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제일선원 칠불사를 찾아서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이란 칭호를 받은 칠불사는 지리산에 있어서 이 땅의 찬란한 불교문화와 지리산 음악의 원류이며 베일에 가려진 가락국 왕조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큰 사찰이며 아자방 온돌, 김수로왕의 7왕자가 성불한 사찰, 서산대사 등 수 많은 선사를 배출한 동양 제일의 선원이란 칭호로 잘 알려진 지리산의 명찰입니다
칠불사(七佛寺)
칠불사는 1세기 경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외삼촌인 범승 장유보옥 선사를
따라 이곳에 와서 수도를 한지 2년만에 모두 성불하였으므로 칠불사라고 하였답니다
칠불사는 가락국의 원류인 김해지방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진
지리산에 가락국의 역사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가락국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 왕비가 왕자 10명과 2공주를 낳았는데 태자 거등은
왕위를 계승하고 차자 석왕자와 3자 명 왕자는 어머니 허황후의 성을 이어
김해 허씨의 시조로 봉해 졌다고 합니다
일곱왕자들은 외삼촌인 보옥선사를 따라 지리산으로 들어와 수도 후 일곱부처가
되었다고 하며 허황후가 성불한 왕자들의 모습이 보고 싶어 이 곳을 찾았으나
보옥선사는 대면시켜 주지 않고 이 연못을 지켜보라고만 했답니다
허황후가 연못가에서 물속을 바라 보니 금빛 찬란한 일곱왕자의 모습이
비쳐졌다고 하며 그림자가 비쳐진 연못이라 하여 영지라고 합니다
칠불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영지 반대편 산 기슭에 부도와 부도탑이 서 있습니다
부도는 종모양으로 2기가 나란히 서 이있습니다
선사가 누구라는 것을 밝혀줄 글씨인 것 같은데 식별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종형 석부도에는 유두가 9개가 선명하게 남아 있고 하대는 종이 잘 트지지
않으라고 단단히 하는 태두리인데 섬세하게 잘 나타나 있습니다
동국제일 선원이라는 이 칠불사는 지리산의 중봉인 반야봉의 거대한 혈맥이 남쪽으로
용틀임해 뻗어린 해발 830m에 자리잡고 있으며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라고 합니다
험준한 산 속 깊숙하게 자리잡은 칠불사가 우리나라 불교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2,000여년 전부터 라고 합니다
이차돈의순교로 신라에서 불교를 공인한 후 16년 만에 신라는 지리산에 화엄사와 연곡사를 창건하였지만 가락국은 신라 눌지왕 36년(452)에 불교를 받아들렸다고 합니다
가락국은 신라보다는 1세기 정도 앞서서 지리산에 칠불사를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아자방의 목마 탄 사미승 전설은 하동군수가 아자방에 와 보니 공양을 마친 스님들이
자세가 엉망이라 혼내줄 심산으로 목마를 타고 동헌 마당을 한 바퀴 돌라는
군수의 명에 한 사미승이 목마를 만들어 가지고 동헌으로 갔답니다
천장을 쳐다보며 졸고 있는 것은 하늘을 우러러 보며 별을 관찰하는 공부로 상천통문
하여야 중생을 제도 할 수 있기 때문이요 고개를 숙이고 땅을 보며 조는것은 사람이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게 되는데 그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몸을 좌우로 흔들며 조는 것은 춘풍양류관이라 있음과 없음에 집착해도 안되며 전후
좌우 어느곳에도 얽매여서는 더욱 안된다는 달관의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방귀를 끼고 있는 것은 사또 같이 우매한 칠통배들을 깨닫게 하는 공부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라는 말을 마치고 사미승은 목마로 동헌을 한 바퀴 돌더니
공중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신라 효공왕 때 담공선사가 길이 약 8m의 이중 온돌방을 축조하였는데 그 방 모양이
아(亞)자와 같아서 아자방이라고 하였답니다 아자방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
지붕을 한 무익공계 지붕으로 우측 2칸은 부엌이고 좌측 3칸은 온돌방으로
내부는 틔어져서 하나의 공간으로 되어 있습니다입니다
이 아자방(亞字房)은 1951년에 소실되었으며 초가로 복원하였다가 현재와 같이
신축하였다고 합니다 아자방의 길이가 약 8m이고 네모서리의 높은 곳은스님
들이 좌선하는 곳이고 중앙의 낮은 곳은 불경을 읽는 곳이라고 합니다
아자방은 한 번 불을 지피면 49일 동안 훈훈한 온기가 가시지 않는다는 이 방은
100명이 좌선을 할 수 있으며 건축 이후 한 번도 개수를 한적이 없다고
하는데 신라 효공왕때 김해에서 온 담공선사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자방은 바닥의 모양이 아(亞)자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51년에 소실되어
초가로 복원하였다가 최근에 중창 하였으며 1000년을 지나는 동안 한 번도 고친
일이 없다고 하는데 불만 넣으면 상하 온돌과 벽면까지 한달동안이나 따뜻하고
100년에 한 번씩 아궁이를 막고 물로 청소를 하였다고 합니다
아자방은 1950년경 한국전쟁때 파괴되었고 80년대 초에 복원되었지만 선조들의
축원 기술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어서 한 번 불을 넣으면 2 - 4일 정도만
온기가 유지될 뿐이라고 합니다 보설루입니다
보옥선사는 거문고의 명인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불교와 음악의 관련성을
설명하고 있으며 지리산 범패 음곡의 원류로도 보고 있다고 합니다
운상원과 남원의 운봉, 보옥선사와 옥보고의 음악이 지리산이 음악의
산실이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명백한 것 같다고 합니다
용뉴는 용 모양을 한 범종의 가장 윗부분으로 용모습의 고리입니다 바다에는 고래가 있고
바닷가에는 포뢰용이 있어서 포뢰용은 고래를 무척 무서워 하기 때문에 고래를
보면 무서워서 우는데 그 울음소리가 종소리와 같다고 합니다
종위에는 잘 운다는 포뢰용을 만들고 종을 치는 당목은 고래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용뉴의 포뢰용이 고래를 싫어하는 손, 발의 모습이 특이합니다
입구에 있는 영지를 모르고 올라오신 분들이 이 연못을 영지로 잘 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연 못은 후대에 새로 조성한 연못이라고 합니다
일곱 왕자의 성불이 깃들어 있다는 칠불사는 1800년에 화재가 나서 보광전과 약사전,
신선당 벽안당 미타전 칠불상각 보설루 요사 등 10여동이 불타 버렸다고 합니다
그 후 칠불사는 다시 복구를 하였으나 또 다시 빨치산과 국군 토벌대와의 교전이 치열한
와중에 빨치산과 내통했다는 의혹을 사서 다시 불 타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보옥선사가 일곱왕자를 성불시켰다는 이 칠불사는 온갖 시련을 극복해 가면서
1978년 부터 복원하기 시작 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빨리 옛 모습을 되 찾을 수 있게 도기를 기원해 봅니다
칠불사는 아자방 온돌, 김수로왕의 7왕자가 성불한 사찰, 서산대사 등 수 많은
선사를 배출한 동양 제일의 선원이란 칭호로 잘 알려진 지리산의 명찰이자만
쌍계사 까지는 수없이 왔는데도 이곳 칠불사는 처음 와 보는 곳이었는데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함께 해 주신 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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