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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화재답사

[스크랩] 서역인이 지킨 신라 석실의 돌문 - 신장상 돌문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01. 12. 6.

서역인이 지킨 신라 석실의 돌문 - 신장상 돌문

 

 

 경주시 서악동 고분에서 발굴된 신장상 돌문

2개의 문이 아닌 1개의 문이며 앞 뒤의 모습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신장상 돌문이다

경주시 서악동 고분에서 출토된 것이나 어느 무덤에서 나온 것인지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무열왕릉의 서편에 있는 솟티고개 능선을 따라 남쪽 끝 장매마을에 이르기까지 수백개의 폐고분이 있는데 이 중 어디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

 

 

서악동 고분군중의 하나인 장산토우총 구조도(위는 벽면도, 아래는 평면도)

(신장상 돌문도 이와 같은 구조의 석실분에서 출토되었을 것이다)

 

 

장산 토우총의 석비(돌문)

 

횡혈식 석실분의 널방을 지켰을 돌문으로 높이가 높이 150.5cm이며 석문의 한쪽 위와 아래에는 석실 상,하인방석의 문지도리(문짝을 기워 넣는 홈)에 끼워 넣을 수 있게 둘출되어 있고 돌문의 중앙에는 손잡이를 달았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돌문의 앞․ 뒷면에는 낮은 돋을새김으로 신장상이 표현 되어 있고,  채색의 흔적이 확연하며, 앞 뒤 두 상의 표현은 전체적으로 비슷한데  이렇게 석실문에 신장상이 새겨진 예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머리 뒤로는 둥글게 띠를 두른 것 같은 두광이 있고, 보관 위로는 네가닥의 머리띠 장식 끈이 위로 날리고 있다.

벗은 상체에 화려한 목걸이를 하였고 팔에는 천의를 둘렀으며 하체에는 군의를 입었다.

다리는 좌우대칭으로 벌려 연꽃대좌 위에 서있는데 발목과 손목에는 각각 발찌와 팔찌로 장식을 하였으며. 손에는 긴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있다.

 

 

 

신장상돌문의 상체부분

 

신장상돌문의 하체부분

 

 

 

화려한 귀걸이를 하고 있는 얼굴의 부리부리한 눈과 매부리코, 긴 턱수염 등은 우리 눈에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낯이 익은 모습이다.

바로 괘릉(원성왕릉)에서 보았던 서역풍의 무인상, 무서운 얼굴 형상에 구렛수염이 특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서역인, 바로 그 얼굴이다

 

외형상의 특징으로 볼 때 이 석비의 신장상은 괘릉 무인석상과 흥덕왕릉의 무인석상과 꼭 닮은 상이다.

 

흥덕왕릉과 괘릉 앞의 석인상, 구정동 방형분(돌방무덤)의 모서리기둥에 새겨진 서역 무인상 등의 조성 목적이 능을 수호하기 위한 의미로 볼 때 이 신장상 역시 무덤의 주인을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장상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괘릉의 석인장은 무덤 앞을 지키고  이 신장상 돌문은 석실의 널방 앞을 지켰으며  용강동 고분에서 출토된 서역인상 토우는 널방 안을 지킨 서역인인 것이다.

 

이렿게 이국적이면서도 완벽한 사실적 표현은 삼국시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조형 감각이다.

7세기 후반은 중국 ·한국· 일본의 동양 삼국에서 서역 양식이 크게 풍미했던 시대로서 당시 신라에는 서역인들이 들어와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었음을 알려주는 근거이기도 하다.

 

 

 

괘릉(원성왕릉)의 석인상

 

 

 

강동출토 문관상 토우

 

 

 

 

 

출처 : 토함산 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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