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취산 흥국사를 찾아서
영취산 흥국사는
조계종화엄사의 말사로
고려후기 보조국사지눌이 창건
하였다고하는 사찰로 국리민복을 위해
면벽관심과 심신연마에 적합한 성지를 택해
이곳에 가람을 건립하였다고하는데 불법이 크게
일어날 도량이 될것이니 절을짓고 이름을 흥국사라
하였으며 이절이 잘 되면 나라가 잘 되고 나라가 잘
되면 이 절도 잘 될 것이라고 하면서 국가와 사찰이
둘이 아닌 공동운명체임을 강조한 사찰로, 문화재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 대웅전영산회상도, 괘불탱화.
원통전 관음탱화, 응진전 16나한 탱화, 홍교가 있고.
흥국사는 도 문화재 자료 이고 흥국사 관세음보살
탱화는 지방 유형문화재이며, 원통전은 지방 유형
문화재로 많은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대웅전
문고리는 한 번 잡기만 해도 축생· 아귀· 지옥을
면한다고 합니다. 흥국사는 변방의 국찰로
불법 보다는 호국 불교의 사찰입니다
==== 여수시 영취산 흥국사 ===
영취산 흥국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로 고려 후기 보조국사 지눌이 여수시 중흥동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입니다
흥국사의 창건 배경은 흥국사사적의 국사(보조국사 지눌)가 국리민복을
위해 면벽 관심 및 심신 연마에 적합한 성지를 택해 가람을 건립
하려고 ... 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흥국사는 나라의 흥륭을 기원하는 사찰이라는 이름은 불법이 크게
일어날 도량이 될 것이니, 절을 짓고 이름을 흥국사라고 하라.
이 절이 잘 되면 나라가 잘 되고, 나라가 잘 되면 이 절도
잘 될 것이다”라고 언급하면서, 국가와 사찰이 둘이
아닌 공동 운명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흥국사 일주문을 지나기 전에 있는 홍교는 보물 제563호로 다리
길이가 40m, 너비는 3.45m, 높이가 5.5m 로 현재까지 알려진
홍예 형 돌다리로서는 가장 높고 긴 것이라고 합니다
이 다리의 건립에 관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순천 선암사 승선교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흥국사에서 흘러내리는 개곡의 암석 위에 편단석을 놓고 그 위에
같은 모양의 화강석 86개 석재를 중첩시켜 홍예를 구성하고,
양측 벽은 자연석을 쌓아 긴 노면을 이루었습니다.
홍예의 중심에 있는 머릿돌은 용머리 모양을 새겨 돌출 시켰으며
마치 용이 다리 밑을 굽어보고 있는 듯 한 모습입니다
홍교는 1981년에 폭우로 일부가 붕괴된 것을 다시 복구하였으며
받침이 없이 한 칸의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이 홍예다리는
한국 곡선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아름다움이라고 합니다
이 다리를 밟고 건너면 무병장수한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천장에 용두가 있고. 홍예 가운데 마룻 돌 에도 귀면이 있는데
이것은 재앙이나 잡귀를 물리쳐 불국토를 지킨다고 합니다
흥국사 부도 밭에는 12기의 조선시대 부도가 있는데 석종 형 부도로
12기가 줄지어 있으며 부도 지붕돌에는 각종 얼굴 표정이 새겨진
조각과 저마다 특징적인 조각들이 조각되어 있다고 합니다
흥국사가 두 번에 걸친 중창불사 경위와 그 과정을 기록한
비석으로 비문 내용은 창건자 지눌과 무의자 와의 관계와
송광사가 세워진 직후에 흥국사가 창건되었다는 것과
사찰건물 1천여간이 증축되었다는 것, 통일의 법당 개축사실 등
흥국사의 사적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수비 뒷면에는 정동호가 지은 발문을 문세욱 이 썼는데,
그 주요 내용은 흥국사의 창사와 중건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 대한 기록으로
보조국사가 흥국사를 창건한 이래 임진왜란을 겪으며 약 470년 동안
중건한 승려들을 높이 평가한 내용이 있으며. 중건과정에서 협조한
김덕항 을 비롯하여 약 140명의 명단이 적혀 있고.
중건과정에 도움을 준 지방관과 중앙정계의 인물, 관련 승려, 여성을
포함한 신도와 석공들의 명단까지 기록되어 있어서 당시 중수비의
건립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 라고 합니다.
흥국사 중수 사적비는 1703년 최창대가 비문을 짓고 명필 이진휴가
글씨를 썼다고 하는데 귀부와 이수를 갖추고 있습니다
흥국사 중수 사적비를 지나서 사천왕이 있는 천왕문으로
들어가는 다리 입니다 급한 전화를 하고 있는 가 봅니다
천왕문과 사천왕상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흥국사 사천왕
중수 개채기에 1805년에 다 허물어진 천왕문을 보수하기 위해 벽파,
용운, 영월, 등이 하주를 하여 보수를 했다는 내용이
기문에 전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되었으리라고 추정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사천왕의 유래와 당시 불사에 동참한 흥국사
대중들의 명단이 기록된 기문도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법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한 겹처마의 당우인데
선당 수습상량기에 1624년 계특대사가 흥국사를 복원한 후 옥청
스님이 법왕문을 세웠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흥국사 법왕문의 특징은 아무런 경배 대상이 놓여 지지 않고
비어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 특이하며 법왕문은 해탈문 이나
불이문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법왕은 부처님의 다른 이름으로 흥국사의 가람 배치에서 가장
특이한 점으로 전체의 건물들 중에서 가장 중앙에 놓여 있으며
대웅전 영역과 봉황루 영역을 구분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대웅전은 1624년 계특대사가 절을 고쳐 세울 때 다시 지은 건물로
석가 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흥국사의 중심법당입니다
이곳 대웅전(보물 제396호)은 해남 미황사 대웅전처럼
반야용선의 의미를 그대로 살리고 있는 건물입니다.
한 번 잡기만 해도 불가에서 말하는 삼악도(축생, 아귀, 지옥)를 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1624년 대웅전을 지을 때 편수로
참여한 마흔 한 분의 승려들이 천일기도를 하면서 누구든지
이 문고리 잡는 중생들이 삼악도를 면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원력을 세웠다 한다고 합니다.
한 번 잡기만 해도 삼악도(축생·아귀·지옥)를 면한다는 흥국사
대웅전 문고리를 붙들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에 그 문고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들였을 것인가?
대웅전이 반야용선을 상징하므로 그 기단은 바다를 상징해서
거북, 게, 해조, 석등, 기단의 거북 등을 조각하고
대웅전의 정면 계단 양측 기단에는 용을 조각하여
반야용선을 호위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대웅전 계단 소맷돌에도 용두가 있고 머리를 세우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듯 한 모습은 반야용선의 뱃머리를 상징 하며 대웅전 앞쪽 축대의
양 모서리에도 돌로 새긴 자라와 토끼, 게 등이 있습니다
법당 앞 석등도 거북이 등 위에 올라 있는데 무거운 석등을 지고도,
생색을 낼 생각도 무겁다고 엄살을 부릴 생각도 전혀 없는 듯 한
어수룩한 그 얼굴 표정이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반야용선은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가는 상상의 배로
법당 앞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용두를 비롯하여 반야용선의 의미를 담은
바다 속 불국정토를 상징하는 것들이 많이 조각되어 있어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 처럼 자세하게 찾아 보아야 합니다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하여 좌우에 협시보살을 모셨는데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바닥은 모두 우물마루를 짜고 불상이 앉아있는
자리를 엄숙하게 꾸민 닫집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대웅전은 석가 삼존불을 모시는 절의 중심법당으로 법화경 사상을
배경으로 조성된 사찰에서는 석가모니를 대웅세존으로 지칭하고
이 석가모니를 봉안한 전각을 대웅전이라고 합니다
석가삼존을 봉안한 불단의 후벽에는 토벽에다 한지를 바른 후
백의관음반가사유상을 그려서 모셔 놓았습니다
관음벽화의 조성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대웅전이 1690년에
건립되고 후불탱화가 1693년에 괘불탱화가 1759년에 완성되었다고
하므로 1760년 이후에 작품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1780년에 쓰여진 선당수습상양기에 전행팔도도승통가선육만 이라는
기록이 나오므로 이 그림의 시주자인 승려 육순과 사형사제의
관계로 본다는 추정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관음벽화는 바다 가운데서 관세음보살이 연꽃좌대에 반가부좌를 하고
있는 모습인데 관을 쓰고 푸른 연꽃 위에 왼발을 내리고 반가부좌한
상태로 오른 쪽으로 비스듬히 남순동자를 바라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백의관음반가사유상 입니다
대웅전 천정은 우물천장으로 꾸며서 석가불상을 모신
조산시대의 수 많은 대웅전 가운데서 유난히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대웅전 삼존불 뒤에 있는 백의관음반가사유상 과 마주하고
있는 탱화입니다 백의관음반가사유상의 아름다움에
가려져서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웅전 삼존불 뒤에 있는 백의관음반가사유상 과
마주하고 있는 또 다른 탱화입니다
흥국사 무사전에 봉안되어 있는 지장보살 삼존을 비롯하여 시왕,
권속일괄은 1648년 (인조 26년)에 수조 각승 인균을 비롯한
12명의 조각승들이 참여하여 조성한 작품들이라고 합니다
자장보살상은 동그란 얼굴에 살이 적당히 올랐으며
짧게 치켜올린 눈이 인상적입니다
사왕과 권속상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개성적인 특성과 역할을 다양한
표현력과 연출력으로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조각들은 17세기의 불상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자장보살삼존을
비롯한 권속들이 모두 존속하고 조성주체와 조성 연대를 알 수
있는 발원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이 번 답사에서 하마트면 빠트리고 지나칠 번 했던 곳을
다시 보느라고 동분서주 했던 참으로 볼 거리가
많은 흥국사 답였습니다
흥국사 불조전 현판입니다
팔상전은
1, 도솔천에서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모습과
2,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는 모습,
3, 인간의 근본 고통을 체험하는 모습,
4, 인간의 고정관념을 깨고 출가하는 모습,
5, 고행을 행하면서 구도의 길로 나아가는 모습,
6,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 모습,
7, 바르게 사는 길을 가르치는 모습,
8, 중생들과 똑 같이 육신을 벗고 입멸에 드는 모습을
팔상이라고 합니다
원통전은 지리산에 살던 이름난 목수가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버린
흥국사를 복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보니 다른 목수가
이미 일을 맡아버려 때가 늦은 터라 하도 원통해서 이 곳에
절을 짓고 목공의 솜씨를 자랑했다고 해서 원통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하는 건물입니다
사실로 받아 들이기에는 어려우며 원통이라는 말 때문에
생긴 속설로 이해해야 될 것 같습니다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셔 놓은 법당으로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두루 통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관음전이라고도 합니다
원통전은 천수관음보살을 모신 곳으로 건축형태의 독특하며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두루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해서
원통(圓通)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자비의 화신인 관음보살을 모신 것은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이란 설도 있습니다.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자고 하는 것이 보살, 특히 관음보살의 원력이므로
왜란 등 전쟁의 와중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자비의 실천
으로서 의승수군들의 호국신앙으로 적절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원통전은 만일염불회가 열렸던 곳으로 염불결사를 했던 보광전이
원통전 곁에 있는데 염불을 할 때 관세음보살을 중심으로
탑돌이를 하는 형식으로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흥국사 원통전은 건물 자체가 ㅌ특이한 구조로 지붕의 한 면이 입구의
구실을 하는 특이한 구조로 주심포 건물이면서도 다포적 수법이
보이는 아름답고 기능적인 면을 강해서 지은 건물입니다
흥국사의 주산인 영축산은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한 영산으로
대가람이 들어설 수 있는 명당이라고 합니다
흥국사의 범종각입니다 흥국사 범종이 보물이라 하여 자세히 보니
보물 제1556호인 강희4년명동종은 아래 의승수군유물전시관
이라는 특별 전시관에 보관 되어 있습니다
사물 중 하나인 법고를 등에 지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입니다만 그 모습이 꽤나 오랜 세월을
버티어 온 작품인 것 같습니다
법정스님의 귀한 인연이기를 이라는 글입니다 이 세상 다 하는
날까지 따뜻함으로 기억되는이가 당신이기를
바라는 인연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흥국사에는 성보박물관이 아니라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의승수군유물전시관이라는 특별한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시관 입구에는 옛날 의승 수군들의 음식물 보관용으로
사용했다는 커다란 남무통이 세워져 있습니다
옛날 원통전 종각에 걸려 있다가 그 수명을 다해서 이 곳
전시관에 보관 중이라고 하는 목어의 모습입니다
흥국사 노사나불 괘탱은 한 폭의 화면에 한분의 보살상을 그린
일존 형식으로 두 손을 어깨 위까지 들어 좌우로 벌려 연꽃처럼
묘사하고 설법인을 짓고 있어 삼신불회도 가운데 보신불을
단독으로 그린 보살형 노사나불이라고 합니다
색동무늬로 태를 두른 거신광과 진한 녹색 두광을 배경으로
보관을 쓴 보살이 두 손을 들어 올려 어깨 높이에서
손 바닥을 펼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관음보살 탱화를 향하여 우측에 있는 불화인데 그 아랫편에는
성난 독수리 두마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의승수군유물전시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호국의승수군들의
영현을 모셨던 것으로 보이는 영가인가 봅니다
의승수군들의 유물전시관은 나라가 흥하면 절도 흥하고 나라가 망하면
절도 망한다는 뜻을 담은 흥국(興國)이란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듯
흥국사는 호국사찰. 고려시대인 1195년(명종 25년)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定慧結社)의 뜻을 담아 세웠으며 그 후 정유재란 때 소실
됐다가 624년에 계특대사가 중건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많은 의병들이 활동했다고 하는데
여수에 있던 전라좌수영이 호남 수군의 본령 역할을 했으므로,
흥국사 의승수군의 전력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흥국사 강희4년 명동종은 보물 제1556호로 1665년 김애립이 주성
하였다고 하는데 외형은 상부가 좁고 아래로 가면서 약간씩
벌어졌으며 쌍룡의 용뉴와 작은 원형공이
음통을 대신하고 있는 형상입니다
종신 사면에는 보살 입상이 조각되어 있고 상대는 13개의 작은 원
안에 범자문을 두른 양식으로 원 안에는 범어인 옴마니
반메홈을 한 글자씩 두 차례 양각하고 나머지 한 원
안에는 육자대명왕진언이 둘러져 있습니다
이 종을 마든 김애립은 조선시대 주종장 가운데 김용암, 김성원,
등과 더불어 사장계를 대표하는 인물의 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종은 순천 동리산 대흥사에서 주종 하였다고 합니다
흥국사 전경을 담은 사진인데 법화문을 중심으로 대웅전과
원통전, 등의 중요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해동선관이란 현판이 보이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아무나 들어가 볼 수 없는 곳인가 봅니다
이번 답사는 문화와 사람들이라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경주, 포항, 울산, 부산 등 에서
멀다 않고 매주 주말 마다 모여서 토론하고 함께 공부하는
모임으로 이번 답사는 흥국사를 비롯하여 석천사,충민사,
진남관, 타루비, 좌수영대첩비, 향일암 등 세게 박람회가
열린다는 여수 일대를 답사하고 왔습니다
문화와 사람들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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