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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화재답사

용산서원을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1. 2. 26.

용산서원을 찾아서

 

 

이 용산서원은

정무공 최진립 장군을

행사하기 위한 곳으로 조선

숙종 25년에 경주부윤 이형상이

지방선비들과 함께 세웠으며 임금

으로 부터  숭렬사우(崇烈祠宇)라는

편액을   내려  받았다고  합니다

고종 7년에 철거되었다가 다시

1924년에   건립된   서원

입니다  .  용산서원 

 

 

 

 

용 산 서 원

 

 

옛 속담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드니만 용산서원을 찾아간 날이

 바로 내일 제사를 모시기 위해서 문중의 많은 어른들이

모여서 제사를 모시기 위한 의논들을 하고 계셨답니다

 

 

 

 

부엌에서는 음식준비로 바쁜가 봅니다 좀처럼 연기가 피어나지 않았던

굴뚝에서도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재사상위에 오르는 돼지의 살아있는 모습입니다만 재상에

오르는 돼지는 목욕재개는 물론 통돼지가 오르게 됩니다

 

 

 

 

입구에 서 있던 용산서원 입구 표지판인데

넘어진 것을 옮겨다 놓은 것입니다

 

 

 

 

 식강문(植綱門)이라고 합니다

 

 

 

 

 

 용산서원을 들어가는 삼문의 입구입니다

 

 

 

 

 정무공 최진립 장군은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청백리에 기록 되었다고 합니다

 

 

내당에서는 음식준비에 한창입니다

 

 

 

 

 용산서원(龍山書院)이란 편액입니다만

 

조선 숙종 37년에 임금으로부터 숭렬사우(崇烈祠宇)라는

 편액을 내려 받았다고 합니다

 

 

 

 

서원에서 내단으로 통하는 샛문입니다만

 

들어가 보니 음식준비로 동분서주해서

정신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매화는 부끄럼 없이

잘 피어납니다

 

 

 

 

 

의관을 정재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발자국을 옮길 때 마다 도포

자락이 휘날립니다

 

 

 

 

 기념물 제 88호로 지정된 용산서원을

 알리는 표지석입니다

 

 

 

 

삼문중에서 중문과 우측문만이 열려져 있습니다만 

닫혀져 있는 문의 태극문양이 눈에 뜁니다

 

삼문은 문 마다 드나드는 사람들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고 합니다

 

 

 

 

 서원건물의 압쪽에는 교육시설인 민고당을 두었으며

 뒷편에는 재향공간인 숭렬사를 두어 전학후묘의

 구조를 택하고 있습니다

 

 

 

 

 담장과 작은 문과 추녀끝에 올려져 있는 기와들의

만남이 하나의 작품입니다

 

 

 

 

내당에서는 각종재기를 딱느라고 한창입니다만

 

 화장실을 가기에 편리하도록 추녀끝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용산서원의 종부인 것 같습니다만 어디론가 급하게

옮겨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정무공은 본관이 경주이고 자는 사건(士建)이고

호는 잠와(潛窩)로 현곡면 구미리에서

출생하셨다고 합니다 

 

 

 

 

 

 

 오늘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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