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곡마애조상군(慶州南山塔谷磨崖彫像群)
경주시 배반동 산 69 보물 제 201호
(문화재 해설 현장 답사를 하면서)
-경주를 다녀간 사람이 남산을 보지 않았다면 어찌 경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마애조상군이란?
- 이곳은 통일신라시대 때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남쪽에 있는 3층 석탑과 바위에 9층 동탑과 7층 서탑이 있어서 탑곡(탑골)이라고 합니다
- 이 바위에는 신라인들이 꿈꾸던 극락세계의 모습들이 바위 구석구석에 새겨져 있어서 마애조상군 이라고 하며 이곳 사람들은 탑골 부처바위 라고 부릅니다
⦿. 남산에서 가장 많은 조각이 있는 불적
- 높이 약 10미터, 둘레 약 30미터의 이 바위에는 불화를 감아놓은 듯 화려한 조각을 하여 한 폭의 만다라를 보는 듯하며 그 속에는 탑과 부처, 스님과 비천상, 금강역사와 사자상 등 34개를 바위 구석구석에 새겨 놓았으며 기법도 양각 ·음각 ·선각 등 다양합니다
Ⅰ. 북쪽면의 탑과 불상
- 북면(北面)을 향해 올려다보면, 영산정토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영산정토란 석가여래 부처님이 여러 보살과 나한들에게 설법을 하고 계신 곳입니다
1, 석불좌상
- 두 탑 사이의 바위 가운데 연화대좌 위에 앉은 석가여래상이 있으며 머리 위에는 천개가 있습니다 두 손은 무릎 위에 선정인 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옷자락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 천개는 인도와 같은 더운 나라에서는 햇빛을 가려 주기 위한 양산 같은 것이었으나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높은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법당이나 옥좌 위에는 반드시 천개가 걸려 있다고 합니다
2, 탑
- 석불좌상을 중심으로 양쪽에 목탑이 서 있는데 동편의 탑은 9층이고, 서편의 탑은 7층입니다.
- 추녀 끝마다 풍경이 달려 있고 탑 꼭대기에는 상륜부가 있습니다 그 위에 수연, 용차, 보주, 찰주 등 상륜부가 온전하게 조각 되어있어서 신라 목탑의 형태를 아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
이 9층 목탑이 황룡사 9층 목탑의 원형이 아닐까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 동탑의 상륜부는 탑신이 마멸되어 잘 보이지 않는 데 비해 너무 선명한 것이 후대에 손을 본 것이 아닌 가, 의구심이 생길 정도로 사실적입니다.
- 탑의 각 지붕 가에는 풍탁이 달려있고, 각 층마다 두 개의 창문이 열려 있는데 열린 쪽을 더 깊게 새겨서 탑의 입체감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 9층탑 상륜부 꼭대기 위에 2구의 천인이 날고 있는 데, 대자 대비하신 부처님과 영산정토를 찬미하는 뜻으로 새겨 놓은 것 같다고 합니다.
3, 사자상
- 부처님 바로 밑에는 암 수 두 마리의 사자가 불국정토를 지키고 있습니다
동쪽 사자상은 목에 털이 없어서 암사자로 보이나 입을 벌리고 있으며 꼬리가 세 갈래로 갈라져서 날리고 있는데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의 말 꼬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 서쪽 사자상은 목에 털이 많으므로 숫사자로 보이나 입을 다물고 있으며 꼬리는 여러 갈래로 복잡합니다
- 불교에서는 입을 벌린 사자를 아(阿)사자라 하고 입을 다문 사자를 훔 사자라고 하며 용맹스런 사자로 하여금 부처님세계를 잘 지키겠다는 상징적인 표현인 것 같습니다.
4, 비천상
- 동탑의 상륜부 위로 두 비천이 내려오고 있다 아름다운 비천들이 하늘을 날면서 음악을 연주하거나 꽃잎을 뿌리는 모습은 부처님의 불국정토를 찬미하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Ⅱ. 동쪽면의 불상
- 동쪽 면은 이 바위에서 가장 화려한 면으로 왼편으로 오르면 높은 바위 동면(東面)이 세부분으로 갈라져있습니다.
- 첫째 면에는 두 불상과 그 둘레에 하늘을 나는 듯한 천인 상이 여러 구 보인다. 두 부처님은 선명하지만 비천상은 마모가 심해 있는 듯 없는 듯합니다. 자세히 보면 일곱 비천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이며, 주불 머리위로 새 한마리가 날고 있습니다.
- 두 불상 중 본존불은 아미타여래로 연화대좌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원형 두광을 하고 계십니다.
- 본존불 왼쪽에 있는 협시보살은 머리에는 보관을 썼고 양 어깨에는 천의가 덮혀져 있으며 두 손을 합장하고 본존불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 본존불 오른쪽에는 협시보살 같은 흔적이 보여 삼존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비천상에 가까워 이불 병좌상이 맞는 것 같습니다.
- 이 동면은 극락정토로 하늘에서 천인이 내려오고, 고운 소리로 아름다운 노래만 한다는 극락조 까지 날며 극락세계를 축복하고 찬양하는 것 같습니다.
- 동편 두 번째 바위 면에는 보리수로 보이는 두 그루의 나무 아래에서 결가부좌로 앉아 선정에 든 스님이 새겨져 있습니다,
- 그 왼편 세 번째 바위엔 동쪽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있는 스님상이 새겨져있습니다.
기둥바위의 신장상
- 절 입구에 있는 기둥바위인데 키보다 더 큰 삼지창을 들고 절의 문을 지키는 금강역사상이 새겨져 있는데 맞은편에도 한 개의 돌기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 된다고 합니다
- 기둥바위는 탑 사이에 남향의 절터로 오르내리는 길이 나 있으니 화엄불국으로 들어가는 이 절의 정문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이렇게 좁은 돌문이 가람의 정문이라는 것은 바로 이 부처바위가 부처님이 계신 법당이라는 뜻입니다
Ⅲ. 남쪽면의 불상
1, 감실의 삼존불
- 남면 바위 면에 얕은 감실을 파고, 그 안에 세 불상을 새겼는데 본존불은 큰 연화대좌위에 앉아있고, 양쪽 협시보살은 모두 합장을 하고, 본존불을 향하여 고개를 바싹 가까이하고 있습니다.
- 삼존불을 모실 때는 본존불이 앉으면 협시보살은 서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서는 삼존이 모두 앉아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 동쪽에는 보리수가 있고 그늘 아래는 삼존불이 자리에 같이 앉아서 정답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예도 드물다고 합니다
- 삼존불 가운데 본존상은 큰 연꽃 위에 앉아 있는데 옷자락이 무릎 아래로 물결치는 듯 주름이 잡혀있다 이러한 옷자락을 상현좌 라고 합니다
- 오른쪽 협시보살은 연꽃위에 앉아 합장을 하고 머리를 본존불을 향하여 돌리고 있어서 두광도 타원형으로 조각이 되어 있다 이러한 기법은 변화를 주면서도 얇은 조각에 입체적인 깊이를 느끼게 합니다
- 왼쪽 협시보살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합장을 하고 본존불 가까이에 앉아 있습니다
2, 감실의 아라한
- 얕은 감실 안에 아라한이 새겨져 있다 두광도 없고 연화대좌도 없어서 선정에 든 스님 같으나 머리 위에 작은 육계가 있는 듯 하여 스님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3, 입체여래상
- 석조여래입상은 몸통과 다리부분이 다른 돌로 만들어져 서 있다. 대석에는 발만 새겨져 있고 발목 윗부분만 하나의 돌로 된 불상이다
- 몸체는 대석의 홈에 끼워 넣었고 두광과 얼굴일부가 손상되었으나 볼록한 가슴에 잘록한 허리로 보아 여성처럼 보입니다. 왼손바닥으로 아랫배를 살짝 데고 있는 듯해 안산불이라고들 합니다.
- 손모양은 좌상에만 나타나는 항마촉지인을 입상에 표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데 왼손을 배에 대고 있기 때문에 출산을 도와주는 안산불이라고 하는 것도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4, 삼존불 앞 중간에 있는 바위
- 삼존불 앞 중간에 있는 바위 면에는 나뭇가지 아래서 결가부좌를 하고 손을 가슴에 올리고 탑을 향하여 참선을 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5, 석등이 서 있던 자리
- 탑 앞에 석등 자리인 듯한 둥근 홈이 바위에 파여져 있다. 그리고 삼존불 앞에 있는 바위에도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6, 삼층 석탑
- 단층 기단 위에 서 있는 삼층 석탑은 옥개 받침이 삼단으로 되어 있고 솜씨가 세련되지 못하여 신라 말기의 것으로 보입니다
- 낙수면 모서리에 추녀마루가 새겨져 있고 그 끝머리에 구멍이 뚫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 구멍에는 금속으로써 무슨 장식을 했던 것 같은데 신라탑으로는 특수한 형식입니다
- 이 탑은 높이가 4.5미터의 작은 탑이지만 높은 언덕에 있어서 멀리서도 잘 보인다 이 탑은 계곡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77년에 다시 모아서 복원한 것입니다
7,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자리
- 이곳은 신라시대 7세기 중엽 이후에 밀교 계통인“신인사”란 절이 있었던 곳으로 이 부처바위도 사방 불 형식으로 그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가람의 기둥을 세웠던 흔적으로 추정된다
Ⅳ. 서면의 여래좌상
- 서면은 면적이 좁아서 부처님 한 분과 비천 하나가 새겨져 있을 뿐이다 양 옆에는 협시보살 대신에 오른 편에는 능수버들이 있고 왼편에는 대나무가 있는 그늘 아래 부처님이 큰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 머리위에는 육계가 있고 귀는 어깨까지 드리워져 있으며 눈과 코, 입술이 이 바위에 새겨진 어느 불상보다도 근엄한 표정입니다
- 두 손은 선정인 같은데 옷자락에 가려서 확인할 수 없으며 머리 뒤에는 보주형으로 된 두광이 보입니다
- 부처님의 머리위에는 비천이 피리를 불면서 옆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있으며 이 면은 동방유리광의 세계이고 부처님은 약사여래라고 생각 됩니다
- 신라시대의 사방불에는 동쪽에는 약사여래, 서쪽에 아미타여래로 되어 있는데 남북에는 일정한 약속이 없기 때문에 남북의 부처는 무슨 부처인지 알 수 가 없습니다.
- 북면을 정면으로 보았을 때 이 바위 면은 왼쪽이 된다. 왼쪽은 좌청룡이니 청룡의 방향은 동쪽이기 때문입니다
⦿. 부처바위에 새겨진 불상의 특색은?
- 일본의 오오사까 라는 사람이 이 부근에서 神印寺 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 기와를 발견한 것으로 보아 이 부처바위는 신인종에 속한 가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신인종은 삼국통일을 기원하던 7세기 중엽 명랑스님에 의해서 개조된 한 종파이므로 7세기 중엽에 새겨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특색이 있습니다
1. 옷자락이 손을 가리고 있습니다
2. 연꽃 잎이 넓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3. 불상이 삼존불처럼 자유로운 자세로 천진한 모습입니다
4. 눈가에 웃음이 어려 있습니다 (8세기 이후 부터는 입가에만 웃음이 있습니다)
옥룡암과 이육사
- 옥룡암은 1924년 박 일정 스님이 짓기 시작해, 이 심신녀 보살과 이분이 키운 비구니 만석으로 이어지면서 지금의 절로 자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뜰 옆에 만석인 경봉스님의 공덕비가 서 있습니다.
- 1942년 8월 이 육사님이 이곳에 머문 적이 있는데 이 때 쓴 “경주 옥룡암에서 신석초 에게” 란 시조가 있습니다.
뵈올까 바란 마음 그 마음 지난 바램
하루가 열흘같이 기약도 아득해라
바라다 지친 이 넋을 잠재울까 하노라.
잠조차 없는 밤에 촉 태우고 앉았으니
이별에 병든 몸이 나을 길 없으매라
저 달 상기 보고 가오니 때로 볼까하노라.
⦿. 경주남산은 ?
- 경주는 5악이라 하여 토함산(745)을 동악, 선도산(380)을 서악, 금오산(468)과 고위산(494)을 남악, 소금강산(280)을 북악, 낭산은 중악이고 기린천, 알천, 모량천, 남천이 있습니다
- 남산은 길이가 약 10Km 동서가 약 4Km 이고 44개의 크고 작은 계곡이 있습니다
- 신라 불교의 보고이자 영산으로 7세기 초를 시작으로 신라가 국운을 다 하는 10세기 초 까지 사원이 계속 건립되었으며 확인된 유적은 375 여 곳이 있습니다.
(절터 147개, 석탑 96기, 불상 118체, 왕릉 14릉)
- 남산을 중심으로 신라가 한창 번창할 때는 17만 8936호의 기와집들이 처마를 잇닿아 사방 55리에 차 있었다고 합니다
- 남산신성터에는 장창지가 있는데 장창지는 쌀 등의 군량미를 보관하던 중창지와 군사용 무기등을 보관하던 좌창지와 우창지를 따로 두고 있는데 중창지라고 하면 장으로 고치고 장이라고 하면 중으로 고쳐 버리는데 둘다 맞는 것 같습니다
-경주 남산은 진달래가 불국정토를 물들이는 4월 셋째 주가 가장 이상적이며
방향은 해를 따라 동남산에서 출발하여 서남산으로 종주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산신성이 있던 성터
⦿. 산 봐라
- 한 처녀가 월궁 옆 남천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 두 신(강한 근육의 남신과 부드러운 여 신)이 서라벌을 찾아 와서 - 야! 우리가 살 곳이 바로 여기구나 - 처녀가 이 소리를 듣고 겁에 질려서 - 산 봐라 하고는 쓰러져 버렸답니다
- 산과 같은 사람 봐라 라고 해야 될 말을 너무 급하여 -산 봐라 라고 소리쳤던 것입니다
- 비명 소리에 두 신이 발을 멈춘 곳 - 남 신은 장엄한 남산이 되었고, 여 신은 부드럽고 포근한 낭산이 되었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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