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원사지를 찾아서
원원사(遠源寺)는
경주와 울산 사이 외동읍
모화리 봉서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신인종의 개조 명랑법사가
신라에 전한 밀교의 한 종파로
통일신라시대 문두루비법의
중심도량이 되었던 유서
깊은 절입니다
원원사지(遠源寺址)
산지가람 형태의 원원사지는 동탑과 서탑이
3층으로 우뚝 서 있으며
그 사이에 석등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보면 볼 수록 실감이 나는 사천왕상과
12지신상이 보는이의 마음을 끌어
당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곳 원원사는 김유신, 김의원, 김술종 등이
뜻을 모아서 세운 호국사찰인 원원사가
있던 곳입니다만
옛 사찰은 간곳이 없고 새로 조성된 절이
그 규모가 점점 커져 가고 있습니다
잘 보존된 장대석 계단을 오르면
옛날의 사찰은 금당터만 남아있고
동. 서로 3층 석탑이 있고
석등과 석조, 용왕전 등이
남아 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때마침 오늘이 동짓날이라서 절에 도착
하자 마자 비바람이 몰아치는 한파로 동태가 되어버린 손 발을
따끈한 동지팥죽 한 그릇으로 감싸서 온 몸을 녹여가며
동치미 국물을 한 모금 목구멍으로 떠 넘기는 그 맛깔
스러움이란 내 글 솜씨가 한스럽기만 합니다
바쁘신 중에도 챙겨주신 누구신지도 모르는
대자대비하신 그 보살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팥죽을 쑤어서 부쳐님이 계신다는 장엄한 탑앞에
불.법.승의 삼배를 올리고 탑돌이도 하셨겠지요?
아직은 온기가 감도는 그릇이 눈비를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두 탑은 같은 구조로 되었는데 2중 기단 위에
3층으로 쌓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양식이지만
윗기단에는 12지신상을 , 1층 몸체돌에는
사천왕상이 부조되어 있습니다
상층 기단은 면석을 2개의 탱석으로 3분 한 다음
각 면 마다 십이지신상을 돋을 세김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두 손을 모두 앞 가슴에 모은 공례의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 불버수호신으로서의 십이지신상이
전혀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있는
것이 이 탑의 특징입니다
제 1층의 탑신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모각하고
각 면에 그의 원각이나 다름 없는 힘찬
사천왕상이 보조되어 있습니다.
답사 해설을 담당하신 교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신라의 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사천왕상은 모두 악귀를 밟고 있으나 각 면마다
서로 다른 무기를 든 형태입니다
동방의 지국천왕은 오른 손에 칼을 들고,
서방의 광목천왕은 왼손을 어깨까지
들어 올려 삼지창을 잡고 있으며
오른 손은 가슴에 대고 있습니다
또 북방의 다문천왕은 오른 손에 보탑을 들고 있습니다만
불행스럽게도 남쪽의 증장천왕은 그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어 있는 형태입니다
서쪽에 있는 삼층석탑의 사천왕상도 동탑과
거의 비슷하지만 북방의 다문천왕만이
특이하게도 두 마리의 악귀를 밟고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그리고 1층 탑신에 비하여 2층과 3층의 탑신
높이가 급격하게 줄어 들고 있습니다
탑에 불교상을 조각하는 것을 장엄아라고 합니다만
윗 기단에 북쪽에서부터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의 12지신상을 앉아 있는
모습으로 돋을새김을 하였습니다
석등은 동 탑과 서 탑의 가운데 있으며 화사부와
상륜부가 멸실된 채로 남아 있으며
8각지붕 형태를 하였을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등이라고 생각됩니다
석등은 8각의 하대석 상면에 복련을 장식하였으며
1단의 괴임을 하여 8각의 간주석을 받치고 있으며
상대석에는 앙련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원원사지에서 내려다 본 사찰의 모습입니다만
노송이 옛날을 대신해 주는 것 같습니다
절에서는 아마 우리가 얻어먹은 팥죽 때문에
모자라는 팥죽을 다시 쑤는 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절 뒤에는 높은 장대에 여러가지 천을 휘둘러서
장식을 해 두었는데 아는 사람들이 없어서
여기에 사진을 올려 봅니다
혹시나 알고 계시는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꼭 좀 가르쳐 주세요
용왕전을 보기 위해 모이신 분들인데 나에게는
언제쯤 기회가 올려나 기다려 보면서
짭은 사진입니다
비록 그 규모는 작아도 이 건물안에 우물이
있다는 유명한 용왕전이라고 한답니다
사방 한 칸으로 지은 작은 집안에는 신라시대의
사찰에서는 처음 보는 특이한 전각으로
문을 열면 방형의 석조로 된 우물이 있고
벽 면에는 용왕의 그림이
모셔져 있습니다
앞에서 집안에 우물이 있어서 신기하다는 듯
물 속 깊이까지 들여보고 있는 젊은
친구의 모습인데 몰카 입니다
우물에서 넘치는 물이 흐를 수 있도록 통돌을
깎아서 연결하여 만든 수로 입니다만
군데군데 물고임 홈까지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석조우물과 배수조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도 이 용왕전의 우물은 사찰에서
식음수로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용왕전 건물은 우물위에 건물을 지어서 용왕전으로
이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견해가 있습니다
오늘이 동짓날이라 떡과 과일은 얼마
전에 새로 올린 공양인것 같습니다
원원사는 금당터만 남아 있습니다만
밀교의 후계자들인 안혜, 낭융과 김유신, 김의원,
김술종등이 국사를 논하던 중요한 인물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호국사찰입니다
탑석의 부재들이 몇 점
흩어져 있습니다
새로 지은 사찰에 공헌한 분들의 업적을
기리는 비인 것 같습니다.
종각도 준비되어 있으나 아직은 앞면의
얼굴을 을 가리고 있습니다
봉서산 원원사 (鳳棲山 遠源寺)
願자를 쓰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눈비가 진눈개비가 되고 다시 함박눈으로
변해가는가 하면 무자년 동짓날 이라서
찾는이가 많아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아무튼 여기까지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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