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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스크랩] 국립대구박물관을 찾아서(1)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3. 5. 2.

국립대구박물관을 찾아서(1)

 

 국립대학박물관

 

한반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대구ㆍ경북지역은 선사, 고대로부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 왔다.

곳곳에는 신라와 가야, 통일신라시대의 유적과 유물 등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근세에 와서는 유학의 학문적인 연구를 통하여 영남학파라는 큰 학맥이 형성되어 오랫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여러 방면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맡아온 자랑스런 고장이다.
이러한 문화적 기반을 바탕으로 국립대구박물관은 대구ㆍ경북지역에서 출토되었거나 연고가 있는 유물의 전시는 물론 유물의 보존과 조사, 연구에 노력을 다 해 오고 있다.

 

국립대구박물관은 대구와 경상북도의 문화유산을 보존·연구·전시·교육하는 문화시설로 1994년 12월 7일에 문을 열었다. 2006년 10월 19일에 박물관 건물의 남쪽에 수장고를 추가하고, 북쪽에 사회교육관인 해솔관과 특별전시실을 증축하였다. 이후에 지방 국립박물관 전시의 특성화와 안정적인 전시 환경을 확보하고자 상설전시실 재개편공사를 시행하여 2010년 7월 19일에 고대문화실, 중세문화실, 섬유복식실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국가지정문화재 102점, 기증유물 1,220점 등 많은 유물을 보유한 국립대구박물관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범어공원 안에 지상 2층, 지하 1층의 아담한 벽돌 건물로 지어져 있으며 부지 3만여 평에 연건평이 3,048평이다.
전시된 내용에 따라 고대문화실ㆍ중세문화실ㆍ섬유복식실실 등 늘 열려 있는 세 개의 전시실과 한 개의 기획전시실, 그리고 유물을 보관하는 두 개의 수장고와 각종 문화강좌 및 문화예술 공연행사가 열리는 강당(360석)이 있다

 

 

고대문화실

 

 

고대문화실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출토된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고고, 역사 관련 유물을 소개하는 전시실이다. 대구 비산동 37호문 금동관을 비롯해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대구·경북 지방의 문화발전을 알 수 있는 유적들이 시대별로 전시하여 대구·경북 지역에서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당시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대표전시품으로 여러면 석기, 빗살무늬토기, 한국식동검,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 금동관 등이 있다

 

 

  민무늬토기

 

 

 

말머리장식굽다리접시(삼두마고배)/경산 임당동 출토. 삼국시대.  높이27.4cm


경산 임당동에서 출토된 말머리장식 굽다리접시는 5~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손잡이 부분에 3개의 말머리가 균등한 간격으로 장식 되어있다. 굽다리는 2단으로 장방형 투창을 서로 엇갈리게 뚫었다.

 

 

 

거북모양주전자

 

 

 

말모양토기

 

배모양토기/ 대구 평촌동 출토. 삼국시대. 길이25.6cm 

 

토기로 표현된 배의 하부는 통나무 형태이고 상부는 물결이 치는 듯한 형태가 결합한 2단형식의 준구조선이다.
상단의 횡판 2개와 좌우 3조의 노걸이 등 비교적 상세하게 표현되었으며, 바닥에는 굽다리 흔적이 남아 있다.
배모양토기는 죽은이의 영혼을 저승으로 태워 보내는 고대인의 신앙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오리모양토기/김천 삼성리 출토. 삼국시대. 높이14.3cm 

 

오리모양토기는 원삼국시대 후기, 낙동강하류지역에서 와질토기(瓦質土器)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널리 성행하였다. 삼국시대에 이르면 단단한 경질토기(硬質土器)로 바뀌면서 보다 사실적으로 만들어지는 한편 크기는 작아진다

 

오리모양토기의 등에는 액체를 담을 수 있는 주입구가 있고, 꼬리 부분에는 액체를 따를 수 있는 출수구가 있다. 내부는 비어 있어 그릇의 기능도 가능하며 주전자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몸통 둘레에는 하트모양의 달개를 달고 있고 받침은 2단 투창의 굽다리로 되어 있다.

낙동강 주변의 신라와 가야 사람들은 해마다 겨울이 되면 낙동강으로 찾아들고, 봄이 되면 북쪽으로 돌아가는 오리를 보면서 사람의 태어남과 죽음을 떠올린 것 같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북쪽을 저승세계가 있는 곳으로 생각했고, 오리모양토기가 대부분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는 것은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존재로 여겼던 것이다. 또한 농경문청동기에는 새와 쟁기질하는 남자가 새겨져 있는데, 농사에 필수적인 물과 친숙한 오리를 통해 풍요를 바라는 고대인의 염원을 짐작하게 한다.

 

 

 

인형토기

 

 

철제 투구와 목가리개

 

 대도류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호형대구)/경산 신대리 출토. 원삼국시대. 길이10.2cm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는 중국 한 문화가 유입되면서 함께 들어온 것이다. 눈, 코, 입과 이빨의 표현이 사실적이며, 몸체는 풍만하고 꼬리는 엉덩이에 붙어 뱀처럼 둥글게 말려있다.
직선으로 돌출된 허리띠 고리부분에는 세로줄로 3구획하고 그 사이에 번데기모양의 돌기를 장식하였다

 

 

 말모양 청동 허리띠 고리

 

 

장신구류

 

 

 

금귀걸이/ 대구 내당동 출토.  삼국시대.  길이6.5cm 

 

귀걸이는 삼국시대에 남녀의 구별없이 널리 애용되었다.
귀걸이는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며 고리의 굵기에 따라 굵은고리귀걸이와 가는고리귀걸이로 구분된다.
굵은고리귀걸이는 고리속이 비어 있으며 샛장식에 달개가 매달려 있어 화려하다.

가는고리귀걸이는 신라와 가야의 귀걸이 형태가 약간 다른데 신라 귀걸이는 고리, 샛장식, 드리개로 구성되어 있다.

 

 

 

 대롱옥, 비치옥 목걸이/영덕 오포리 출토. 청동기시대. 비치옥 길이 3.8cm (아래)

 

구멍이 뚫린 대롱모양의 옥을 연결하여 목걸이로 만들었다. 조개와 짐승의 이빨 등으로 만들었던 장신구류는 시간이 지나면서 단단한 암석류의 옥, 그리고 점차 유리제품 등이 나타난다.
목걸이는 신분을 상징하거나 장식품으로 무덤에서 주로 확인되고 있다

 

 

허리띠·드리개/ 경산 조영동 출토. 삼국시대.  길이120.0cm 

 

허리띠꾸미개는 버클에 해당하는 띠고리, 허리띠 끝에 다는 띠끝꾸미개, 가죽 또는 비단 허리띠의 겉면을 꾸미는 띠꾸미개, 허리띠에 매달아 드리우는 띠드리개로 구성된다.

띠드리개는 경주 지역에서는 금제 또는 금동제로 많이 제작되지만 다른 지역은 대부분 은으로 제작된다.
드리개의 끝에는 곱은옥, 작은칼, 집개, 물고기, 바늘통, 숫돌 등의 장식이 매달려 있는데, 이러한 드리개를 갖춘 허리띠는 북방 유목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금동관

 

 

금동제관장식/ 의성 탑리 출토. 삼국시대.  높이40.1cm

 

새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형태이며, 앞판과 양쪽 날개는 좌우 각 3개씩 작은 못으로 결합하였다.
앞판과 날개에는 둥근 달개가 달았으며, 가장자리에는 2줄씩 점무늬를 새겼다

 

 

금동관/대구 비산동 출토. 삼국시대

 

금동관/의성 탑리 달성 출토. 삼국시대. 높이39.0cm

 

이 금동관은 의성 탑리 일대 130여기의 고분 중 서쪽 정상부에 위치한 지배자급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띠 모양의 테두리 위에 가장자리를 가늘게 자른 후 이를 꼬아서 새의 깃털모양으로 만든 세움장식 3개를 부탁한 금동관이다. 이는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은관의 깃털장식과 동일하며, 고구려 관장식에서 보이는 특징과 유사하다. 세움장식의 상부에는 새의 눈을 연상시키는 2개의 구멍이 나 있다.

 

은제관장식/경산 임당동 출토. 삼국시대. 높이14.3cm

 

이 관장식은 모자 앞에 세워 붙이는 장식물이다. 새가 날개를 펴고 나는 형태이며, 가운데의 앞판과 양쪽 날개를 따로 만들어 결합한 것이다.
신라의 관장식에는 금이나 금동제품과 함께 은제품도 많이 제작되었다

 

나비모양 관장식/의성 탑리 출토

 

금동신발

 

 

마구류

 

 

 

 

 

 

 

 

 

출처 : 토함산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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