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내남 부지리 효자비각을 찾아서
경주시 내남면에는
고운 최치원 선생을 시조로
하는 경주최씨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역사가 오래된 내남초등학교
바로 옆에는 조선시대에 효성이 지극했던
효자이야기가 전해 오는 효자각이 있다기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이 효자비는 조선 중종때
최포공이라는 분이 지극한 효성으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했다는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마을
입구에 세워진 효자각으로 오래된 건물을
해체 복원하고 새롭게 단장을
하였습니다 .정효각
정 효 각
마을 어귀에 외롭게 서 있습니다만
그래도 오래도록 관심을 갖지 않고 있던
효자비가 최근 부지리 경주최 가문에서
새단장을 하였습니다
이 비각은 이조 중종때 효자 최포공의
비각이라고 합니다
경주에서 역사가 오래된 전통있는 초등학교로 서편
담장 건너편에정효각이 세워져 있으며
멀리 바라보이는 뒷산이 고위봉이고 천룡사가
바로 그 밑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록 작은 효자비각이지만 서로 맞물려
어울어진 귀공포의 짜맞춘 모습들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요즈음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산 교육의 장을 만들기 위하여
정효각 앞에 오석으로 세워진 순수 한글
원문 번역 비문입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보는 옛날의 비석보다
어린아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비석
이라고 생각됩니다
추녀마루의 끝부분을 보호하기 위해서 물받침을
길게 빼놓고서도 그 하단에는 기와조각을
부착해서 건축물을 보호 할려고
노력한 흔적들인 것 같습니다
최포공이 1537년에 이 마을에서 태어나서
눈 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지극한 효행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효자비각입니다
아버지의 눈이 병들어 실명을 하고 앞을 볼 수 없게 되자
용하다는 명의를 찾아 보았으나 정성의 보람도 없이
눈이 어둡게 되었ㄷ다고 합니다
눈 먼 아버지가 출입할 때는 언제나 손을 잡고 다녔으며
음식을 드실 때는 좋아하시는 음식을 먼저 떠 드려
마음과 몸이 불편함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평소에 자식이 과거에 합격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던 아버지의 소원을 기필코 달성하기
위하여 과거에 응시하였답니다
최포공이 과거를 보고 돌아오자 네가 과거에
합격했느냐고 물어보시니
예 합격하였습니다 라고 답하자
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면서 아버지의 눈이
환하게 뜨여지셨다고 합니다
이 번에 전반적으로 새 단장을 하면서 우주와
주초석들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남은 부재들인 것 같습니다만
그냥 버리기엔 아쉬움이
많은 것들입니다
활주초석인지 주초석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리를 잘 해두었으면 오랜 세월이 흘러간 다음에
이 석재들은 어디에 있었던 것들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효각 지붕의 밑부분입니다 비록 작은 건축물이지만
많은 손들이 지난간 흔적들이 역역합니다
서로간의 어울어진 귀공포들의 모습이
그데로 하나의 예술입니다
연화문도 있습니다만 창방인지 그 위에
문양이 이색적입니다
지붕과 추녀의 윗부분은 화려하게 단청을 하였으나
벽체 부분의 나무창살은 아무런 채색이 없이
순수함을 가지게 한 것은 또 무슨 연유인지요?
정효각(旌孝閣) 이란 표할 정(旌)자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효성이 지극했던 최포공의 효행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내려진 비각
이라고 생각됩니다
자라는 모습이 눈으로도 보인다는 완두콩의
이슬먹은 모습입니다
이 정효각을 보고 1km 정도 지나가면 경덕왕릉이라고
12지신 상이 잘 보존되어 있는 왕릉이 있습니다
저도 경덕왕릉을 찾아가는 길 목에서
돌아본 정효각입니다만
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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