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서루를 찾아서
죽서루는
오십천 절벽위에
있는 보물 213호로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누각입니다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의 하나이며
다른 관동팔경의 누나 정이 바다를 끼고
있는 것과는 달리 죽서루는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는데 건립 시기는 모르지만 역사적
기록을 통해 볼때 고려때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자연석 위에 길이가 서로 다른
17개의 기둥을 세워 지은 정자로 관동팔경의
정자 중 가장 크다고 합니다 죽서루란 이름은
누 동쪽에 대나무 숲이 있었고 그 죽림 안에
죽장사란 절이 있었다고 해서 죽서루로 명명
되었다고 하는데 죽서루는 그 하층이 17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9개는 자연석에
세웠으며 8개는 석초 위에 건립하였다는
건축사적 특성이 있으며 상층에는
20개의 기둥에 팔작지붕입니다
=== 삼척 죽서루 ===
오십천 절벽위에 자리한 보물 213호 죽서루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누각입니다
죽서루란 이름은 누의 동쪽에 대나무숲이 있었고 그 죽림 안에
죽장사란 절이 있었다고 해서 죽서루라고 합니다
또한 죽서루 동편에 죽죽선녀의 유희소가 있었다는데서
유래한다는 설도 전하고 있습니다
죽서루란 이름은 누의 동쪽에 대나무숲이 있었고 그 죽림 안에
죽장사란 절이 있었다고 해서 죽서루라고 합니다
또한 죽서루 동편에 죽죽선녀의 유희소가 있었다는데서
유래한다는 설도 전하고 있습니다
조선태종 3년 (1403)에 삼척부사 김효손이 옜 터에 증창하였으며
수십차례에 걸쳐 중수되거나 단청되었으며 증축되었슺이다
죽서루는 그 하층이 17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9개는 자연석에 세웠으며
8개는 석초위에 건립하였다는 건축사적 특성 및 아름다움이 있으며
그 상층에는 20개의 기둥에 팔작지붕입니다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승휴의 동안거사집에 의하면 고려 원종
7년(1266년)에 이승휴가 안집사였던 진자후와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1266년 이전에
건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태종3년(1403년) 부사 김효손이 대대적으로 중창하였고
여러번의 보수 및 증축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작품누각 내에 걸려 있는 제일계정(第一溪亭)이라는 현판은
조선 현종 3년(1662년)에 삼척부사 허목의 글씨이며
전면에서 보이는 죽서루와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은 조선
숙종 41년(1715년)의 삼척부사 이성조의 글씨이다.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라고 적혀있는 현판은 조선
헌종 3년(1837년)의 삼척부사 이규헌의 글씨입니다
부사 허목이 쓴 죽서루기(竹西樓記)와 당성 홍백련이
지은 죽서루 중수기를 비롯하여
여러 현판과 일중 김충현이 쓴 율곡 이이의 죽서루차운"(竹西樓次韻)
조선 정조가 직접 지은 시판 등 26개의 현판이
죽서루에 걸려 있습니다
고려 명종 때의 문인이었던 김극기가 지은 죽서루 시가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의 여류시인이자 조선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 충청북도 옥원군수를 지냈던 이봉의 서녀 였던
옥봉 이원이 지은 시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삼척 심씨의 시조인 심동로가 지은 여러 편의 시도
현재까지 남아 있습니다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는 숙종 37년(1711)에
이성조가 썼으며
제일계정(第一溪亭)’은 현종 3년(1662)에
허목이 쓴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누정 내에서는 부사 허묵이 지은 죽서루기,
당성 홍백련이 지은 죽서루중수기 등 기문과
죽서루, 해선유희지소 등 제액, 일중 김충현이 쓴 율곡이이의
죽서루차운, 화가 "김홍도"가 그린 죽서루 그림을 보고
그 감흥을 칠언절구로 노래한 정조대왕 어제시 시판 등
모두 29개의 현판이 게판되어 있습니다
절경은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 및 화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죽서루를 노래한 시는 알려진 것만 500수가 넘는다고 합니다
정면 7칸, 측면 2칸, 팔작지붕.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죽서루는 삼척시의 서편을 흐르는 오십천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누는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다락형식의 집으로
고려 충렬왕(1275)때 이승휴가 세웠다고 합니다
죽서루의 동쪽으로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하였다고 합니다
정자와 누각의 차이점은 정자가 자연 속에서 개인적인 수양공간이라면
누각은 공적인 집단 수양공간이 되는 셈입니다.
누각은 보통 2층에 우물마루를 둔 대규모이고, 정자는 누각보다
작은 규모로 주로 단층입니다.
하층이 17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9개는 자연석에
세웠으며 8개는 석초 위에 건립하였다는 특징을 갖으며
그 상층에는 20개의 기둥에 팔작지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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