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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광양 중흥사를 찾아서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3. 10. 8.

 

광양 중흥사를 찾아서

 

 

광양 중흥사는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중흥산 자락에 있으며 신라

경문왕 때 도선국사가 중흥산성

안에 세웠다고 하며 중흥사에는 국

보인 쌍사자 석등과 보물인 3층 석탑

도지정문화재인 석조지장보살 반가상이

있었으나 쌍사자석등은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중에 있으며 임진왜란때 왜군과 의병의

격전지였던 호국사찰 중흥사는 임진왜란 때

폐사된 것을 1963년에 중건 하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3층 석탑과 쌍사자 석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절 이름조차 알 수 없으며

현존하는 삼층석탑과 쌍사자석등을 통해

볼 때 신라하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

하고 있으며 석탑 좌 쪽에 이 사찰에

있던 국보 쌍사자석등의 복제품이

세워져 있으며 석조지장보살

반가상은 볼 수 없습니다.

광양 중흥사는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중흥산 자락에 있으며 신라

경문왕 때 도선국사가 중흥산성 안에 세웠다고 합니다

 

중흥사에는 국보인 쌍사자 석등과 보물인 3층석탑, 도지정문화재인 석조지장

보살 반가상이 있었으나 쌍사자석등은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3층 석탑과 쌍사자 석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절 이름조차

알 수 없으며 현존하는 삼층석탑과 쌍사자석등을 통해

볼 때 신라하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석탑 왼쪽에 있는 쌍사자석등은 복제품으로 국보 쌍사자석등은 광주박물관에

보관 중에 있으며 석조지장보살반가상은 일반인들이 볼 수 없습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과 의병의 격전지였던 호국사찰 중흥사는 임진왜란 때

폐사된 것을 1963년에 중건 하였다고 합니다

 

 

백운산은 한반도의 남단 중앙부에 해발 1,222미터의 백운산은 봉황. 돼지,

여우의 세 가지 신령한 기운을 간직한 영산이라고 합니다  

 

백운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와 호남벌을 힘차게 뻗어 내리는 호남정맥을

완성하고 섬진강 550리 물길을 갈무리한 명산입니다

 

중흥사는 대웅전이나 명부전 등 절집들이 단청을 하지 않아서 절 같은

느낌이 들지 않고 조선시대 양반집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구전으로 전해하는 중흥사는

이 백운산의 중흥산성 내에 있습니다. 

 

성내의 절터에 석탑·석등(국보 제103호)이 건립될 정도라면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 경영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옛부터 전해오는 사찰 이름에

대해서는 현재 확인할 길이 없다고 합니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성내 사찰을‘중우절’이라 불러왔다고 하며 현재의

중흥사라는 사찰은 1950년대 초, 김공돌이란 스님이 이곳에 작은

암자를 건립하고 나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중흥사에는 국보 제103호인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과 중흥산성 3층석탑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 봄, 일본인들의 골동상에 의해 완전 해체되어

옥룡면사무소로 옮겨졌는데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서입니다

 

 

중흥사는 천태종에 속하는 사찰로 경내에는 신라말 고려초의 작품으로

보이는 보물 제112호 중흥산성 3층 석탑이 있습니다

 

 

 1942년에 간행된 조선보물 고적조사 자료 광양 편을 보면 성내 사지에

석탑과 석등이 있다고 하였으나 사찰명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삼층석탑은 다행히도 당시 조선총독부의 관여로 쌍사자석등은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을 거쳐 1990년 8월 광주국립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고 3층석탑은 중흥사터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중흥산성 삼층석탑은 이상의 내용을 참고해 볼 때 삼층석탑의 현 위치가

원래의 석탑 자리가 있던 자리인지 의문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중흥사 터의 옛 절은 임진왜란 때 중흥산성에서

벌어진 의병·승병과 왜군과의 전투로 소실된 것으로 보입니다.

   

중흥사 삼층 석탑의 뒷쪽 담장 너머 중흥산성 내의 저수지 둑이 보이고

석탑의 왼쪽에 이 사찰에 있던 쌍사자석등의 복제품이 서 있습니다

     

이 삼층석탑은 2층 기단을 구성하고 있으며 삼층탑신부를 갖춘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하단의 지대석은 7매로 결구된 장대석이며 그 위로 하층기단이 있는데

각 면 모서리에는 우주가 있고 가운데는 3개의 탱주가 있습니다

 

상층기단 면석은 면석 각면의 모서리에는 폭이 넓은 우주를 모각하였고

면석 중앙에는 탱주 1주씩을 모각하였습니다.

 

상층기단의 각 면석에는 중앙의 탱주를 사이에 두고 양편에 각종의 존상을

새겼는데 정면 남쪽에는 높이79㎝의 금강역사상이 양쪽으로 2구가 있으며

 

측면인 동 서에는 사천왕 입상이 각 2구가 있고 뒷면인 북쪽에는 찻잔을 받쳐

들고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공양상 2구가 양각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양식들은 중흥산성 삼층석탑 외에는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의

탑으로 상층기단갑석의 윗면 중앙에는 각형으로 된 2단의

몰딩이 뚜렷하게 각출되었습니다.

 

다른 탑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일반 탑에서는

옥개석의 모서리에만 나타나는 철정공(못을 밖은 구멍)이

옥개석의 모서리에는 물론 상층기단 갑석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있다는 점입니다.

    

옥개석 모서리와 갑석 가운데에 철정공이 있는데 풍탁을 달아 탑을 장엄

하였다고 보면 처음 모습은 화려하게 장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중흥산성 삼측석탑의 남면 기단 앞에는 배례석이 있는데 배례석의

옆면에는 안상이 깊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탑신부는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한 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 탑신 각 4면에는 모서리에 우주가 모각 되어 있습니다

 

 

각 면에 여래상을 조각하였는데 동, 서, 남면에는 앙복련의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를 한 여래좌상 1구씩이 조각되어 있으며 북쪽면만 입상의

여래불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1층 탑신석의 여래상

 

 

 

   

동쪽면 여래상은 높이 40㎝의 크기로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며

왼손에 약함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동방약사여래입니다

 

 

 

 

 

 

중흥산성 삼측석탑의 남쪽면은 소발의 머리에 육계가 솟아 있고

수인은 합장을 하여 다보여래로 볼 수 있습니다

 

 

 

 

 

 

 

서쪽면은 소발의 머리에 육계가 비교적 큰 여래좌상인데 오른손은 높이 들어

인지와 엄지를 잡고 있고, 왼손은 좌측 무릎 위에 대고 역시 인지와 엄지를

잡고 있는바 이 수인은 상품하생으로 아미타여래를 상징한 것입니다.  

 

 

 

북쪽면은 입상으로 우견편단이며 수인은 선정인을 하고 있어 이 여래입상은

중생의 모든 번뇌를 없애고 대원을 성취하여 결코 헛되지 않게 공덕을

쌓았다고 하는 불공성취여래라고 합니다.

 

 

남면 금강역사상

 

북면 공양상

 

 

2층 탑신부터는 탑신의 높이를 급격히 줄여 체감되었으며

3층까지 동일한 양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옥개석은 각층의 층급받침이 3단이며 낙수면의 경사도 완만한 편이고 처마의

곡선도 일직선을 보이다가 전각에 와서는 경쾌한 반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삼층 옥개석 위에는 상륜부가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상륜부에 노반과 복발이

있었으나 사리함을 노린 도굴범들이 들어와 떨어뜨렸는데 다행이 파손이

되지 않아 지금 다른 곳에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흥산성 삼층석탑은 기단부 높이가 181㎝이고 탑신부의 높이 209㎝로서

기단부가 넓고 높은 반면에 탑신부는 너무 낮은감이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하층기단의 탱주가 3개이면서

상층기단의 탱주는 1주로 줄었고

 

또 각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3단이며 상면의 탑신받침이 각형 1단으로

퇴화된 현상으로 보아 석탑의 조성시기는 9세기말 그 이후로 보여지나,

 

상층기단에 조각된 인왕상과 사천왕상 및 공양상, 그리고 1층 탑신에 새겨진

사방불의 조각이 신라하대인 9세기경의 기법과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어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중인 쌍사자 석등(국보 제103호)과 거의

같은 시기인 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름도 없는 요사채입니다

 

중흥사 대웅전의 모습입니다

 

중흥사 대웅전의 본존불상 입니다

 

명부전의 모습입니다

 

명부전 안에 모셔져 있는 불상입니다

 

대웅전 뒤에 있는 이름 없는 요사채입니다

 

중흥사 석조지장보살반가상은 전남 유형문화재 142호로 높이 79cm의 크기로

원래 중흥사 삼층석탑 옆에 있었는데 1978년 서울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다음해에 다시 돌아와 현재는 법당에 잘 봉안되어 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반가상 양식과 달리 왼발을 오른 무릎 위에 올리고 오른발은

내리고 있으며 머리에 길다란 두건을 쓴 지장보살입니다 

 

중흥사 석조지장보살반가상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스님들이 입던 장삼을

걸치고 있으나 보통 불상에서 볼 수 있는 법의가 아닌

우리의 전통 저고리와 같은 형태입니다

 

 

 

하단부로 내려와서도 군의 자락이 아닌 두루마기 같은 형태로 조식되었는데

이러한 불상의 의문은 우리나라 불상에서는 보기 드문 특이한 것입니다.

   

얼굴은 네모난 모습에서 형식화가 엿보이지만 풍만하면서도 수수하게 웃고

있는 모습으로 체구도 다소 둔중하지만 친근함이 느껴집니다.  

 

 

눈은 반쯤 뜨고 약간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으며 코는 손상을 입어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있으며. 목에 삼도가 보이나 목 부분이 균열되어 시멘트로 보수하였으며

양손과 왼쪽 발끝도 시멘트로 다시 만들었기 때문에 색상이 달라보입니다.

   

보살상과 좌대가 한 개의 돌로 조각이 되었으며 대좌는 하대만 보이는데

꽃잎이 2겹인 연꽃무늬를 새겼고, 발 아래에도 대좌를 표현하였습니다.

 

석탑 왼쪽에 있는 쌍사자석등은 복제품으로 국보 쌍사자석등은

광주박물관에 보관 중에 있습니다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중인 중흥사지 쌍사자석등은 큼직한 연꽃이 둘러진

받침돌 위로 가운데 기둥 대신 쌍사자를 조각한 것이 특징입니다.

 

중흥사지 쌍사자석등은 두 마리의 사자가 뒷발로 버티고 서서 가슴을 맞대어

위를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8각의 화사석에는 4개의 창이 뚫려 있고,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에 치켜올림이 아름답게 표현되었습니다

 

 

종각 안에 모셔져 있어야 할 범종이 방치되어 있는데

무슨 사연이 숨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중흥사의 주 출입문으로 천왕상을

준비하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중흥산성을 뒤로 하고 있는 중흥사 전경인데

단청을 하지 않은 절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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