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돈사지를 찾아서
거돈사지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현계산 기슭의 작은
골짜기를 끼고있는 절터로 거돈사는
신라후기에 창건되고 고려초기에 확장·
중창된 대찰로 조선전기까지 존속하였다고
하며 산지가람인 가람배치는 당시의 사찰로는
보기 드문 신라의 전형적인 일탑식 형식으로서
남북을 중심축으로 하여 가운데 중문지가 있고
북쪽에는 삼층석탑이 있는데 창건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되며 탑 동쪽에는 고려 시대의 유명한
스님 원공국사의 행적을 기록한 원공국사승묘탑비가
있는데 최충이 문장을 짓고 김거웅이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거돈사터에 남아있던 고려전기의 승려 원공
국사의 사리탑으로 일제 시대에 일본사람의 집에
소장되고 있던 것을 1948년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데
재현품을 만들어서 원래 부도가 있던
그 자리에 설치 하였습니다
거돈사지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현계산 기슭의
작은 골짜기를 끼고 펼쳐진 곳에 있는 절터입니다
거돈사지는 신라 후기에 창건하여 고려 초기에 확장·보수되어
조선 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절터에는 중문터, 탑, 금당터, 강당터, 승방터, 회랑 등이 확인되었는데
금당은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2층 건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중문지 북쪽의 3층석탑(보물 제750호)은 창건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탑의 동쪽에는 원공국사 지조(930∼1018)를 위한 원공국사승묘탑
비(보물 제78호)가 있는데 1025년 최충이 문장을 짓고
김거웅이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산지가람인 거돈사의 가람배치는 당시의 사찰로는 보기 드문
신라의 전형적인 일탑식 형식으로서 남북을 중심축으로 하여
가운데 중문지가 있고 중문지 앞에는 축대가 있습니다
탑 북쪽에 있는 금당지는 고려 초에 중창된 것으로서 전면 6줄
측면 4줄의 주초석이 남아 있어 금당의 규모가 전면 5칸
측면 3칸인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돈사지의 금당지 중앙에는 높이 약 2미터의 화강석
원형 불 대좌가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와 크기로 미루어볼 때 금당은 외관은 2층이며
내부가 통층으로 된 건물이었으며 본존상은 대좌 상면에
철이나 청동록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등신불보다
큰 석조좌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절터에 있는 민가의 우물가에는 탑 옆에서 옮겨왔다는 배례석이
놓여 있는데 그 크기는 135×85㎝이며
전면과 측면에 안상을 조각하였고 상부에는
연꽃무늬를 조각 하였습니다
거돈사지에는 3층석탑의 동쪽으로 약 110m 되는 곳에
원공국사 승묘탑 비가 있습니다.
거돈사지 삼층석탑은 거돈사 옛 절터인 금당터 앞에 있는 탑으로
2단의 기단위로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상륜부는
현재 노반 위에 복발만이 남아 있습니다
아래층 기단은 네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긴 형태로
기단의 밑돌·가운데돌·윗돌이 각각 4매로 이루어졌습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5단의 받침을
둔 지붕돌은 경사면의 네 모서리가 곡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거돈사지 삼층석탑은 높이 5.45m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법당 앞에 있었는데 다른 석탑과 달리 토단을 마련하고
3단의 장대석을 가지런히 쌓아 방단을 만든 위에
탑을 세운 점이 특이하다고 합니다
하층기단은 판석 사이에 판석을 끼워놓고 우주와 탱주를 새겼으며
상층기단은 남북 쪽에는 우주가 있으나 동서면에는 탱주만
새긴 면석을 끼워 맞춘 방식입니다
옥신의 높이는 2층 이상이 1층의 3분의 1 정도의 체감률을 보이고
옥개석 상면에는 각형의 2단 굄으로 위층 옥신석을 받쳤고,
옥개석마다 전각부에 풍탁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있으며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는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고 그 위에 연꽃 모양의
보주는 최근에 얹어 놓은 것입니다
위층 기단은 남·북쪽에 무늬없는 긴 돌만 세우고 동·서면에는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긴 돌을 끼워 맞춘 방식입니다.
5단의 밑받침을 둔 지붕돌은 경사면의 네 모서리가 곡선을 이루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는데 끝부분에서의 들림이 경쾌하여
통일신라 양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거돈사지에 있는 원공국사 사리탑은 재현품으로 2006년부터
2007년까지 2억원의 예산을 투입해서 재현품을 제작하여
원래 부도가 있던 자리에 설치하였습니다
국립 중앙박물관에 있는 원공국사 사리탑은 보물 제190호로 높이 2.68m.
원래 강원도 원주군 부론면 정산리 거돈사터에 있던 것인데
일제시대에 서울 거주 일본인의 집으로 옮겨졌다가
1948년 현 위치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승탑의 주인공인 원공국사(930~1018)는 고려초의 고승이며 거돈사
터에 남아 있는 탑비의 건립이 태평을축추칠월로 되어 있어
1025년(현종16)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고려시대 부도의 전형인 8각원당형탑으로 지대석2편은 원래의 절터에
남아 있으며 현재는 기단부 하대석부터 지면에 놓여 있습니다
탑신 8면 중 앞뒤 양면에는 문짝 모양과 자물쇠. 그 좌우 양면에는
사천왕입상 나머지 양면에는 창문을 양각했는데 사천왕상은
기단부의 팔부중상 조각양식과 같습니다
옥개석은 밑면에 각이 진 서까래, 윗면에는 기왓골을 모각했고 추녀 끝에
암막새.수막새까지 실제 목조 건축에 가깝게 모방했습니다
거돈사지 왼쪽에는 발굴현장에서 수습을 한 듯한 석재들을 모아놓은 것으로
주춧돌·맷돌 초석 등 발굴된 석물들이 많습니다
거돈사터에서 동쪽으로 약 110m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는 탑비로
고려시대의 스님인 원공국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공국사(930∼1018)의 법명은 지종이고 성은 이씨인데 비문에는
그의 생애와 행적과 그의 덕을 기리는 송덕문이 담겨있습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신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으로
비신이 작고 머릿돌이 큰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거북의 머리는 괴물 모양의 험한 인상을 한 용의 머리모양이고
등에 새긴 무늬는 정육각형 모양에 그 안에는 卍모양과
연꽃무늬를 돋을새김하였습니다.
머릿돌에는 구름속을 요동치는 용이 불꽃에 쌓인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매우 사실적입니다
원공국사 지종(930∼1018)은 17세에 계를 받고 승과에 급제한 뒤
중국에 유학하여 법안종을 배웠다고 하는데 법안종은
선종으로 교선일치를 표방하였다고 합니다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의 비신은 높이 252㎝, 너비 124.5㎝,
글자크기 6푼. 보물 제78호. 1025년(현종 16)에 세웠고
현재도 원형대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입니다
등에 새긴 육각형의 무늬 안에는 卍모양과 연꽃무늬를 돋을새김을
하였으며 비좌 4면에는 안상을 음각하고 꽃무늬가 있습니다
귀갑에는 卍 모양과 임금왕(王)자 문양과 연꽃무늬를
돋을새김으로 정교하게 조각 하였습니다
등에 새긴 육각형의 무늬 안에 있는 연꽃무늬를
돋을새김한 문양입니다
원공국사탑비의 귀부에는 발가락이 4개인데 뒷발가락에는
화려한 발찌를 끼고 있는 형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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