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국립박물관을 찾아서(2)
중세문화실
중세문화실은 대구·경북 지역의 불교문화와 유교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실이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출토되거나 관련이 있는 문화재와 자료를 중심으로 대구·경북 지역의 불교문화와 유교 문화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 대표전시품은 금동삼존불,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갖춤, 사자, 용머리, 안향 초상, 이황 글씨 등이 있으며 대구·경북 지방의 불교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금동 불상과 범종, 관덕동 돌사자 등의 유물과 고려·조선 시대의 도자기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다.
반가사유상/김천 양천동출토.삼국시대 7세기. 입불상/구미 봉한동 출토. 통일신라 8세기 초.
높이 23.5㎝ 높이 40.3㎝ 국보 182호
한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반가),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모습(사유)이다.
이러한 모습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무표정한 얼굴과 부자연스러운 신체비례, 도식적인 옷주름과 연꽃모양의 족좌 등 형식화의 경향을 보인다.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6~7세기에 유행하였다
입불상-국보 제 182호
1976년 경상북도 선산군 고아면 봉한 2동 뒷산에서 공사를 하던 중 금동관음보살입상 2구와 함께 세 점이 발견되었는데 3점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그 중 1점으로, 건장한 신체에 대의가 밀착되어 신체 굴국이 잘 드러나며, 두 눈은 지그시 감아 명상에 잠긴 모습을 보인다.
뒷면에는 주조 시 내부에 채워져 있던 흙을 빼내기 위한 구멍이 세 개 단정하게 뚫려 있다.
신체에 비해 작게 표현한 두 손, 몸에 밀착시킨 대의의 착의방식과 옷주름 표현, 속이 완전히 비게 만든 주조기법 등으로 볼 때 불상의 제작시기는 통일신라 8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각종 불상들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사리갖춤/ 대구 동화사 비로암. 통일신라 863년. 높이 14.2㎝
신라 44대 민애왕(재위 838~839년)을 추모하여 건립한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에 봉안되었던 금동제사방불판이다.
금동판은 모두 분리되어 있는데 좌우 가장자리의 구멍으로 보아 상자 모양으로 연결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각 판에는 선각과 타출로 사방불을 섬세하게 새겨넣었다.
모두 연꽃대좌에 결가부좌한 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입상이 배치된 삼존형식이다.
김천 갈항사 동서 삼층탑 사리함
문경 내화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청도 장연사지 동삼층석탑 사리갖춤
동화사 금당암 사리갖춤
봉화 봉지리 삼층석탑 사리갖춤
칠곡 송림사 칠층전탑 사리장엄 일체
전각형 사리기
용도 미상의 수형(樹形) 금동장식
사리장엄구
상감청자합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갖춤-보물 제325호. 칠곡 송림사출토. 통일신라 8세기. 높이 15.3㎝
1959년 송림사 오층전탑을 해체 수리할 때에 2층 탑신의 거북모양 석함 안에서 사리기와 여러 공양물이 나왔고 5층 옥개석 윗면에서는 상감청자합이 발견되었다.
화려한 전각형 사리기는 금동판을 오려서 만들었습니다. 방형의 기단 위에 난간을 세우고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워 보개를 얹었으며 난간 안쪽 중앙에는 연꽃모양 받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녹색 유리로 만든 잔과 사리병을 안치하였다.
사리기와 함께 석함 안에는 금제동심원륜과 유리구슬, 수정, 곡옥, 관옥, 가락지 등이 들어있었으며, 백제의 은제관장식과 유사한 금동제관장식이 석함 벽에 기대져 있었다.
이밖에 고려시대에 전탑을 수리하면서 봉안했을 것으로 보이는 고려 상감청자사리합이 출토되었다.
<관련자료: 팔공산 송림사의 아름다운 오층전탑 http://blog.daum.net/kinhj4801/15961833>
용머리/ 영주 풍기 출토. 통일신라 9세기. 높이 68.0㎝ - 보물 제1410호
절 입구에서 사찰의 소속을 표시하거나 법회 때 거는 깃발을 매다는 시설인 보당(당간) 끝에 올려진 용머리장식이다.
입 안에 물고 있는 커다란 여의주 뒤로 도르래가 있고 턱 아래에도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쇠줄을 걸어 깃발을 쉽게 오르내리도록 고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입술과 눈 윗부분에는 운기문을 새겨넣고 얼굴 주위의 갈기는 바람에 휘날리듯 입체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전체에 걸쳐 선새김 기법으로 비늘과 털을 매우 정교하게 채워 넣어 장식미를 더하였다
앞면 뒷면
마패/조선 1624·1727년. 지름 11.5㎝
마패는 암행어사를 비롯한 관리들의 지방 출장 때에 역에서 말을 징발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신분표식이다.
지름이 10㎝ 정도의 구리쇠로 만든 둥근 패에 한 면에는 연호, 연월일을 새기고, 다른 면에는 관원의 등급에 따라 1마리부터 10마리까지의 말을 새겨 넣었습니다.
말의 숫자는 암행어사가 말을 차용할 수 있는 숫자이다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 돌사자
경북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 기단 모서리에 있었던 석사자상으로 통일신라 9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되며 높이는 54.0㎝로 보물 202호로 지정되어 있다 |
원래는 4점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2점은 도난당하였으며 남은 두 마리는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 국립대구박물관으로 옮겨왔다.
사자는 불법을 지키는 수호상으로 불상의 대좌나 탑, 석등, 승탑 등 불교와 관련된 석조물에 많이 보이는데, 특히 관덕동 석사자상은 새끼를 품고 있는 모습으로 인해 일찍이 주목받아왔다.
오른쪽의 사자상은 마치 경계하는 듯이 고개를 들어 새끼사자를 품고 젖을 먹이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 암사자로 인식되고 있다.
사자상 뒷면의 삼층석탑 그림은 관덕동 삼층석탑으로 상 하 기단부와 1층 탑신에는 화려한 장엄물이 조각되어 있다
안릉신영도
퇴계 이황선생 글씨
학봉선생 문집
회제 이언적 선생 문집
회혼례첩/조선 18세기. 세로 33.5㎝, 가로 44.5㎝
조선시대 회혼례 장면을 그린 화첩이다.
회혼례는 결혼한 지 60년 되는 해에 부부가 다시 혼례를 치르는 행사로, 태어난 지 60년이 되는 회갑, 과거에 등재한 지 6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회방과 함께 장수와 복을 상징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이 화첩은 혼례의식의 각 장면과 혼례 의식이 끝난 후 잔치를 벌여 자식과 친지로부터 축하를 받는 장면까지 모두 다섯 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물과 건물, 여러 가지 기물 등을 섬세한 필치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 당시의 풍습과 풍물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안향 초상/조선 후기. 세로 88.8㎝, 가로 53.3㎝
회헌 안향(1243~1306)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원나라에서 주자의 저술을 도입하여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보급하였다.
이 그림은 안향의 반신 초상화로, 화면 상단의 제발과 찬시를 통해 1318년에 왕명으로 안향의 초상화를 그려 문묘에 봉안하였다고 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안의 초상화는 이후 이모되어 각처에 봉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 초상화는 조선후기의 이모본으로 여겨진다
오달제가 그린 묵매도/조선 17세기. 세로 104.9㎝, 가로 56.4㎝
오달제(1609~1637)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화의를 극력 반대하였는데, 후에 청에 끌려가서 모진 협박과 유혹에 굴하지 않아 결국 죽임을 당하였다.
그림의 윗쪽에는 숙종(재위 1674~1720)과 영조(재위 1725~1776)의 어제시가 있다.
매화는 약간 진한 담묵에 몰골로 그려 기교를 나타내지 않았으나 능숙한 필력으로 활달하게 획을 그어 서릿발 같은 기백이 역력하다.
(복식자료와 야외전시물은 3부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