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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묘를 찾아서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을 찾아서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1. 6. 13.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을 찾아서

 

 

거창 남하면 둔마리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고분으로

사적 제23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금귀봉이 동남쪽으로 뻗어내린 산등성이에 

자리잡고 있는 고려시대의 무덤으로 꼭 하나의 

무덤만이 들어설 수 있는 좁은 산등성이는 양쪽으로 

급한 경사를 이룬 깊은 계곡으로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명당이라고 합니다  벽화고분은 이중의 벽으로 된 석실

무덤으로 땅을 파서판석으로 벽을 두르고, 그 안에 석실을 

설치한 횡혈식 석실분 입니다 서쪽 돌방에는 1개의 목관이 

있었지만, 동쪽 돌방은 비어 있었다고 합니다 동쪽 돌방의 

모든 벽은 회칠을 하고 그 위에 흑·녹·갈색으로 인물을 

그렸는데 동쪽돌방의 동쪽벽에는 6명의 선녀가 그려져 있고

북쪽 벽에는 희미하게 글자가 보이고 있으며 서쪽 돌방의 

서쪽 벽에는 여자 2명 남자 1명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벽화는 악기를 연주하는 그림으로 붓의 움직임이 자유

롭고 생기가 있어 보이며 불교사상을 중심으로 도교적 

요소가 가미된 내용으로 고려시대의 고분형식과 

종교사상. 생활상을 보여주는 얼마 되지 않는 

귀중한 유적이라고 합니다 근처에는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된 고려·조선시대의 

민묘가 있습니다=둔마리벽화고분

 

 

 

이 고분벽화는 지금까지 고려시대에 축조된 무덤 가운데

최초로 발견된 것으로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으로

사적 제239호 입니다

 

 

 

1972년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굴·조사를 했는데 내부 구조는

직사각형의 돌덧널 2기가 중앙의 공통벽을 사이에 두고

남북 길이로 동서에 놓여 있는 쌍곽묘라고 합니다

 

 

 

둔마리 벽화고분은 벽화를 볼 수 없는 곳이기에 애당초 답사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잠시 쉬어갈려고 하는데 바로 옆에 안내판이

있어서 발길을 돌렸던 곳인데 가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곳입니다

 

 

둔마리 벽화고분으로 올라가는 길을 새롭게 개척하고 있는 모습

입니다만 아마도 이 길이 완성되는 날에는 고분보다도 이 길이

더 아름다운 산책로가 될 것만 같습니다

 

 

동쪽 덧널의 동벽에는 피리·장구 등을 연주하는 5명의 천녀상이 남아 있고

서벽에는 한 손에 과일을 담은 접시를 들고 피리를 부는 주악천녀상이

북벽에는 세로 3행의 묵서가 있다고 합니다

 

 

 

서쪽 덧널의 서벽에는 남녀 무용도를 그렸다고 하는데 벽화는 색채가 맑고

생기에 차 있으며 불교 요소에 도교 성격이 곁들여 있어 경남지방의

지역적 특색을 살린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돌덧널은 판돌로 되어 있고, 각각 245×90×90㎝ 크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앙 공통벽에는 작은 창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벽화는 각 벽면에 회칠을 하고 그 위에 묵선과 흑색·녹색·갈색으로

그렸는데, 그 내용은 주악천녀상과 무용도 등이라고 합니다

 

 

 

거창에서는1971년 11월 국내 문화재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고 합니다

 

 

 

당시 거창 지역문화재에 관심을 갖고 있던 한 사람이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에서 고려시대의 벽화고분를 발견했다는

제보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제창의원 원장인 김태순씨로, 김원장은 우연히 거창읍내의

한 술자리에서 옆자리에 앉은 어떤 사람들로부터 믿기

어려운 말을 흘려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거창 남하면 둔마리 산 어딘가 무덤 속에서 피리부는 귀신을 봤다는

것이 주 내용인데 귀가 번쩍 뜨인 김원장은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이들을 재촉해 그곳으로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장에는 도굴꾼들이 이미 무덤을 파헤쳐 놓은 상태로

김 원장은 그들이 가르키는 쪽 바위틈을 통해 후레쉬를

비춰본 후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고 합니다

 

 

 

무덤의 각석 사이 좁은 틈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피리를 부는 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제보자는 이 ‘피리 부는 여인’의 벽화를‘귀신’으로

단정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이 벽화고분은 발견 이듬해인 1972년 문화재 관리국의 발굴조사가

진행돼 고려시대 ‘천녀상과 주악상 그리고 남녀가 혼합된

무용도’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벽화고분의 주인은 고려 초 지방호족의 무덤으로 추정했으며,

동실과 서실, 2개에 각 가로 90㎝, 세로 245㎝, 높이 90㎝의

석실이었고 내부에는‘천녀상과 주악상’이 프레스코

채색화법으로 그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 벽화고분의 연대는 상감청자가 나온 것으로 보아

12~13세기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벽화고분의 내부는 복구되어 전체적인 모습 외엔 볼 수가 없으나

안내판을 통해 내부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벽화고분은 지리적으로 금귀봉이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등성이에 꼭 하나의 무덤만이 들어 설수 있는 곳에

온전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고분 양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루고, 앞에는 문인석 석물,

왼쪽은 허리춤 위가 파손됐고 오른쪽은 온전합니다

 

 

 

동쪽 무덤의 벽화는 적외선사진에 의해 남쪽에 3명, 북쪽에 2명 등

주악무도천녀들이 그려져 있음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그중 남쪽의 천녀는 빗어 올려 얹은 머리에 둥근 관을 썼고,

얼굴은 타원형의 윤곽이며, 입에는 피리를 물고 왼쪽 손은

위로 올려 과일이 담긴 접시를 들고 있다고 합니다

 

 

 

북벽에는 글자 비슷한 것이 그려져 있는데, 현재로서는

판독이 불가능하다고 하며

 

 

 

서쪽 무덤에는 남벽에 인물도의 흔적이남아 있는데 2명의 천녀,

1명의 남성 등 모두 3명이 보인다고 합니다

 

 

 

이 벽화는 얼마 남지 않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불교적인 양식과

도교적인 양식이 보인다는 점이 특색이라고 합니다

 

 

 

무덤의 조성방법을 보면 무덤의 주인공은 분명 거창지역의 호족

이었거나 벼슬을 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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