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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묘를 찾아서

최제우 대신사 태묘를 찾아서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2. 1. 5.

 

최제우 대신사 태묘를 찾아서

 

 

서라벌

정기를 이어받아

수운 최제우대신시사가

동학을 일으키신 천도교의

발상지 용담정이 있는 구미산

북쪽 기슭에 있는 최제우대신사의

태묘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에는 동학교주 수운최제우

대선사와 관련된  유적지가  3곳이 있는데

동학의 발상지인 용담정과 최제우 생가 터에

세워진 유허비와 최제우대선사의 묘지인 태묘가

있습니다태묘는 천도교  제1교주 수운 최제우

대선사의  묘지가 있는 곳으로경주에서  현곡을

거쳐  영천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가다가  용담정

입구를 지나고 최제우선생 유허비가 있는 입구를

지나 약 300m 지점의 왼쪽에 안내판이 있는

방향으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능선 넓은

곳에 북향을 하고 있는 태묘가 있습니다

수운 최제우 대선사의 석상과 묘비가

세워져  있는 태묘가  있습니다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에는 동학교주 수운 최제우대선사와 관련된 유적지가

3곳이 있는데 동학의 발상지 용담정과 최제우의 생가 터에

세워진 유허비. 최제우대선사의 묘지인 태묘가 있습니다

 

 

 

용담정은 수운 최재우대신사께서 포덕(1860) 45일에 한울님

으로부터 동학 천도교를 득도하신 천도교의 발생지이자,

다시 개벽의 성지라고 합니다.

 

 

 

태묘는 천도교 제1교주 수운 최제우 대선사의 묘지가 있는 곳으로

경주에서 현곡을 거쳐 영천 가는 도로를 따라가다가 용담정 입구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흰색 안내판이 있는 산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 중턱에 태묘가 있습니다

 

 

(위 사진에서 푸른색으로 보이는 산이 구미산 정상입니다)

 

구미산은 해발 594m로 경주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현곡면 가정리에 있으며 금오산을 '남산'이라고 할 때

구미산은 '서산'이 된다고 합니다

 

 

 

구미산은 천년고도 경주의 정기를 받아 안아 후천 다시개벽의 대성

수운 최제우 대신시사의 탄생을 예고하고, 천도 동학을 계시

받으신 천도교의 발상지 용담정을 안고 있는 명산입니다

 

 

 

수운 최제우선생의 태묘를 향하여 우측으로는 최제우선생의

묘비가 있고 좌측으로는 석인상 한 기가 있으며 호석의

정면에 천도교의 휘장석이 있습니다

 

 

 

이용구는 동학의 접주로서 최시형의 수제자 중의 한 사람

이었으나 일진회를 조직하여, 노골적인 친일활동을 하자

19062월에 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며 조직을

재정비할 때 60여 명의 두목들과 함께 출교당했습니다.

 

이용구는 교리와 의식이 천도교와 비슷한 시천교를 세우고

천도교의 대도주였던 김연국을 대례사로 하였습니다

 

 

 

천도교보다도 재정이 더 풍부했던 시천교는 1909년에 견지동에

서양식 천주교 성당을 본뜬 붉은벽돌구조의 본부교당을 건립하고

경주의 동학 발상지와 용담 등의 유적지도 사들여 성역화 하는

한편, 현곡면 가정리 야산에 교조 최제우의 산소를 조성하면서

서울에서 제작한 교조의 인물상을 무덤 앞에 모셨고

인물상에 시천교주라고 쓰게 된 것이라 합니다

 

 

수운 최제우선생 석상은 근대 인물조각상의 효시 라고 하는데

원래 묘지 앞이 있었으나 근래에 세운 묘비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묘의 오른쪽으로 이건하였다고 합니다

 

 

 

곡장 형식의 토단이 무덤 뒤를 둘러싸고 있고 상석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무덤의 호석 가운데는 천도교휘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석상은 최제우 교조가 1864년 사도난정의 죄목으로경주에서

체포돼 41세로 효수형을 당한지47년이 지난 19115월에

세워졌다고 하며 이 석상은 지금부터 약 100여년 전에

만들어 세워진 우리나라 근대 인물조각상의 효시가

되는 셈이라고 합니다

 

 

 

이 석상은 최제우 교조가 1864년 사도난정의 죄목으로경주에서체포돼

41세로 효수형을 당한지47년이 지난 19115월에 세워졌으며

 

 

 

 

이 석상은 지금부터 약 100여년 전에 만들어 세워진 우리나라

근대 인물조각상의 효시가되는 셈이라고 합니다

 

 

 

문인석이나 무인석은 당나라의 묘제에 영향을 받아 통일신라

시대에 정착되었으며. 이것이 고려에 계승되면서 공민왕릉의

묘제로 양식화되었고 이 묘제는 이후 조선시대

왕릉의 기본 구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고려, 조선시대의 왕릉 석상들을 보면 관모를 쓰고 공복이나

조복을 입고 있으며 손을 가슴까지 들어 올려 홀을

들고 있는 있는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왼 손에는 서책 모양의 경전을 들고 있습니다

 

 

 

오른 손에는 연주 모양의 단주를 손에 들고 있습니다

 

 

 

이곳의 인물석상은 정자관을 쓰고 법복과 비슷한

형태의 의복을 착용하고 있는데 바로 선 자세에서

오른손은 염주 형태의 단주를 들고

왼손에는 경전을 잡고 있습니다.

 

 

 

허리띠의 앞으로 늘어뜨린 부분에는 시천교조제세주묘 라고

전서체의 글씨가 세로로 적혀 있고 뒷면 허리띠

부분에도 전서로 적힌 글씨가 있습니다

 

 

 

천도교 측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이석인상을 한국 최초의 근대

인물기념상이며 최제우대선사의 석상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그 근거로 43층 잎사귀 모양의 정자관과 오른손에 쥔 단주와

왼손에 든 경전의 사실적인 조각 형태를 들면서 생전의 최제우

대신사의 실제 모습이 확연하게 재현돼 있다는 것입니다.

 

 

 

 

천교는 동학에서 파생된 분파의 종교1906년 이용구가

서울 견지동에서 창시하였으며 명칭은 시천주조화정으로

시작되는 천도교의 주문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석인상은 약 40cm의 네모난 기단단의 위에 서 있는데 아랫부분은

사각형의 형태이고 위로 갈수록 둥근 모습으로 변하며

사실적인 인물상의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 석인상은 서울에서 제작되어 이 곳 경주까지 기차로 운반되어 왔다고

하는데 뒷면의 허리띠처럼 둘러진 부분에는 시천교조제세주묘 라는

글씨가 있습니다 인물상의 앞면 띠 부분에는 천도교주가 아닌

시천교주라고 적혀 있습니다

 

 

 

용담정에서 약 1km 내려온 구미산 능선 중턱에 수운 최제우 대신사를

안장한 태묘가 있으며 다시 1km 남쪽에 있는 가정1리 마을에는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서 탄생한 집터(유허비)가 있습니다

   

 

 

용담정에서 약 1km 내려온 구미산 능선 중턱에 수운 최제우 대신사를

안장한 태묘가 있으며 다시 1km 남쪽에 있는 가정1리 마을에는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서 탄생한 집터(유허비)가 있습니다

 

 

 

용담정에는 수운 최제우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위쪽 사각정에는 수운 대신사의 부친이신 근암공 최옥의

문집(근암집)목판 원본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서 탄생한 집터에 있는유허비에는

박정희대통령께서 각자를 하였습니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서 1864310일 좌도난정율의 누명을

쓰고 대구장대에서 순도하신 후, 폐허가 된 채 방치되어 왔으나

용담정은 19741011일에 경주국립공원에 편입됨으로써

우리 민족과 인류의 성지로서 면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용담정 입구에는 1988년에는 용담수도원 아래쪽에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동상을 건립하였습니다.

 

 

 

용담정은 수운 최재우대신사께서 포덕(1860) 45일에

한울님으로부터 동학 천도교를 득도하신 천도교의

발생지이자, 다시개벽의 성지라고 합니다.

 

 

 

전국 천도교인들이 성금을 모금하여 19751028,

오늘날의 '용담정'을 준공하였다고 합니다.

 

 

 

용담정은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서 전국을 누비며 구도 생활을 한 끝에

185910월 부친 근암공(최옥)이 학사로 이용하던 곳으로

 

 

 

 

돌아오신 후 도를 깨닫기 전에는 구미산 밖으로 나가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리라는 맹세를 하고 수도에 전념하신지 반년 만인

경신년(1860)45일에 한울님이 사람의 몸에 모셔져 있다는

시천주계시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용담정에는 용담수도원과 포덕문 등의 부속건물을 짓고

전국에서 연간 수천 명의 교인 및 일반인들이 이곳을

찾아 성지순례 및 수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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