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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답사

호암 이병철 생가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3. 1. 11.

 

호암 이병철 생가를 찾아서

  

 

이병철 생가는

삼성의 창업자이자

우리나라 대표적 기업가인

호암 이병철선생이 태어난집으로

경남 의령 정곡면 중교리에 있는데

이병철선생의 조부께서 1851년에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었으며 호암선생은 유년

시절과 결혼하여 분가하기 전까지 이집에서

살았다고 하며 그 동안 몇차례의 증·개축을

거쳐 오늘의 모습으로 단장 되었다고 하는데

호암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 광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문채 형식은 솟을대문이고

집 뒤에 있는 바위의 모양이 마치 볏 가마를

쌓아 놓은 것 같다고도 하고 돈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 같이 보인다고 하여 관광객

들은 한 번식 이 바위를 안아보면 재물

복이 쏟아진다고 하는 속설이 있어

부자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부자 바위의 기를 받아

간다고 합니다

 

 

     

    湖巖 이병철 <1910 ~ 1987 >

 

이병철 생가는 삼성 그룹의 창업자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업가인

호암 이병철 선생이 태어나서 자란 집으로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 있는데 이병철 선생의 조부께서 1851년에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었다고 하며

 

호암선생은 유년 시절과 결혼하여 분가하기 전까지 이집에서 살았다고 하며

그 동안 몇 차례의 증·개축을 거쳐 오늘의 모습으로 되었다고 하는데

 

  호암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문채

형식은 솟을대문으로 좌우에 방이 2칸 있으며

 

  집 뒤에 있는 바위의 모양이 마치 볏 가마를 쌓아 놓은 것 같다고도 하고

돈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 같이 보인다고 하여

 

  관광객들은 한 번식 이 바위를 안아보면 재물 복이 쏟아진다고 하는 속설이

있어 부자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부자 바위의 기를 받아갑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노적봉(露積峯)

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혈(穴)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이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합니다.

 

  생가를 복원할 때 본채가 지어진 연대를 남기기 위해 대들보의 상량문

辛亥年(1851년) 癸巳月辛卯日乙未時立柱上樑을 옮겨 놓았다고 합니다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노적봉 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밭전(田)자 모양의 바위로 모인다는데 한 번 찾아 보세요 

 

바위의 모양이 마치 벼 가마를 쌓아 놓은 것 같아 재물이

모이는 명당이 되기도 했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부자의 기를 받아 보기 위해 방문객이 줄을 잇는다는데

부를 이룬 집안의 명당 터를 한 번 둘러보며 기분 전환하고 힘을 내어

어려움을 이겨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경남 의령에 소재하고 있는 호암생가는 삼성그룹의 창업자이자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끈 대표적 기업가인 호암 이병철 선생이 태어난 집입니다. 

 

1851년 호암선생의 조부께서 대지 면적 1,907㎡에 전통 한옥 양식으로

손수 지었으며, 호암선생은 유년시절과 결혼하여 분가하기

전까지의 시절을 이 집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일자형 평면 형태로 지어진 생가는 남서향의 평평한 땅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동안 몇 차례의 증·개축을 거쳐 은은하고 고고한

멋을 풍기는 오늘의 모습으로 단장되었다고 합니다.

 

  현재의 생가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담한

토담과 바위벽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구분되고, 주위로는 울창한

대숲이 조성되어 운치 있는 경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놓은 것 같은 노적봉(露積峯)

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혈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의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합니다.

 

  호암 이병철 선생은 1910년 1910년 2월 12일 대대로 유학을 숭상하는 선비 집안

이자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병철 회장은 어린시절 한학을

공부하였고 열한 살이 되던 해에 진주에 있는 지수보통학교를 거쳐

이듬해에 서울의 수송보통학교로 옮겨 수학 하였다고 합니다.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한 이래 삼성전자를 비롯한 많은 기업을

일으켜 국가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1961년에는 한국경제인

협회(현 전경련)를 발의하고 초대회장에 추대되었습니다.

 

  1965년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삼성

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우리의 정신적 자산을 풍족하게 하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였고, 1980년대에는 특유의 통찰력과 선견력으로 반도체산업에

진출하여, 우리나라 첨단산업의 발전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호암선생은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불모의

한국경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가경제발전을 선도하였습니다.

 

  호암선생은 성균관대학교 운영을 통한 인재육성을 비롯, 문화, 예술, 언론 등

사회 각 분야의 발전에 많은 업적과 교훈을 남겼습니다.

 

이병철 생가에는 처음 정미소 사업을 시작할 무렵 사용했던 집기들과

물품들이 아직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삼성그룹의 창업자로 잘 알려져 이병철 회장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관람객들로

주말이면 조용한 시골 동네가 활기 넘친다고 합니다

 

호암 가문이 중교리에 터를 잡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510여년 전 연산군

시대에 16대조가 식솔을 이끌고 낙향하면서 부터라고 합니다.

 

  생가는 고 이병철 회장의 조부인 문산 이홍석 공이 직접 지었다고 하며 안채의

지붕마루에 수평으로 걸린 종도리 하단부에는 신해년 계사월 신묘일 입주상향

이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1851년부터 집을 짓고 살았다는 뜻입니다

 

건물은 깨끗하고 단아하게 보전돼 있는데 본채와 사랑채는 몇 차례

증ㆍ개축을 거쳤는데 국내 최고 대목수인 신응수 씨가

최초 형태로 복원해 놨다고 합니다.

 

  이 회장은 안채의 우측 방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1910년 2월12일. 조선조

연기로는 융희(隆熙) 4년으로 경주 이 씨인 술산 이찬우 공과

안동권씨 모친 사이의 4남매 중 막내였다고 합니다.

 

  유년시절은 5세 때부터 한학을 공부했으며 집에서 3~4리 정도 떨어진 문산정을

오가며 천자문을 익히고 논어를 통독했다고 하는데 문산정은 성리학자로

인근에 명망이 높았던 조부 이홍석 공이 만년에 지은 서당입니다.

 

  이 회장 가문은 연 3000석 지기의 의령지역 유지였으며 생가 자체는 그리 넓지

않지만 좌우에 있는 이 회장의 큰 할아버지 댁과 작은 할아버지 댁,

거기에 이 회장이 분가한 집 까지 합하면 마을의 거의 절반이

이씨 가문의 집이라고 합니다

 

  이 회장의 어머니는 후덕하고 인자한 인물로 인정이 많고 세심해서 출산한

집에는 쌀 닷되 미역 한단을 반드시 보냈고, 친상을 당한 집에는

삼배와 광목을 수십년 동안 보내왔다고 합니다.

 

  생가에 있는 사랑채 앞의 우물에 인근에 우물이 없는 집 사람들이나

지나던 사람이 누구나 와서 물을 길어가곤 했다고 합니다

 

  이 회장이 창업 직전에 고향으로 돌아와 집에서 거느리고 있던 노비들의

신분을 해방시켜준 일이나, 제일모직 건립과 함께 최신식 설비로

여공 기숙사를 건설한 일,

 

국내최고 수준의 문화재단을 건립해 어려운 예술인들을 돕고 나눔 경영에

앞장선 것은 이 같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호암, 삼성을 쓰고 싶어 한 가게도 두어군데 있었지만 그래도 호암선생이나

삼성에 폐를 끼치지 말자는 상인들의 합의로 부자로 통일했다고 합니다

 

  대구를 중심으로 1938년 삼성상회를 설립하여 삼성물산,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을 치밀한 재정과 인사 관리로 오늘날의 삼성그룹을 창업하신 분으로

세계최고 경영인상을 수상하셨으며 한국산업 발전에

기여한 고로가 지대하신 분입니다

 

기를 받고 부자되는 특허받은 저금통을

판다는 가게가 있습니다

 

중교리에는 간판이 부자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입간판들이 많은데

대부분의 상점의 상호가 부자가 들어가고 있는데

부자한우촌에서 소고기 국밥을 먹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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