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주문화재답사 171

사적 제1호 포석정을 찾아서 사적 제1호 포석정을 찾아서 포석정은 신라 왕실의 별궁으로 연회를 베풀든 곳이고, 젊은 화랑들이 풍류를 즐기며 기상을 키우던 곳이요, 나라의 안녕을 기원 하던 사당이 있었던 곳으로 사적 제1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포석정은 모양이 전복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전복포(鮑)자를 써 포석정이라고 합니.. 2010. 9. 21.
[스크랩] 유학정치로 진골에 맞서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문성왕 19)~? 유학정치로 진골에 맞서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문성왕 19)~? 당나라에서 문명을 떨친 뒤 신라 개혁에 뛰어든 최치원의 투쟁과 좌절 ▣ 이덕일 역사평론가 ‘최치원 열전’은 “(최치원은) 서울(경주) 사량부(沙梁部) 사람이다. 역사 기록에 전하는 것이 없어 그 세계(世系)는 알 수 없다”라고 전하고 있다. 세계를 알 수 없다는 것은 그의 가문이 진골이 아닌 육두품임을 뜻한다. ‘최치원 열전’은 또 “어려서부터 정밀하고 민첩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였다. 12세에 바다를 따라 배를 타고 당나라로 들어가려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어린 나이에 해외 유학을 결심한 것은 신라에서는 진골이 아니면 출세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때 부친 최견일은 “10년 안에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니.. 2009. 5. 6.
[스크랩] 서역인이 지킨 신라 석실의 돌문 - 신장상 돌문 서역인이 지킨 신라 석실의 돌문 - 신장상 돌문 경주시 서악동 고분에서 발굴된 신장상 돌문 2개의 문이 아닌 1개의 문이며 앞 뒤의 모습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신장상 돌문이다 경주시 서악동 고분에서 출토된 것이나 어느 무덤에서 나온 것인지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무열왕릉의 서편에 있는 솟티고개 능선을 따라 남쪽 끝 장매마을에 이르기까지 수백개의 폐고분이 있는데 이 중 어디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 서악동 고분군중의 하나인 장산토우총 구조도(위는 벽면도, 아래는 평면도) (신장상 돌문도 이와 같은 구조의 석실분에서 출토되었을 것이다) 장산 토우총의 석비(돌문) 횡혈식 석실분의 널방을 지켰을 돌문으로 높이가 높이 150.5cm이며 석문의 한쪽 위와 아래에는 석실 상,하인방석의 문지도리(.. 2001.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