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봉서사지 삼층석탑을 찾아서
문경봉서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말기에 축조된 탑으로 일제
말기에 도굴꾼에 의해 도괴되어
밭가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91년에
복원한 탑으로 탑이 위치한 자리에 봉덕
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빈터만
남아 있으며 거대한 자연 암반을 깎아서 조
성한 이 탑은 지대석이 생략된 구조로 단층
기단 위의 갑석은 대형판석을 놓았으며 갑석
상면에는 초 층 탑신석을 고정시키는 홈이 있
는 것이 특이하며 옥개는 각층 모두 1석으로
5단이며 옥신받침은 3석 모두 2단의 각형
이고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있으며 도굴된
사리구가 일본으로 반출된 것을 1965년
한일문화협정에 의한 반환문화재로서
11점의 사리구 유물들이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봉서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말기에 축조된 탑으로 일제 말기에 도굴꾼에
의해 도괴되어 밭가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91년에 복원한 탑입니다
봉서사지 삼층석탑은 탑이 위치한 자리에 봉덕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잡초가 무성한 빈터만 남아 있습니다
거대한 자연 암반을 깎아서 조성한 이 탑은 지대석이 생략된 구조로
단층기단 위의 갑석은 대형판석을 놓았습니다
봉서사지 삼층석탑의 갑석 상면에는 초 층 탑신석을 고정시키는
홈이 있는 것이 특이한 형식입니다
옥개는 각층 모두 1석으로 5단이며 옥신받침은 3석 모두 2단의 각형이고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있습니다
봉서사지 삼층석탑은 도굴된 사리구가 일본으로 반출된 것을 1965년
한일문화협정에 의한 반환문화재로서 11점의 사리구 유물들이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봉서사지 삼층석탑은 거대한 자연 암반을 깎아서 그 위에 조성된 탑으로
지대석이 생략된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단층 기단 위의 갑석은 한 변이 206cm 인 1매의 대형 판석을 놓았으며 갑석
상면에는 초 층 탑신석을 고정시키는 홈이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봉서사지 삼층석탑의 옥개는 각층 모두 1석으로 5단이며 옥신 받침은
3석 모두 2단의 각형이고 상륜부에는 노반만 남아있습니다
봉서사지 삼층석탑의 사리공은 초 층 탑신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2층이나 3층 탑신에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탑내 사리구는 일본으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65년 한일문화협정에 의한
반환문화재로서 청자완, 목재사리함. 수정사리호. 자색비단 등 11점의
사리구 유물들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되어 있다고 합니다
봉서리 삼층석탑은 정말 절묘한 위치에 있으나 비지정이라 많은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탑인데 잘 복원되어 있습니다.
봉서사지 삼층석탑은 거대한 자연 암반위에 세워져 있어서 멀리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더욱 마음에 와 닿는 석탑입니다.
봉서사지 삼층석탑 주변에는 주춧돌과 기단석이 있습니다
이 석탑의 뒤쪽으로는 여기 저기 장대석을 비롯한 석재가 늘려있고
기와조각도 널리 흩어져 있습니다.
봉서시자 삼층석탑이 있는 곳은 호계면 봉서리는 봉황이 깃들어 있는 마을로
봉황이라는 새는 상상의 조류로, 수컷은 봉, 암컷은 황이라고 하는데
성인의 탄생에 맞추어 세상에 나타나는 새라고 합니니다.
봉황은 오동나무에 깃들며 감천을 마시고 대나무 열매를 먹는다고 하며
다섯 색의 묘음을 내며 새의 왕으로 귀하게 여기는 영조입니다.
자연암반을 지대석으로 하여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는 이 탑은
그 위로 단층의 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올렸습니다.
삼층석탑의 기단부는 2단의 각형 받침 위에 면석은 1매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주와 탱주를 모각하였는데 이 면석은 새로 보완한 것입니다.
면석 위에는 부연을 갖춘 갑석을 덮었으며 갑석 위로는 2단의 각형 옥신
괴임을 갹출하였는데 기단 갑석 윗면을 파고 탑신을 올렸습니다.
봉서사지 삼층석탑의 옥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1매의 돌로 만들어 졌는데
옥신석의 양쪽 측면에는 우주를 모각하였습니다.
봉서사지 삼층석탑의 옥신석과 상륜부의 노반은 모두 새로 보완한 것으로
옥개 받침은 각 층마다 모두 5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봉서사지 삼층석탑은 자연암반위에 기단부를 형성하고 있는데 석탑이 서 있는
바위에 채석을 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바위가
본래의 탑 자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봉서사지 삼층석탑은 석탑의 네 모서리에 사각형의 홈이 파여져 있는데 석탑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각을 세운 사례가 없고 홈의 크기가 석탑 전체를
덮을 만한 기둥을 세우기에는 너무 작은 것 같습니다
석탑이 세워질 바위를 부재로 활용하기 위해 채석할 까닭이 없으므로
짐작컨테 봉서사 창건 때에는 석탑을 세우지 않았거나,
현재 석탑은 제 위치가 아닐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되는 흔적으로 바위 면에 네 개의 홈이 있는데 중국 석탑과 안강
정혜사지에 탑을 에워싼 전각 흔적이 남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석탑을 전각 속에 안치하는 유형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바위 면에 파져 있는 네 개의 홈이 현재는 없어졌거나 우리가 만나지 못한
석불을 안치하였던 전각의 주초석으로도 추정 할 수 있습니다
문경시 호계면 봉서리 봉서사지 옛 절터에 복원된 탑으로 양식상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됩니다.
호계면 봉서2리 밭가에 도굴 단에 의해 도괴된 채 방치되어 있던 것을 복원해
놓았다고 하는데 도굴된 사리함이 한일 양국 간의 문화재 반환 협정에
따라 반환되어 현재 국립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석탑에서 20m 떨어진 봉서리에 주민들의 예배 대상으로 안치된 2구의 불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1988년 2구의 불상이 모두 도난당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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