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무덤과 정려비각을 찾아서
정무공
최진립이 용인
험천에서 전사한 다음
판중추부사 김시양이 "정무공
최진립 장군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리려는 뜻은 속으로 본래 정해서 창졸
간에 전사한 유와는 다르므로 그 문에 정려를
내리소서" 라고 해서 신라의 고총인 개무덤이
앞쪽인 충의당 입구에 정려되어 비와 비각이
함께 남아 있는데 요즈음 정려각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공사 중에 있었습니다
개 무덤
개무덤이라고 하기에 충성스런 개이야기가 숨어 있는
개 무덤으로 생각했습니다만
막상 가서 보니 신라의 고총으로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 없는 무덤으로
그냥 구전되어 오는 말로 개무덤
이라고 합니다
가암쉼터라는 정자가 우거진 소나무 숲 속에서
외롭게 개무덤을 지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무덤의 꼭대기 중앙부위에 세워져
있는 비석입니다
넘어져 있던 것을 1996년도에 마을 사람들이
시멘트로 바닥을 고르고 바로
세워 놓은 것 같습니다
이 무덤이 개무덤이라고는 하지만 일반 왕릉에
조성된 소나무 숲처럼
오래된 소나무 숲으로 보아 왕의 무덤은 아니라고
해도 벼슬이 높은 분의 무덤은 틀림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정무공 최진립 장군의 정려비가 있는 비각입니다만 지금은
비각을 보수하느라고 대 공사 중입니다
정무공 최진립 장군의 사후에 판중추부사 김시양이
" 최진립장군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려는 뜻은
속으로 본래 정해서 창졸간에 전사한 유와는 다르니
그 문에 정려를 내리라는 상소로 정려비와
비각이 세워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충의 비각에 쓰여진 정무공 최진립 장군의
정려비 안내비석입니다
정려비는 사각의 돌기둥 으로 만든 받침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오래되 정려비각의 나무둥들이 재 사용하기 위해서
보존 처리되고 있는 중인것 같습니다
돌로된 받침석 위에 나무 기둥이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기둥의 모서리 부분이 많이
낡은 것 같습니다
우거진 소나무 숲으로 보아 이 밭자리에도
아마 개무덤을 중심으로 사방 소나무 숲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민가의 무덤에도 후손들이 돌 보지 않는
무덤에는 저 처럼 묘지 위에 나무들이
무성해 질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개무덤이라고 하는 신라시대의 고총이라지만 무덤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지대석들이 박혀져 있습니다
정려비는 충신, 효자, 열려, 등의 언행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그들이 살던 마을의 입구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개무덤과 정려비각이 세워져 있는 바로 앞길을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충의당과
충노비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이 경주 남산의 고위산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며
그 아래로 평평한 곳에 천룡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충의당이 자리하고 있는 가암이라는 마을은 남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명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옛부터 산 좋고 물 좋은 그 곳에 들까지 좋으니
풍요로운 곳이리라 짐작이 됩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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