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을 찾아서
이 벽화고분은
순흥 읍내리 비봉산
남쪽 산록의 중턱에 위치하고
주변에는 10여 기의 고분이 산재해
있으며 신라에 있는 석실분 중 몇 안
되는 벽화고분 중의 하나인 원형 봉토분
으로 남한에서 유일하게 고구려 벽화고분이
발견된 경북 영주시 순흥면 일대의 고분군이
재조명되고 있는데 이 벽화고분은 1985년 초에
우연히 벽화가 있는 무덤임이 알려지게 되어 발굴
조사가 실시되어 무덤의 구조와 벽화 내용이 밝혀
지게 되었으며 축조는 벽화에 글씨를 통하여 539년
경 쯤 신라시대라고 추정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삼국
시대의 벽화고분은 60여기가 있다고 하지만 거의
북한지역에 있고 남한지역에는 백제고분 2기와
가야 고분 1기가 있을 뿐 이여서 남한 유일의
삼국시대 신라벽화고분이라 할 수 있어 당시
문화를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 영주 순흥 읍내리 벽화 고분 ===
실제 순흥 벽화 고분은 이곳 모형관에서 500m 쯤 더 올라가야 하는
비봉산 등성이에 있는데 이 고분은 1985년 7월 10일 대구대학교
교수 이명식이 발견하여 같은 해 7월부터 8월까지 대구대학교
박물관과 문화재연구소가 합동으로 발굴 조사하였습니다
1971년 이 고분에서 2km 떨어진 순흥면 태장리에서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발굴단이 발견한 최초의 신라벽화고분 순흥어숙묘(順興於宿墓)의 석비에 “乙卯年於宿知述干”이라는 명문이 있었고, 을묘라는 명문에 의해
595년(진평왕 17)의 고분임이 확인된 바 있어, 이 벽화고분도
진평왕 21년 기미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영주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의 외형은 둥글고 내부는 널방과
널길로 이루어진 굴식돌방무덤입니다.
벽화는 널방의 네 벽면과 널길의 동서 벽, 그리고
주검받침의 서측 면에 그려져 있습니다.
인물상, 물고기, 뱀 등의 동물계, 연화, 버드나무 등의 식물계, 산악
구름 등의 무생물계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그려져 있습니다.
순흥은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땅이었다가 신라 땅이 되었고 고려 시대에
들어와서는 흥주였다가 고려 말에 순흥부로 승격되었습니다.
고분 벽화는 만주와 북한의 고구려 유적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남한에서는 몇 기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무덤의 외형은 남북으로 약간 긴 둥근 형태로 자연암괴로 호석)이 돌려져
있어 경사가 급한 남쪽으로는 2∼3단, 동ㆍ서쪽으로는 1단씩 쌓았고
북쪽으로 약 1/4부분은 호석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무덤 아래에서 정상까지의 높이는 약 4m이며 지름은 14m이고. 봉분은 7-15㎝
정도의 황갈색 사질토층과 점토질 층을 판축해 축조하였습니다
널방의 동편에는 주검받침이 자리하고, 서북편 모서리에는 부장품을
두었던 곳으로 보이는 별도의 방형 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외로부터 잡스러운 것을 막는 벽사적인 의미로서 묘실내의 평온하고
고요한 여러 화면들과는 달리 본래의 임무만 수행하고 있는 듯
널방 입구를 향하여 삼지창을 들고 있습니다.
널방의 남벽에 그려진 물고기 모양의 깃발을 쥐고 있는 인물과
己未中墓像人名***의 묵서명은 고분의 주인공과 그 당시의
사회상까지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합니다.
그런데 묘주의 이름으로 추측되는 부분이 지워졌기 때문에 확실한
이름은 알 수 없으나, 무덤의 조성 연대는 알 수 있으며
붓으로 쓴 [己未]라는 간지로 보아 479년, 539년, 599년으로
추정되나 학계에서는 539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벽에는 큰 키의 버드나무와 여인상 그리고 묘주가 생활하던 집이
그려져 있는데 서벽의 그림은 묘주의 생시 생활 모습을 담은
풍속화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고 합니다
울타리 안에 버드나무와 집이 그려져 있습니다
서벽에 자리한 반라의 역사상은 오른손으로는 뱀의 목 부분을 감고 있고,
한번 휘감은 뱀을 머리 위로 다시 돌려 꼬리를 왼손으로 잡고 있는데
금방이라도 문 입구의 잡귀를 쫓아 버릴 듯한 모습입니다
널길의 동벽에 자리한 반라의 역사상은 길쭉하게 상투머리를
한 듯한 머리모양과 부릅뜬 눈과 크게 표현된 코
등 서역풍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북벽의 오른쪽으로는 산의 형태를 한 그림으로 이 산들은 아래는
직선으로 하고 위로는 부드럽게 산봉우리를 표현하고 있으며
산위에는 공중에 떠 있는 연꽃 한 송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벽의 중앙부에는 위에서 아래로 하강하는 새 3마리를 채색을 하지 않고
선으로 간략하게 그렸으며 서편에는 연꽃이 세련된 모습입니다
이 연꽃들은 붉은 선으로 윤곽을 잡고, 줄기 등에는 노란색으로 채색을 하고
연밥과 줄기가 이리저리 피어있고, 약간 오므라든 꽃잎, 측면의
연꽃 등은 사실적으로 표현 되었습니다
널방의 북벽에는 사실적으로 표현된 연화도와 운문도가 큼직하게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불교와 도교의 요소들이 반영된 한 폭의 풍경화로, 죽은 자의
영혼을 서방정토로 안내하는 천상세계의 한 부분을 표현하고
있어 당시의 내세관을 엿보게 해 준다고 합니다
벽화는 그림의 내용이나 필치가 고구려 고분벽화의 전통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지역적 특색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데.
신라와 고구려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순흥 지역은 두 나라의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문화적 길목에 해당되는 곳입니다
이처럼 역사적, 지리적으로 의미 깊은 순흥 읍내리의 벽화고분은 삼국시대
회화사는 물론 당시의 종교관과 내세관, 고구려와 신라의 문화교류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
묘실 내의 벽화는 석회를 바른 현실의 네 벽, 연도 좌우 벽, 시상대의 측면
등에 그려져 있는데 주로 먹 선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그 안에 붉은색,
노란색 등으로 채색을 한 그림인데 먹선 만으로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동벽 오른쪽 윗부분에는 커다란 도굴된 구멍이 있어 동벽
전체의 그림은 훼손이 심한 편입니다
남아 있는 동벽의 그림으로는 벽면 왼쪽 위에 그려진 새가 고구려의 삼족오
라고도 하는데 이 새는 부리를 날카롭게 벌리고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북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영주 순흥 태장리 1호분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분으로 풍기-단산 간 지방도 확ㆍ포장 공사 중에 확인되어
2011년 이곳으로 이전 복원 되었다고 합니다
무덤 내에서는 출(出)자형 금동관 파편을 비롯해 금동 허리띠 파편,
금동 귀걸이 등을 수습했다고 하는데 출자형 금동관 등
유물 대부분은 도굴이 심해 파편 형태로 나왔습니다.
태장리1호분 복원분으로 이 고분은 횡혈식석실묘로 석실 서쪽에 외부로 통하는
문이 나 있으며 석실 규모는 길이 8.7m, 너비 2.1~2.3m, 높이 1.4~1.8m로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확인된 고분 중 가장 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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