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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답사

포항 기북의 덕동 문화마을을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2. 8. 12.

 

 

포항 기북의 덕동 문화마을을 찾아서

 

 

경북 포항시

북구 기북면 오덕1

덕동마을은 제4호 기록마을로

조선후기 문중 사당을 이해하는데

사료적 가치가 있는 여주 이씨 가문의

세덕사 관련 자료를 비롯하여 마을의 사회

경제적 이면상을 이해할 수 있는 18세기 고문서

등을 소장하고 있으며 용계천 바위 벼랑에 세워진

용계정, 2006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덕동마을 숲과 오래된 가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애은당고택, 사우정고택 등의 고택으로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보다 규모는 작지만 전통미가

살아 있는 숨겨진 전통마을로 덕동마을은 양동마을에

사시던 사의당 이강 공이 거처를 정하면서 세거지를

이루게 되었다고 하는데 용계정과 덕동숲은 임진

왜란 때 북평사를 지낸 정문부의 별장과 마을

수구막이 숲으로 조성된 덕동숲과 자연계류

등이 잘 어우러진 명승지로 용계정은 별장,

사은정은 살림집, 애은당은 식솔들의

피난처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 4호 기록 사랑 마을 =

 

 

 

경상북도 포항시 기북면 오덕1. 이곳은 예부터 덕()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해서 덕동(德洞)마을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고 합니다

 

경북 포항시 북구 기북면 오덕1리에 있는 덕동마을은 제4호 기록마을로 조선후기

문중 사당을 이해하는 사료적 가치가 있는 여주 이씨 가문의 세덕사 관련

자료를 비롯하여 마을의 사회경제적 이면 상을 이해할 수 있는

18세기 고문서 등을 소장하고 있는 문사의 마을입니다 

 

 

덕동마을은 용계천 바위 벼랑에 세워진 용계정, 오래된 가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애은당 고택, 사우정 고택 등의 고택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

보다 규모는 작지만 전통미가 살아 있는 숨겨진 전통마을입니다

 

 

덕동마을은 양동마을에 살던 사의당 이강 공이 거처를 정하면서 세거지를 이루게

되었는데 용계정과 덕동 숲은 임진왜란 때 북평사를 지낸 정문부의 별장과

마을 수구막이 숲으로 조성된 숲과 자연계류가 잘 어우러진 명승지입니다

 

 

덕동마을에 있는 고택들 중에 용계정은 별장으로, 사은정은 살림집으로,

애은당은 식솔들의 피난처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덕동마을 수구막이 숲으로 조성된 덕동 숲은 2006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숲으로 덕동마을이

4호 기록사랑마을로 지정 되었습니다

 

 

포항 덕동마을은 1911년도에 측량한 마을 임야도면과 200여년 이전에 생산되었다고

추정되는 호적단자를 비롯해 송계 숲과 세덕사의 역사를 나타내는

중요한 마을기록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밖에도 과거 마을의 생활상을 보여주는1000 여점

가량의 유물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원장 송귀근)과 경북도는 민간 기록문화 의식을

제고하기 위해 지정하는 기록사랑마을 제4호로 덕동마을을 지정하였습니다

 

 

 이번에 기록마을로 지정된 덕동마을은 조선후기 문중 사당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사료적 가치가 있는 여주 이씨 가문의 세덕사 관련 자료를 비롯해 마을의 사회

경제적 이면 상을 이해할 수 있는 18세기 고문서 등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덕동문화마을은 용계천 바위 벼랑에 세워진 용계정, 2006년 아름다운 숲 전국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덕동마을 숲, 오래된 가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애은당 고택, 사우정고택 등이 있어 경관을 자랑하는 문화마을입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은 누구나 다 알게 된 한국의 전통

민속마을이지만 덕동문화마을도 규모는 작지만 그에 못지않은 전통미가

살아 있는 숨겨진 또 하나의 전통마을이 있습니다.

 

 

경북 포항시 기북면 오덕리 덕동마을. 덕동마을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자가 최근 발간되었는데 이동진(80) 덕동민속전시관장이 쓴

'덕동-400년 선비의 덕이 숨쉰다'라는 책자 입니다.

 

 

여기에는 덕동마을의 유래에서부터 인문·환경적 지리, 문화유적 등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덕동마을의 다양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고 하는데

덕동의 세시풍속과 의례와 함께 조국근대화에 기여한 덕동마을

사람들의 노력도 소개돼 있다고 합니다

 

 

덕동마을은 양동마을에 살던 사의당 이강(1621~1688)공이 거처를 정하면서

세거지를 이루게 됐다고 하는데 이강 공은 오늘의 양동마을이 있게 한

회재 이언적 선생의 동생인 농재 이언괄 선생의 현손입니다

 

 

여강 이씨의 세거지가 된 덕동마을은 많은 유학자들을 배출하면서 우리 전통

문화에 한 획을 긋게 됐다고 하는데 이를 반영하듯 이곳에는 경북도 유형

문화재 제243호인 용계정 등 많은 유산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덕동문화마을에는 '삼기(三奇)', '구곡(九曲)', '팔경(八景)'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명승지가 널려 있습니다.

 

 

오덕리 일대는 전통문화마을로 지정 전통 숲 복원이 되었는데 덕동문화마을에는

용이 머문다 하여 용방, 용계라 하며 조선 중기 정문부 의사가 굽이치는

언덕 위에 시인 묵객들이 머물게 용계정 이라는 정자를 세웠습니다 

 

 

용계정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43호로 계곡과 조화를 이루며 덕동문화

마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문화재이며 조선 중기 정문부 의사가 시인

묵객들이 머물면서 풍월을 즐길 수 있도록 세워진 정자입니다

 

 

용계정은 조선 명종 1(1546)에 세워진 건물로 임진왜란 당시 북평사를 지낸

농포 정문부 선생의 별장으로 숙종 12(1686)에 다시 크게 지었다고 합니다

 

 

용계정은 정조 이후에는 세덕사의 강당으로 사용되었으며 고종 5(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의 화를 면하기 위해 밤새도록 담을 쌓아 세덕사만

철폐되었으며 전면 5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으로 되어있습니다

 

 

용계정 건물 앞쪽에는 기이하게 생긴 절벽이 있으며, 수백 년 된 은행나무와

향나무, 백일홍 등이 용계정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덕동마을 용계정에서 바라보는 용천 건너편 바위 언덕에 새겨놓은 글씨는

연어대 라고 솔개 연, 물고기어 자를 써서 연어대라고 합니다 

 

 

용계정 주변 덕동초등학교 서쪽에는 다수의 기와편이 확인되고 있으며

이곳에서 출토된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용계정 뒷편에 있습니다.

 

 

  용계정 뒤편에 위치해 있는 석조 비로자나불은 주변 덕인사지에서

 출토된 것을 이 곳으로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석조비로자나불 좌상은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한 편으로 수인은

지권인을 취한 비로자나불로 마멸된 광배를 갖추었습니다 

 

 

덕동마을은 유서깊은 곳이고 용계정은 도지정

유형문화재제243호로 지정되었으며

 

이 다리가 용계정으로 통한는 통허교 입니다.

 

용계정은 경관이 수려한 암벽위에 지어졌고 앞으로는 계천이 흐르고 있으며

담밖에는 긴 역사를 말해 주듯 오래된 빼롱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용계정에서 북쪽문으로 나가면 합류천으로 용이 머문다 하여 용 방,

용계라 하며 정계 숲과 연못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합류천을 벗어나면 오른쪽으로는 늠늠하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 군락지이고,

나무마다 주민들이 이름표가 붙여있는데 그 나무의 관리자라고 합니다

 

 

정계 숲 왼쪽에 있는 연못에는 다양한 수생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는데

연못가에 있는 바위가 구령대바위 라고 합니다.

 

 

표지석으로 보아 1930년경 덕동 사설학당 이었고 이 연못이 운동장이었다고

하며 바위가 구령대로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1950년도에 폐교되었습니다

 

 

 

이 연못이 호산지당 이라고 하는데

 

덕동마을은 산세가 강하고 물이 적어서 인물이 배출되지 않아

물을 가두어 두어야만 주위의 경관도 살리고 우수한 인재를

배출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회화나무 밑에는 회정이라는 우물이 있는데

350여년 전 마을의 50여세대가

 

물동이를 이용하여 생활의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이라고 하는데

 

이 회화나무의 수령으로 보아 오래된 우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호산지당(호산지당)

상강수약축사지(山强水弱築斯池) 산이 강하고 물은 적어서 못을 만드니

동학풍광부유기(洞壑風光復有奇) 동리의 경치가 다시 또 기이하구나!

적제경영성숙지(積歲經營成宿志) 오랜 세월 경영한 뜻을 이루니

장래여경야응기(將來餘慶也應期) 장래 남은 경사를 또한 기약하리라

 

국가기록원의 기록사랑마을1호는 강원도 정선군 조동8, 2호는 경기도

파주시 파주마을, 3호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성리라고 합니다.

 

덕동마을은 여강 이씨의 집성촌이 살아 온 곳으로 신라 때부터 죽장부곡,

성법이부곡으로 철을 채굴 정제하던 하옥계곡으로 가는 입구입니다

 

덕동마을은 천혜의 자연조건과 독특한 문화를 높이 평가 받아서 1992년 문화부가

지정한 문화마을이 되었고, 2001년에는 환경 친화마을로 지정받았습니다 

 

회재 이언적의 동생 이괄은 형인 회재 이언적이 관계에 나가면서

어머니 봉양을 위해 이곳에 눌러 앉아 자손 대대로 덕동마을을

문사의 마을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용계정의 낭간으로 낭떨어지가 있어서 추락사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낭간입니다

 

 

덕동문화마을은 자금산 남쪽 산기슭에 형성된 유서깊은 마을로

신라때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제철과 연관된 철물기구와 무기생산 공장들이 있었던 곳으로 이강 호()

사의당(四宜堂)후손이 300여년 집성촌으로 살고 있습니다.

 

덕동은 덕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 이란 뜻으로 불리어진 이름으로

우리 고유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문화마을입니다

 

용계정은 경관이 수려한 벼랑 암벽위에 계천을 굽어볼 수 있도록 세워진 정루(亭樓)

1687(숙종 14)에 세우고 그 정각 이름을 사의라 했으니

사게절 변함없는 만상의 조화를 뜻한다고 합니다

 

세덕사는 고종 5(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의 화를 면하기 위해 밤새도록

용계정외부에 담을 쌓아 세덕사만 철폐되었다고 하는 세덕사지 입니다

 

세덕사지는 용계정 바로 윗쪽에 있는데 세덕사는 간 곳이 없고

빈 터 위에는 고목 몇 그루가 사지를 지키고 있을 뿐 입니다  

 

세덕사지에 있는 향나무 인데 와 향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오래된 향나무도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늙어서 누어 있는 향나무인가 봅니다

 

수령이 400년 이상된 은행나무가 세덕사지를 지키고 서 있는데

이 은행나무도 나이는 피해 갈 수 없는 건가 온 몸에

닝겔주사를 맞고 있는 오래된 보호수 입니다 

 

용계정에서 가장 가까운 오덕동 애은당 고택은 경상북도 민속자료

80호로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운 농포 정문부(15651624)

가족들의 피난처로 사용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애은당은 전쟁 후 고향인 전주로 돌아가면서 손녀사위인 이강에게 주었는데,

현 소유주의 5대조가 사들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애은당은 거북 모양의 땅 위에 거북 모양으로 건물을 배치하였으며

 

거북의 앞발에 해당하는 곳에 별당과 방앗간을 두었고,

 

머리 부분에 속하는 앞면에는 누에를 치던

잠실을 두었다고 합니다 

 

 

사우정 고택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81호로 지정되었으며 사우정은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운 농포 정문부의 할아버지인 정언각이

청송 부사로 있을 때 지은 건물 이라고 합니다.

 

   

사우정을 지을 때의 지명을 송을 곡이라 불렀는데, 임진왜란 때 송() 자가 든

지명에서 왜병이 패한다는 소문이 있어 이곳을 피난처로 삼았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인 진주로 돌아가면서 정문부의 손녀 사위인 이강에게

이 집을 주어 물려오고 있다고 하는데 그 후손인 이헌만이 자신의 호를

따서 사우정 이라고 집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사우정은 - 자형의 사랑채와 ᄃ자형의 안채가 있으며,

안채 오른쪽 모퉁이에 사당터가 있습니다

 

덕동문화마을에는 덕동 민속전시관이 있는데, 토요일과 일요일만 관람이 가능

하며 오전 10시에서 오후 17(5)까지입니다

 

 만약 평일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은 전화 010-3007-5327

하면 된다고 합니다   

 

덕동문화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용계정

옆에 세워진 민속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 우리나라에서 단 2개만

보존돼 있다는 독(과학 단지)이 있습니다

 

 

덕동마을은 조선의 대유학자인 회재 이언적의 동생 용재 이언괄의 4대손인

이강이 경주 양동마을에서 50리 떨어진 이곳에 거처를 정하고 360 여년간

대를 이어 살면서 여강 이씨 집성촌이 됐다고 합니다

 

  덕동마을 입구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안내판 입니다

1번이 용계정 건물이고 2번이 애은당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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