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능.묘를 찾아서

한서린 단종의 장릉을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1. 10. 19.

 

한서린 단종의 장릉을 찾아서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무덤으로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6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단종은 12세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작은 아버지인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에서 죽음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영월의  

호장  엄흥도가 몰래 수습하여 동을지산 자락에   

암장을 하고 숨어버렸다고 합니다      

  

 

단종은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다가

1541년(중종 36)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하였고 1580년(선조 13)에

상석과 표석, 장명등, 망주석 등을 세웠다고 합니다   

 

 

단종은 1681년(숙종 7)에

노산대군(魯山大君)으로 추봉하고

 

 

1698년(숙종 24) 11월에 단종으로 추봉되었으며

능호는 장릉(莊陵)으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장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세워진 석물들도 단출한 편입니다

 

 

봉분 앞에는 상석이 있고

 

 

상석의 좌우에는

망주석 한 쌍이 서 있으며

 

 

그 아랫단에 사각형의 장명등과

 

 

문인석과 석마가 각 한쌍이 있습니다만

무인석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단종은 제5대 문종의 아들로

1452년 문종이 제위 2년 4개월만에 세상을 뜨자 

 

 

 12세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의 출산 후유증으로

출산후 3일 만에 승하혀였고   

 

 

단종의 작은 아버지 수양대군(세조)이

1453년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자 

 

 

1455년 (단종 3년)수양대군인 세조에게

왕위를 내 주고 상왕으로 물러났습니다

 

 

1456년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 사육신이

시도한 단종복위 운동이 실패하자 

 

 

1457년(세조 3년)에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그 해 10월에 다시 폐서인 되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능침을 향하여 우측에 있는 석마입니다

 

 

능침을 향하여 좌측에 있는 석마입니다 

 

 

능침을 향하여 우측에 있는 석호입니다 

 

 

 능침을 향하여 좌측에 있는 석호입니다

 

 

능침을 향하여 우측에 있는 석양입니다

 

 

능침을 향하여 좌측에 있는 석양입니다

 

 

 능침 앞에 놓여져 있는 혼유석입니다

혼유석을 받치고 있는 고석의 문양이 아름답습니다 

 

 

 능침을 향하여 우측에 있는 문인상입니다

 

  

능침을 향하여 좌측에 있는 문인상입니다

 

 

 

  능침을 향하여 앞쪽 혼유석 앞에 있는

사각형의 장명등 입니다 

 

 

단종은 삼촌인 세조가 보낸 사약을

마시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단종이 사약을 마시고 죽임을 당할 때

나이가 17세, 단종의 시신은 

 

  

동강 변에 버려졌고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이 내려졌습니다  

 

 

영월관헌으로 있던 엄홍도가 아들과 함께

야밤에 시신을 거두어 자신의 선산인

 

 

지금의 장릉에 안장하고 가족들과 함께

잠적해 버렸다고 합니다

 

 

 그 후 중종 때 영월군수 박충원이 봉분을

다시 만들었다고 합니다

 

 

 

단종이 영월유배지에서 읊은 애절한 시입니다

 

 원통한 새 한마리가 궁중을 나오니

외로운 몸 그림자 마저 짝 잃고 푸른 산을 헤메누나

 

밤은 오는데 잠들 수가 없고 해가 바뀌어도 한은 끝없어라

 

새벽 산에 울음소리 끊어지고 달이 흰 빛을잃어가면

피 흐르는 봄 골짜기에 떨어진 꽃만 붉겠구나

 

하늘은 귀먹어 하소연을 듣지 못하는데

서러운 이몸의 귀만 어찌 이리 밝아지는가  

 

 

 

지난 2월 24일 영월 방면 문화유산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