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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문경 갈평리 오층석탑을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3. 7. 28.

 

문경 갈평리 오층석탑을 찾아서

 

문경읍갈평리

갈평출장소에 있는

이탑은 갈평리가 아닌 북쪽

으로 2킬로미터 떨어진 관음리의

관음사에 있던 석탑을 일제 때 1936년

일본인이 일본으로 반출하기위하여 본래

지금의 위치에서 약 2㎞ 떨어진 관음리의

관음사지에 있었는데 1936년 당시 관음리

이장이 일인에게 매도하여 경성으로 옮겼던

것을 신도들이 되찾아 와서 현재 갈평출장소

앞마당에 옮겼다고하며 기단 하대석은 땅에

묻혀 있으며 1층 기단갑석의 일부 모서리가

깨어져 나갔으나 그위에 5층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의 4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있으며 탑신의 두꺼운 지붕돌은 윗면의

경사가 완만하고 밑면은 4단의 받침을

두었고 꼭대기에는 노반과 복발이

있으며 고려시대에 조성된 오층

석탑으로 높이는 2.7m입니다

= 문경 갈평리 오층석탑 =

 

이 탑은 문경갈평리오층석탑으로 경북 문경시 문경읍 갈평리 564-3에 있으며

1984년12월 29일 시도유형문화재 18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문경갈평리오층석탑은 문경읍 갈평리 갈평출장소에 있는 탑으로 원래는

갈평리가 아닌 북쪽 으로 2킬로미터 떨어진 관음리의 관음사에 있던

석탑을 일제 때 1936년 일본인이 일본으로 반출하기위하여  

 

 

지금의 위치에서 약 2㎞ 떨어진 관음리의 관음사지에 있었는데 1936년 당시

관음리 이장이 일인에게 매도하여 경성으로 옮겼던 것을 신도들이 되찾아

와서 현재 갈평출장소 앞마당에 옮겼다고 합니다 

 

문경 갈평리 오층석탑의 하대석은 땅에 묻혀 있으며 1층 기단갑석의 모서리가

깨어져 나갔으나 그위에 5층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의 4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조상되어 있습니다

 

 

탑신의 두꺼운 지붕돌은 윗면의 경사가 완만하고 밑면은 4단의 받침을

두었고 꼭대기에는 노반과 복발이 있으며 고려시대에 조성된

오층석탑으로 높이는 2.7m입니다

 

 

문경 갈평리 오층석탑의 옥개석 받침은 초층에서 4층까지는 4단이며, 5층은

3단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이 한돌로 되어 있으며, 그 이상은 남아 있지

않으며 노반도 옥신석과 마찬가지로 우주가 새겨져 있습니다.

 

   

문경갈평리오층석탑은 하대석 밑부분은 땅에 묻혀 있으며 1층 기단 갑석의

일부 모서리가 깨어져 나갔고 상륜부가 많이 파손되어

노반과 복발만이 남아 있습니다

 

 

오층석탑은 5층 옥개석이 두 조각으로 갈라져 있고 하대갑석도 두 조각으로

크게 갈라져 있으며 기단의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를 조상하였습니다

 

 

하대갑석에는 2단의 중석받침을 얕게 새겼으며 상대갑석에는 1단의 옥신받침을

새겼는데 단순하지만 뚜렷한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탑신부는 옥신의 형태가 사다리꼴을 이루고 있어 특이한데 초 층에서 5층까지의

옥신 모두 아래가 위보다 넓게 되어 있으며 우주도 역시 아래가

위보다 넓게 되어 있습니다.

   

문경갈평리오층석탑은 5층에서 초 층까지가 전체적으로 하나의 사다리꼴을

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를 보다 안정감 있게 보입니다.

 

문경갈평리오층석탑은 초층에서 2층의 체감율은 심한 반면 2층부터의 체감율은

약하며 옥개석 받침은 초층에서 4층까지는 4단이며 5층은 3단입니다

 

   

문경 갈평리 오층석탑의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이 한 돌로 되어 있으며

그 이상은 남아 있지 않고 노반에도 우주가 새겨져 있습니다. 

 

갈평리 5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한 관음사와 같이 축조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업없으며 1975년 2월 5일 지정문화재

이 외의 문화재 제 11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석탑은 약 5리 떨어진 동면 관음리 불당골이라고 부르는 산 중에 있던 것을 

1936년경 관음리 이장이 이를 매각하여 일부는 벌써 서울로 옮겨간 것을

 

갈평리 동민들이 다시 찾아와서 가장 안전하고 다시는 도난 당할 우려가 없다고

판단되는 현 현 위치인 주제소 구내에 복원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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