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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묘를 찾아서

구형왕릉을 찾아서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1. 9. 21.

 

금관가야 구형왕릉을 찾아서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위치한 전구형 왕릉은

금관가야의 마지막왕인 구형

왕의 무덤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릉의 형태는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잡석으로 방형의 단을 이루면서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 올려 7단을 마련한 돌무덤으로

상단에 타원형의 봉분이 마련되어 있으나 일반

봉분과는 다른 특이한 형식으로 국내에서는 유일

하게 돌로 쌓은 왕릉으로 구형왕릉인가에 대한 구체

적인 역사적 자료는 없으나 구형왕릉이라 전해져 오고

있으며 전해져 내려오는 바에 의하면 약 200년 전에

마을사람이 기우제를 지내고 내려오다 현재 왕릉의

아래쪽 왕산사에서 비를 파하고 있던 중 대들보 위에

커다란 상자가 있어 열어보니 옷, , 활 등이

있어 구형왕릉으로 전해진다고 합니다.

 

 

 

지리산자락의 산청군에 있는 구형왕릉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돌로 쌓은 특이한 왕릉입니다.

 

 

 

구형왕릉은 일반무덤과는 달리 경사진 언덕의 중간에

총높이 7.15m의 기단식 석단을 이루고 있습니다

 

 

 

앞에서 보면 7단이고 뒷면은 비탈진 경사를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평지의 피라미드식

층단을 만든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돌무덤 중앙에는 가락국양왕릉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고 그 앞에 석물들이 있는데

이것은 최근에 세운 시설물입니다

 

 

 

구형왕릉은 아직 수수께끼에 싸여있다고 하는데 구형왕릉이

왕의 릉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적 자료는 없으나

왕릉이라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전해져 내려오는 바에 의하면 약 200년전에

마을사람이 기우제를 지내고 내려오다

 

 

 

현재 왕릉의 아래쪽 왕산사에서 비를 파하고 있던 중 대들보

위에 커다란 상자가 있어 열어보니 옷, , 활 등이

있어 구형왕릉으로 전해진다고 합니다

 

 

 

또 하나의 수수께끼는 이 무덤을 둘러싸고 석탑

이라는 설과 왕릉이라는 2가지 설이 있습니다

 

 

 

이것을 탑으로 보는 이유는 이와 비슷한 것이 안동과

의성에 분포하고 있는데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구형왕릉에는 돌에 이끼도 끼지 않고 능역 근처까지

뻗어오던 칡넝쿨도 능역 바로 앞에서

다른 곳으로 뻗어 자라며

 

 

 

새도 앉지 않고 낙엽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의 기운이 강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왕릉 앞에서

묵념을 하고 왕릉을 돌아본다고 합니다

 

 

 

7단의 석층 중 5단에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이곳으로 구형왕의 혼이 드나드는 문이라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합니다

 

 

 

구형왕릉은 다른 왕릉과 차별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한국 역사상 특별한 유적물입니다.

 

 

 

왕릉의 주인인 구형왕은 어떤 인물일까?

구형왕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입니다.

 

 

 

가야는 낙동강 유역과 지리산을 경계로 그 사이에 위치하였고,

금관가야와 그에 예속된 다섯 가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가야국이 한때는 일본에 가야의 분국인 야마타이왕국을

둘 정도로 상당한 세력을 떨쳤다고 합니다

 

 

 

그러다 신라 법흥왕 때 신라에 합병되면서 492년간 지속

되었던 가야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때 패망국 가야와 마지막 왕이었던 구형왕의 형적도

망각의 역사 속으로 함께 묻혀 버렸습니다

 

 

 

왕의 유언대로 신하들이 돌로 무덤을 쌓고 그 내력을

종이에 적어 왕산사 서까래에 숨겨 두었는데

 

 

 

숨긴 곳이 은밀하여 오랜 세월동안 이 무덤이

누구의 것인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종이가 담긴 상자가 발견되어

꺼내려고 하나 손을 대는 사람마다 죽어서

 

 

 

 

그 누구도 용기를 내지 못하다가 민경원이란 사람이 종이를

꺼내 비로서 이 무덤이 가야의 마지막 왕의

왕릉이란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후로 덕양전을 짓고 봄가을로 구형왕과

왕비의 제를 지내고 민경원의 위패도

함께 모시고 있다고 힙니다

 

 

 

구형왕릉에서 왼쪽 등산로로 20여분 걸으면 왕산 자락에

허준의 스승인 유의태 약수터가 있습니다

 

 

 

이 곳 물은 예부터 위장병과 피부병 등 불치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져 오는 류의태 약수터 입니다 

 

 

 

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왕은 김유신의 증조부로 구해 또는 양왕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 문인 홍의영의 왕산심릉기에 따르면 무덤 부근에 있던

왕산사의 왕산사기에 구형왕릉이라 기록되어 있고 재실에서

구형왕의 유물이 발견되어 구형왕릉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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