 덕기방에 살고 있는데 범일스님이

 귀국하시면 꼭 한 번 찾아달라는 부탁에 그렇게 하겠노라는 약속을 하였답니다 

짝귀스님은 덕기방에 오시면 반드시 커다란 부처님과의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갔답니다

 

 

 범일스님은 귀국해서 굴산사를 창건하고 불법을 전하느라고 짝귀스님과의 약속을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꿈에 10년전에 당나라에서 만났던 짝귀스님이 나타나서 스님

저와의 약속을 잊어버리신 겁니까?  덕깁방이라는 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셨답니다 

 

 

무심했다고 생각한 범일스님은 곧 바로 낙산사 아랫마을에서 마을 여인에게 덕기방으로

 가는 길을 물으니 덕기방이라는 지명은 모르고 제 딸의 이름과 같으니 신기할 따름

이라고 하였답니다 덕기는 매일같이 시냇가에서 금색동자와 놀면서 글도

배운다는 말을 듣고 덕기라는 소녀와 같이 시냇가로 갔다고 합니다  

 

 

덕기라는 소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한쪽귀가 없는 짝귀 스님과 똑 같은 돌부처님이

나탄서 나는 정취보살인데 나를 낙산사로 옮겨 주시오 그곳에 내가 앉을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답니다 보살을 모셔서 낙산사에 가 보니 빈 좌대가 있어서 앉혀보니

 정확하게 맞았다고 합니다    정취보살은 극락의 길로 빨리 들어서게 하는 보살로

목표를 향하여 묵묵히 걸어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무이행보살이라고도 합니다 

 

 

 보물 제85호로 지정된 굴산사지 부도 입니다 굴산사지 부도는 화강암으로 건조한

팔각원당형 석조부도로 신라시대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일부에

새로운 수법이 가미되어 주목되는 부도라고 합니다 

 

 

 상륜부는 노반 위에 앙화와 보주석을 중적하였는데 노반석은 8각이며 측면에

연화문을 이중으로 돌렸고 상단은 굽형으로 상면에 원형의

낮은 괴임 1단을 마련하여 앙화를 얹고 있습니다 

 

 

 탑신석은 8각으로 각 측면에 우주가 표현되어 있는데 배흘림 형태로 보이고

있으며 앞면과 뒷면에는 문비형을 마련하고 자물통을 모각하였습니다

 

 

 옥개석은 하면에 각형과 호형의 3단 받침을 모각하여 탑신석 위에 놓았으며 추녀로

 부터 처마의 전각에 이르는 넓은 간지에는 낮은 2단의 받침과 8귀퉁이에 공포가

모각되어 있어 목조건축의 일부를 연상케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하대석 상면에는 모를 죽인 괴임 1단을 각출하여 중대석을 받고 있으며

괴임단 주위에는 상단 사이에 수구와 같은 홈이 파여져 있습니다

 

 

 하대석은 낮은 8각의 각형 받침1단이 모각되어 있으며 측면으로 올라가면서

상단에 이르러는 원형으로 변하는데 측면 등 전면에 운문과

고사리문을 가득히 조각하였습니다   

 

 

 지대석은 8각의 측면에 각 면마다 1좌씩의 사자상을 비스듬하게 조각하여

배치하였는데 8좌의 사자상들은 머리와 몸체, 꼬리부분 등의

형체가 모두 달라 사실적인 느낌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괴임대도 8각 1석으로  하단에는 각형 1단의 받침이 지대석 상면의 괴임대에

놓이도록 되어 있고 측면의 상단에 이르는 각면에는 귀꽃문과 고사리문 등이

조각되어 상단은 큼직한 8엽의 앙련으로 이루어 진 것 같습니다  

 

 

위에서 각 부분별로 설명을 올렸습니다만 한 눈으로 보아도 높고 널찍한 지대석 위에

기단부를 형성하고 탑신부를 안치하였으며 정상에는 상륜을 장식한 화강암으로

건조된 부도가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통문화유산과 정보화 테마파크 그리고 학산오독떼기와

인터넷 까페가 있는 학 마을의 표지판입니다

 

 

  이 굴산사지 당간지주는 1963년에 보물 제86호로 지정된 높이 5.4m의 거대한 한 덩이의

 돌을 사용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라고 합니다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은 상 하 두곳이며 거대하지만 소박하고 강경한 수법을 보여

통일신라시대의 작품다운 웅대한 조형미를 나타내고 있는 당간지주 입니다

 

 

 이 당간지주는 4면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평면이며 하부는 돌을 다듬을 때

생겨나는 잡다한 선조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내면과 외측면이 수직을 이루고 있으며 앞뒤 양면은

상부까지는 수직이나 위 끝에 이르면 머리부분을 양측에서

점차 둥글게 깎아 곡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굴산사지 석불좌상은 1984년 6월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38호로 지정되었으며

 신라시대에 명주라고 불리던 강릉시 구정면에서 발견된 것으로

고려시대의 불교조각으로 중요한 자료라고 합니다

 

 

 오랜 세월을 풍상을 겪고 낙뢰의 피해를 입은 듯 전신에 균열이 있고

상호와 수인 그리고 하반신의 파손이 심한 편입니다

 

 

 얼굴은 둥글고 길며 눈 꼬리가 길고 인중은 짧은 편이며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지권인을 하고 있으며 머리에 관을 쓴 모습이 경직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발견 당시에는 석불입상으로 알려졌으나 1992년 해체 보수를 할 때

석조비로자나불상으로 밝혀졌다고 하며 곡선이 많이 사용된

기법으로 볼 때 고려 초기인 11세기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굴산사지로 추정하고 있는 이 일대는 현재 농경지로 사찰의 확실한 규모나 가람

배치를 알 수가 없으나 1936년 대홍수가 났을 때 농경지가 유실 되면서 초석의

일부가 노출되어 건물터가 확인되었으며 이 때 석불좌상을 비롯한

부도와 당간지주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강릉 학 마을 이라는 표지판과 서낭당이라는 표지판이 학 마을의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평화롭고 살기 좋은 마을 인 것 같습니다

 

 

학 마을 이라기에 학이 많이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하고 기다려 보았으나

시간에 쫓기다 보니 멀리 있는 학의 무리를 당겨서 찍어 보았습니다

학은 분명히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이 학산인가 봅니다 이 굴산사지는 구산조사의 한 분이신 범일 스님이

명주도독의 권유로 창건하였다고 하며 신라시대에는 구산선문 중 하나인 사굴산문의

 본산으로 알려진 대찰이었으나 고려 초에 폐사 되고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는 곳입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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