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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영축산 망해사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09. 3. 13.

영축산 망해사를 찾아서

망해사는 신라 헌강왕때 창건된 절로 헌강왕이 울산앞바다에 왔다가 갑작스럽게

 구름과 안개를 만나 길을 잃게 되자 동해용을 위하여 지은 절로 동해용이

 일곱아들을 거느리고 나타나서 왕의 덕을 찬양하고 처용을 보내어

나라의 일을 돕도록 하였다는 연기설화가 있는 사찰로

보물로 지정된 두기의 부도가 있습니다  

 

영축산 망해사

 

 천년의 세월 이전에 비롯된 망해사의 역사는 근대의 어느 시기에 그 전등의 맥이

 끊기게 되고 오랫동안 농지로 이용되던 망해사의 옛터에 1957년 영암스님이

 발굴하여 당우를 건설하고 정비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축산 망해사라는 표지석이 입구에서 반가이 맞아 주고 있습니다

영축사는 한국불교 태고종에 속한다고 합니다 

 

 

 사찰 창건과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 부도 2기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으나 당우는 쓰러져 토석이 그 위를 덮고 세월따라 자란

초목은 옛일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영축산의 이름따라 아름다운 절경을 자산삼아 망해사 가는 길목에는 어느 돈

많은 분이신가 산성보다도 더 높고 견고하게 성벽을 쌓아놓았습니다

 

 

 영축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물이라서인가 물맛이 좋았습니다

날씨가 무더웠던 때문일까요?

 

 

지금의 대웅전은 1991년에 건축되었다고 하며 망해사에서 출토된 기와 명문에

嘉靖二十三年甲辰 (조선중종 39년)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때에 중건불사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범종각은 붕이문과 동일선상에 위치하며 불이문을 들어서는 사람이 볼 때는

 왼쪽에, 법당쪽에서 볼 때는 오른쪽에 위치한다고 합니다 

 

 

 동쪽에 있는 부도는 보물 제173호로 높이가 3.4m 이고 서쪽에 있는 부도는

높이가 3.3m 로 워래 동서에 같은 형식으로 건립된 2기의 부도입니다

 

 

망해사의 부도는 8각원당형의 기본 양식을 따라 지대석은

 정사각형으로 마련하고 기단을 구성하였습니다

 

 

8각상대의 각면 상부에는 얕은 턱을 두고 그 밑의 각 면에 안상을 1좌씩 얕게

조각을 하고 이 지대석 위에 복련석을 놓았으며 복판 8엽의 연꽃을 둘렀고

그 꽃잎의 끝에는 귀 꽃을 평면으로 새겼습니다

 

 

 중앙에 팔각형의 높직한 4단의 굄이 얕은 중대석 을 받치고 있으며 중대석에는

각 우각에 기둥 모양이 ㅁ모각되어 있을 뿐 다른 조식은 없고

그 위에 앙련석이 놓여 있습니다 

  

 

 앙련석은 밑에 3단의 각형 받침이 있는 위에 단판 연꽃이 상 하 6잎씩 2중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기단 위에 탑신을 받치기 위한 딴 돌이 또 있습니다

 

 

이 돌은 갑석형으로 지나치게 내민 턱을 중심으로 밑에는 8각 각면에 기단과 같은

수법으로 된 안상이 있고 위에는 24잎의 연꽃을 돌렸습니다 

 

 

옥리는 반원을 그리며 연목을 번안하였고 추녀는 수평으로 넓은 편이며

 옥상에는 높직한 우동이 8가닥으로흘렀으며 완만한 곡선입니다

상륜부는 대부분 없어졌으나 일부만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탑신도 8각으로 각 우각에 기둥모양을 우각하였고 각 면에는 영창의 형태를

나타냈으며 밑에는 전후좌우 사면에만 호형을 새겼습니다

옥개석도 8각으로 각 부재 중에서 가장 많은 손상을 입었습니다

 

 

 이 석종형 부도는 조선 후기에 건조된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부도는 각부의 구성과 조각수법이 다소 섬약한 편으로 특히 얕게 새겨진

안상이나 복련석의 귀 꽃은 입체감이 부족한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8각

원당의 기본형을 계승하였고 석재의 결구에서 짜임새 있는 비율을

잃지 않아 통일신라 후기의 가작이라고 합니다  

 

 

 망해사의 폐찰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순조 31년(1831년)에 간행된

울산부읍지와 철종12년(1861년)에 간행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에는 이

절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으나 광무 3년(1899년)에 간행된 읍지에는

폐찰된 것으로 되어 있어서 추정해 볼 가치가 있는 자료라고 합니다

 

 

 폐사지에서 영축산 망해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신 전 주지 영암스님의

공덕을 기리는 비와 부도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이 곳까지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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