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과 삼층석탑을 찾아서
충주원평리
선조사지에는 삼층
석탑과 석불입상 1기가
나란히 서 있는데 현재 절터에는
삼층석탑.배례석. 석등.대석.간주석
등의 석물이 있으며 석불입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8각형의 갓을 쓰고 있는
거대한 석불로 360년 된 시무나무 아래 있는
석조여래입상은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석불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나란히 서 있는 삼층
석탑은 네모꼴의 자연석 위에 기단을 조성하고
기단 남북 면석에 우주를 표현하였으며 기단
면에는 세발 향로와 우주가 표현되었고 1층
탑신에는 네 면에 사자상이 새겨져 있으며
신라 법흥왕 때 창건한 선조사라는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병자호란 때 소실되었으며
이곳 마을 이름은 미륵댕이로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며
불상의 규모나 절터의 석조물로
볼 때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충주 원평리 선조사지에는 삼층석탑과 석불입상 1기가 나란히 서 있는데
절터에는 삼층석탑. 배례석. 석등. 대석. 간주석 등의 석물이 있습니다
석불입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8각형의 갓을 쓰고 있는 거대한 석불로
시무나무 아래 있는 석조여래입상은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석불입니다
삼층석탑은 자연석 위에 기단을 조성하고 기단 남북 면석에 우주를 표현하였으며
기단 면에는 세발 향로와 우주가 표현되었고 1층 탑신에는 네 면에
사자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신라 법흥왕 때 창건한 선조사라는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병자호란 때 소실되었으며
마을 이름은 미륵댕이로 불교와 관련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며 불상의 규모나
절터의 석조물로 볼 때 큰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석불입상은 충주시 원평리 108-1 에 있으며 석조여래입상은
충북 유형문화재 18호로 지정 등록된 문화재 입니다
석불입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8각형의 넓은 갓을 쓰고 서 있는 거대한
입석불로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묶음이 있습니다
석불입상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풍만한 얼굴로 어깨와 당당한 하체,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불상의 격을 높여 주고 있습니다.
석불입상은 고려시대 경기·충청 일대에서 유행하던 석불입상의 형식을 잘 따르고
있는 불상으로 조각수법이 뛰어나서 당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복련의 연꽃대좌 위에 8각형의 갓을 얹고 서 있는 석불입상으로 고려시대의
경기, 충청 일대에 유행하던 석불입상의 형식을 잘 따르고 있습니다.
8각형의 보개 아래로 큼직한 육계가 있고 머리는 소발이며 상호는
살이 쪄서 4각으로 보일 만큼의 풍만한 상입니다.
석불입상의 눈은 반개하였고 코와 입의 표현이 단정하여 근엄한 인상을 주고
있으나 턱 아래에 2중턱의 표현으로 후덕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석불입상의 양 귀는 길어서 어깨에 닿고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통견법의는 오른쪽에서 팔에 걸친 의단만 표시 되었습니다.
석불입상의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 앞에 들어 내장하고 왼손은 배꼽 앞부분에서
내장하였으며 연화대좌는 원형으로 윗면은 높고 괴임이 있습니다.
석불입상은 전체적으로는 개석 불신 대석의 3석으로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고
불상의 머리 위에 팔각형의 보개가 올려 져 있는 거불입니다.
복련이 새겨진 타원형의 자연석 위에 1단의 대를 올리고 그 위에 있으며
존안은 방형으로 위엄 있는 인상에 원만한 상호를 갖추었습니다.
법의는 양어깨를 감싼 통견으로 옷 주름은 팔을 타고 내려와 오른 손목을 감은
다음 아래로 흘러내리며 가슴 아래로 굵은 V자형 옷 주름이 있습니다.
발목 부위에는 홈을 파듯 거칠게 새긴 성근 수직선으로 군의 자락을 나타내었으며
끝단 사이로 양 발끝이 노출되어 있는데 오른발은 보수한 것 같습니다.
석불입상의 수인은 오른손은 손바닥을 안으로 하여 몸 앞에 대고
왼손은 앞쪽으로 비켜 내려 여원인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불상은 미륵불로 통일신라 말부터 미륵하생 신앙의 유행으로 조성된 거대한
규모의 여러 미륵존상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수인은 오른손은 들어서 가슴에 대고 왼손은 내려서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있으며
발 앞의 돌은 소원을 빌면서 문지르는 돌로서 민간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이곳이 신라 성덕왕 1년에 창건된 선조사라는 사찰터라고
하는데 현존 유물의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 말 고려 초엽이라고 추정합니다
앞으로 돌출된 양 발은 별도로 조각하여 끼웠던 것으로 보이며 봉로대 처럼
사용되고 있는 석물은 불상의 대좌나 석등의 부재로 추정됩니다
충주 원평리 삼층석탑은 석불입상의 옆에 위치해 있으며 자연석 위에
기단을 조성하였고, 기단의 남,북 면석에는 우주를 표현하였으며
가운데에는 세발향로를 새겨 넣었습니다
충주원평리삼층석탑의 갑석 상단에는 1단의 괴임대를 만들었으며 1층
탑신에는 우주가 표현되었고 각 면에는 부조상이 양각되었으나
심하게 마모되어 형태를 알 수 없습니다.
충주 원평리 삼층석탑은 1층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3단이고,
지붕 윗면에는 탑신 괴임이 있습니다.
충주 원평리 삼층석탑은 2층 탑신에도 우주가 표현되었고 3층의 옥개석은
없어졌으며 탑신석 위에 노반만이 남아있습니다.
원평리 삼층석탑은 탑신괴임을 새긴 점이나 옥개석 추녀의 표현 등 전체적인
모습으로 보아 신라석탑의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시대의 석탑입니다.
부정형의 자연석 위에 기단을 조성하였고, 기단의 남, 북 면석에는 우주를
표현하였으며 가운데에는 세발향로를 새겨 넣었습니다.
갑석 상단에는 1단의 괴임대를 만들었으며 1층 탑신에는 우주가 표현되었고
각 면에는 부조상이 양각되었으나 마모되어 형태를 알 수 없습니다.
충주 원평리 삼층석탑은 2층 탑신에도 우주가 표현되었고 3층의
옥개석은 없어졌으며 탑신석 위에 노반만이 남아있습니다.
탑신의 폭이 1m정도가 되는 규모의 탑으로 중간쯤 되는 규모이나 충주
중원지역의 석탑으로서는 꽤 큰 규모의 탑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특이하게도 기단의 2면에는 약 50cm 높이의 세발향로를 새겨 넣었는데
승탑이나 불대좌에 향로가 새겨진 예는 있으나 탑의 기단석에
새겨진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1층탑신에는 우주가 표현되었고 각 면에는 부조상이 양각되었으나 심하게
마모되어 형태를 쉽게 알아볼 수 없지만 문화재청의 자료에는 뒷발을 딛고
일어서 있는 사자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석탑에서 사리함의 수호신으로 사천왕상이나 팔부중상을 새기는 경우는 많아도
탑의 몸돌에 사자를 새기는 경우는드물다고 합니다
기단 면석에 부조로 조각된 향로가 있고 탑신에 사자가 새겨져 있는 특이한
형식으로 조성된 탑으로 3층의 옥개석은 없어졌으며
탑신석 위에 노반만 남아있습니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3단이며 추녀의 모습이 단아하고 상륜부에는 노반만
남아 있으며 3층 옥개석은 현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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