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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함양 마천의 서암정사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2. 10. 4.

 

 

함양 마천의 서암정사를 찾아서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있는 서암정사는

서암은 서쪽에 있는 큰 바위이고,

정사란 신앙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들이

머무는곳으로 서쪽 큰바위에 있는 수행처

라는 뜻으로 서암정사란 상서로운 큰바위에

있는 수행처 라는 의미인데  서암정사는 원응

구한대사의 원력으로 창건된 사찰로  해인사의

말사인 벽송사의 부속암자였으나 지금은 독립된

사찰로 자연의 섭리가 빚어낸 신성한 곳에 30

년전 불사를 시작하여  여러 사람들의 공덕으로

오늘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고 하는데 전쟁의

참화로 지리산에서 생을 다한 무수한 원혼들의

마음의 상처를 달래주고  남북간 대립의 벽을

허물고  모든 인류가  부처님의 대자비 광명

안에서 평화로운 이상 사회가 실현 되기를

발원하며, 부처님을 조성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서암정사는 국내에 유일한

석굴법당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지리산 서암정사입니다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있는 서암정사는 서암은 서쪽에 있는 큰 바위이고,

정사란 신앙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으로

 

 

서쪽 큰 바위에 있는 수행처 라는 뜻으로 서암정사란 상서로운 큰 바위에 있는

수행처 라는 의미인데 서암정사는 원응 구한대사의 원력으로 창건된 사찰로

 

 

서암정사는 해인사의 말사인 벽송사의 부속 암자였으나 지금은 독립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지리산 서암정사 라는 정식 사찰명이 있습니다

 

 

서암정사는 자연의 섭리가 빚어낸 신성한 곳에 30 여년 전에 불사를 시작하여

여러 사람들의 공덕으로 오늘날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암정사는 6.25 전쟁의 참화로 지리산에서 희생된 무수한 원혼들의

마음의 상처를 달래고 남북 간 대립의 벽을 허물고

 

 

모든 인류가 부처님의 대자비 광명 안에서 평화로운 이상사회가 실현되기를

발원하며, 부처님을 조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암정사는 국내에 유일한 석굴법당으로 해동 삼대명산 중에 하나인 지리산의

큰 줄기위에 세워진 대한불교 조계종 지리산 서암정사 입니다

 

 

서암정사는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민족의 비극이 유난히도 치열하고 깊었던

지리산, 1960년경 전화가 지나간 지 한참 뒤이지만 산간오지산골인

벽송사 주변에는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대자연의 섭리가 인연에 사로잡인 인간들의 희비에 개의치 않는 듯 한때 천지를

진동하던 총성과 온 산을 뒤덮었을 포연의 폭풍이 휩쓸었을 이곳에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는 듯 산새가 지저귀고 봄이 오니 꽃이 핍니다.

 

 

오늘날 서암정사가 있게 된 것도 역시 억겁의 인연과 대자연이 빚어낸 조화의

한 그림자가 아닌가? 문득 지난 일을 회상하니, 벌써 40여 년 전입니다.

 

 

내 어느 날 복잡한 부산을 뒤로하고 청산에 파묻힐 양으로 심산유곡의 수행처를

찾아 정처 없이 흰구름 따라 발길 닿는 대로 온 곳이 여기 벽송사입니다.

 

 

인적도 드물어 한적한 산사 벽송사, 때로는 감자를 심어 끼니를 때우고 몸소

흙더미를 치워가며 이어지는 수행생활은 고달프기 그지 없었습니다.

 

 

너무 힘 들고 갈등도 많아 여기를 떠나버릴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였지만

그때마다 비가 새는 법당에 탈 금이 다 되어 새까만 모습으로

초라하게 앉아 계신 부처님을 들여다보며...

 

 

망설이기를 거듭하면서 그럭저럭 눌러앉아 여기가 또한 나와의 인연지 려니

여기고 폐허를 수습하다 보니 어언 10여 성상이 훌쩍 지나 버렸습니다.

 

 

구석구석 묵은 쑥대가 나부끼는 1970년대 초의 어느 포근한 봄날 오후, 선정에서

일어나 조용히 경내를 거닐면서 한 발짝 한 발짝 잊혀저 가는 옛길을 따라

알 수 없는 무슨 기운에 이끌리듯 오다 멈춘 곳이 서암정사 터입니다.

 

 

이곳이 만년도량의 성지임을 확신하고 산승이 도량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던

중 사람이 일부러 깍아 놓은 듯 한 거암, 즉 지금의 석굴법당 전면에

다다른 순간 몸과 시선이 굳어진 듯 멈추었습니다.

 

   

"여기로구나, ! 좋구나...." 조용히 눈을 감고

부처님의 영산회상, 그리고 아미타상을 상상했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한없이 기도하면서 염원의 심층에서 떠오르는 어떤 영상을

느끼니 아미타불의 세계가 바로 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의 참화로 이 주변 지리산에서 희생된 무수한 원혼들의 마음의 상처를 달래고

남북으로 첨예한 대립의 벽을 허물며, 모든 인류가 부처님의 대자비 광명 안에서

평화로운 이상사회가 실현되기를 발원하면서 부처님을 조성하게 된 것입니다.

 

 

서암정사는 대자연의 섭리가 빚어낸 조화로 준비된 장소에 여러 사람들의 크고

작은 공덕이 보태지면서 비로소 오늘날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암정사는 30여년 전 불사를 시작한 이래 적지 않은 난관과 고초를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사찰을 조성할 수 있었던 것은 불보살의 덕분이라고 합니다

 

 

석굴법당의 아미타 본존불은 이승재 석공이 했고, 본존불 외에 석굴법당의

부조는 홍덕회 석공이 조각했으며 맹갑옥 석공이 조역을 했다고 합니다.

  

 

최고봉인 천왕봉이 좌우로 뻗어 내려 모든 기운이 이곳에서 멈추니, 먼 옛부터 이곳을

상서로운 기운이 깃든 큰 바위가 많은 곳 이라 하여 서암동 이라 불렀습니다.

 

 

서암정사는 국내에 유일한 석굴법당이며 석굴법당 안에는 부처님상과 제불

보살상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없는 불교에 관한 많은 조각상들이

굴 내부를 장엄하고 있습니다

 

 

10대제자상 나한상 신장단상 타방세계 염라국 등 석굴내부는 모두 정교하고

보기드믄 불보살상 들로 장엄되어 있어서 보시는 분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는 석굴법당입니다 

 

 

서암정사 대웅전은 상량식을 마치고 이제

남은 공사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서암정사 입구에 들어서면 3미터 가량 되는 화강암 두 기둥에 많은 강과

하천도 바다로 들어가면 한 맛이듯 삼라만상도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결국 하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摩河大法王(마하대법왕) 거룩하고 위대하신 부처님께서는

調御三千界(조어삼천계) 온세상을 조화롭게 이끄시도다.

 

일주문'을 지나면 오른쪽 바위에 사천왕상이 새겨져있는데 석굴암 사천왕상을

참고하여 조각했다고 하는데 자연바위에 일렬로 조각하였습니다 

 

恒住寂滅殿(항주적멸전) 한상 적멸의 전각에 머물며

常放大光明(상방대광명) 쉼없이 빛을 발하는구나.

 

 

동굴처럼 만들어진 대화엄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인 대방광문에 들어서기

전에 어서 오라 중생이여 이곳이 네가 편히 쉴 곳이니라

(善來衆生 此處安樂) 라며 동자상이 반기고 있습니다.

 

 

극락전은 안양문으로 들어가서 극락전이라는 편액이 새겨진 곳으로 나오게 되어

있는 석굴로 좌측이 극락전 우측이 안양문이며 석굴내부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念念彌陀佛(염념미타불) 아미타불을 생각하고 떠 생각하면

步步安養國(보보안양국) 걸음걸음이 극락세계이어라

 

 

비로궁을 지나면 넓은 화엄의 세계로 불보살 신장들은 모두 바위에 새겼는데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모신 석굴법당인 극락전 안 여덟보살과 십대제자,

십장생 동식물 등 극락세계가 조각되어있고 비로전의 비로자나불과

문수 보현보살, 법을 구하는 선재동자도 모두 바위에 새겼습니다.

 

대방광문(大方廣門)이란 크고 넓은 문이라는 뜻으로 화엄세계, 즉 비로자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으로 아집과 이기심을 버리고 마음을 활짝 열고

부처님의 마음으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動靜一源(동정일원) 움직임과 고요함이 둘이 아니며

往復無際(왕복무제) 가고 옴이 또한 둘이 아니다.

 

 

서암정사의 불상들은 오래된 불상은 아니지만 자연 암반에 석공들이 공 들여

조각한 것으로 종교적이나 예술적인 면에서 우수한 작품들입니다 

 

범종각에 대하여

 

범종각은 범종을 달아 놓는 보호각으로 범종 외에 법고, 운판, 목어 등의 '불전

사물을 두어 조석예불 때 법고, 운판, 목어, 범종의 순서로 치게 됩니다.

 

법고는 법을 전하는 북이라는 뜻으로 불변의 진리로 중생의 마음을 울려 일심을

깨우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쇠가죽으로 만드는데 땅에 사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하여 친다고 합니다.

 

 

운판은 청동 또는 철로 만든 넓은 판으로 원래 중국의 선종사찰에서 부엌이나

재당에 달아 놓고 대중에게 끼니 때를 알리기 위해 쳤다고 하나 차츰 불전

사물로 바뀌었다고 하며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헤매며 떠도는 영혼을 천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목어는 나무로 물고기 모양을 만들고 배 부분을 파내어 나무막대기로 두드려

소리를 내는 의식 용구로 물 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난이 부처님의 설법을 전하기 위하여 사람을 모을 때 건치라는 악기를 친 것이

발전한 것이 범종으로 욕계 6. 색계 18. 무색계 4천 등 모두 28천을 상징

하여 28번을 타종하며 하늘나라 대중에게 부처님의 도량으로 모이라는

신호이며 고통 받는 중생의 제도를 염원하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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