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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묘를 찾아서

정씨시조의 묘지를 찾아서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1. 2. 26.

정씨시조 지백호의 묘지를 찾아서

 

경주남산의

남쪽기슭 백운대에

있는 신라 개국공신 정씨

시조인 낙랑후 지백호의 묘소는

 육촌장가운데 유일하게 전해져 내려

오고 있으며 1987년에 성역화 작업을

하여 정비된 곳으로 여러위의 묘단이 모셔

있는 곳입니다 정씨 시조묘는 자산 진지

촌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백호가 하늘에서

화산으로 내려왔다고 하며 우리나라 정

씨의 시원을 이룬 경주정씨는 진한국

사로의 6촌 중 취산 진지촌장 지백

 시조로 하고 있는 곳입니다 

 

 

 

지백호지묘  

 

 

 정씨의 유래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6부촌장 중에서 취산 진지촌장인 지백호가

 유리왕때 본피부로 개칭되면서

 

낙랑후에 봉해 지면서 정씨 성을

하사 받았다고 합니다

 

 

 

 취산진지촌장 신라개국공신 낙랑후봉감문왕

  정씨시조묘소라는 표지석이

입구에 세워져 있습니다

 

 

 

 신라 시조가 나라를 세울 때 개국 공로가 인정되어

 좌명공신이 된 시조 지백호 이래 시조의 4대

현손인 동충(東沖) 때에 이르러

 

유리왕이 정씨로 성을 하사 받음으로써

 경주 정씨가 여기서 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신라 개국공신 정씨시조인 낙랑후 지백호의 묘소는

 육촌장 가운데 유일하게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1987년에 성역화 작업을 하여 정비된 곳으로

 여러위의 묘단이 모셔져 있는 곳입니다

 

 

 

 

 삼국사기와 동경지에 의하면 지백호는 기원전

 117년 경주 화산에 강림하여

 

사로국 여섯고을 중 취산 진지촌을 다스리면서

신라 건국에 모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서기 32년 그의 현손 대에 와서 다른 다섯촌장들과 함께

사성을 받을 때 본피부로 개칭되면서 정씨의 성을

하사 받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라 법흥왕 대에 와서 문화(文和)로 시호를 받았고

 태종 무열왕 3년인 656년에 감문왕으로

추봉되었다고 합니다

 

 

 

 

 취산 진지촌장지묘라고 묘지를 안내하는

표지석이 입구에 세워져 있습니다

 

 

 

 추경사비(追敬祠碑)라는 비석이 백운제

삼문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

 

 

 

 

묘역이 성역화 되어 있습니다

 

5공시절 정호용장군의 힘이 컸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진한 땅에 옛날 에는 평화롭고 서로 도우며 정답게

 살아가는 여섯마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첫번째 마을이 알천 양산촌이니

남쪽의지금의 담엄사 일대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우두머리는 알평으로, 표암봉으로

내려 왔다고 합니다

 

이 알천은 양산촌의 우두머리 알평이 급량부 이씨의

조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둘째 마을이 돌산 고허촌으로

이 마을의 우두머리는 소벌도리 이며

 

 그는 하늘에서 형산으로 내려왔으며

사량부 최씨의 조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셋째 마을이 무산 대수촌으로

이 마을의 우두머리가 구례마인데

 

그는 하늘에서 이산으로 내려왔으며

구례마는 모량부 손씨의 조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최씨의 시조가 되는 최치원이 본피부 사람으로

 지금의 화룡사 남쪽에 있는 미탄사 남쪽에

 

 옛터가 있어 그것이 문창후 최치원이

 살던 옛날의 집터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의 확실한 것 같다고 합니다

 

 

 

 

 그 넷째 마을이 취산 진지촌 으로

이마을의 우두머리는 지백호이며

 

그는 하늘에서 화산으로 내려와 본피부의

정씨 조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다섯째 마을이 금산 가리촌으로

이 마을의 우두머리는 지타이며

 

그는 하늘에서 명활산으로 내려와

한기부 배씨의 조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여섯째 마을은 명활산 고야촌으로

이 마을의 우두머리는 호진 이며  

 

그는 하늘에서 금강산으로 내려와 습비부

 설씨의 조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상으로 6부촌장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6부촌의

조상들이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유리왕 9년에 육촌을 육부로 개정하여 그 명칭을 고치고

육부촌장에게 각각 성을 내려 주었다고 합니다

 

 

 

 

 성역화 사업을 전개하면서 성의를 표시한

분들의 표성비인 것 같습니다

 

 

 

 소문에는 현대그룹의 총수였던 (고)정주영씨의

돈으로 어마어마한 성역화 사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막상 현장을 답사해 보니 현대의 정씨 가문형제들의

이름은 찾아 볼 수 가 없었습니다 

 

 

 

 

1987년은 88올림픽 직전으로 전 국력이 올림픽

사업에 전력을 쏟을 때인지라

 

성역화 사업을 할 때는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이므로

 정주영씨 돈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만

 알고 있었습니다만 ...... 

 

 

 

 

 아무튼 정씨 가문에서 이 엄청난 성역화 사업을

추진한 것은 정씨 가문의 단결된 힘과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 됩니다  

 

가문의 영광이겠지요?

 

 

 

 

산행을 할려면 백운재의 동편 담장의 옆 길을 따라서

올라가야만 고위산 백운대로 갈 수 가 있기에

 

오르다가 뒤 돌아서서 잡아 본 사진

입니다만 아름답습니다

 

 

 

 

경주 정씨들의 선묘가 있는 묘역입니다

 

 

 

 

서기 32년 임진 신라 유리왕 봄에 진지촌을

본피부로 개칭함과 동시에

 

 

낙랑후를 봉하고 정씨 호를 문화로, 서기 656년

 신라 태종 무열왕 3년에 감문왕으로

추봉하였다고 합니다

 

 

 

 

6부촌장 중에 유일하게 2,000여년 동안

묘소가 보존되어 오면서

 

매년 음력 10월 1일에 전국의 후손들이 모여

제향을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 곳은 영남의 8대 명산 가운데 한 곳으로

 떡을 찌는 시루형 명당이라고 합니다

 

 

천자만손에 부귀영화가 누대로 이어진다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명문거족의 지위를 지켜온 정씨는

 

 한말과 근대에 이르는 시대의 변천 속에서도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어 명문의 전통과

훌륭한 선조들의 위업을 드높이

받들어 왔다고 합니다

 

 

 

 

 정씨 시조 신라 개국공신 낙랑후 지백호의

제향을 올릴때 재물을 준비하던 상석입니다

 

 

묘지의 우측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씨 시조 신라 개국 공신 낙랑후 지백호 지 묘 

(鄭氏始祖新羅開國公臣樂浪侯智伯虎之墓)라고

 쓰여진 시조 지백호의 묘역이 맨 윗쪽에 

좌향하고 있습니다

 

 

 

 

정 남향에서 북쪽 고위산 쪽으로 바라 본

경주정씨 지백호의 묘역입니다

 

 

 

 

 윗쪽에서 남쪽을 향하여 잡아 본 묘역입니다

떡시루 같다는 명당이라고 합니다

 

 

 

 

 하나뿐인 6부촌장의 묘역 답게 잘 관리가 되고 있는

 정씨 시조의 지백호 묘와 백운재를

 돌아 보면서

 

 혈연이란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느껴 본 하루 였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무덥고 답답한 토끼 길이어서 힘들었습니다만

 천룡사 부근 식당에서 한잔의 동동주가 피로와 땀방울을  

 식혀 주는 그 맛스러움에 답사를 겸해서

산행을 하는 가 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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